2024년 7월 4일 (목)
(녹) 연중 제13주간 목요일 군중은 사람들에게 그러한 권한을 주신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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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천주교 신자의 결혼관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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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영혼 [121.131.235.*]

2011-09-29 ㅣ No.9655

언젠가 베론성지에서 강론하신 오웅진 신부님 말씀을 기억해봅니다. 신부님께서는 신앙이 생물학적으로도 증거가 되는 것을 설명해 주셨는데 인간은 일생에 세 번 태어난다는 것을 말씀해 주셨지요. 필자의 입장 또한 이로부터 삶의 철학을 새롭게 형성해 온듯 합니다.
 
이에 귀측이 거론하신 사연 또한 성서에서의 '예와 아니오만 말하라'는 하느님 말씀을 신부님께서 실천하신 것이 아닌가 합니다. 신부님도 사람이신지라 평신자의 마음을 아프게 할 수 있으시겠으나 이럴 때 역시 보다 범위를 크게 바라보는 것이 필요할 것이라 사료됩니다. 문제는 때때로 앞 길이 막막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길에서 과연 그것을 어떻게 해쳐 나갈까 하는 의문이 들 때 우리는 이렇게 신앙상담 즉 대화를 하는 것이라 봅니다. 이 곳 굿뉴스는 약 15년 된 이래 초창기에는 지도 신부님께서 주로 신앙상담을 이끌어 주셨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평신자들을 주축으로 한 상담이 이루어지고 있고 신부님을 위시한 수도자들은 이보다 더 귀한 기도 즉 두 배의 하늘나라 은총 점수에 해당하는 듣기와 또한 함께하는 기도로서 응원 더해주고 계실 것입니다. 이에 필자의 의견 역시 다만 참고사항이라 생각됩니다. 하여 꼭 그럴 것이다라는 생각에 얽매일 필요가 없는 그저 편안하게 들어주시길 청합니다.
 
먼저 신부님께서 거절하신 이유 속에는 말씀을 우선 지향하는 개신교와의 화합을 위하여도 전례를 우선 지향하고 있는 가톨릭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전례의 또 다른 형태이기도 한 순서, 질서, 계단적인 차원에서 이종호님 가정이 큰 혼례를 치루는 과정에서 교적지 신부님께 보다 충분한 양해가 누락되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신자들 다수는 혼례와 장례 때에 평소 성당을 쉬는 교우들도 성당에서 예식을 치루고 싶은 저변의 마음을 가지고 보편 다수가 그렇게 행하게 됩니다. 이 때에 하느님께서는 분명히 우리들을 기다려 오셨고 또 기다려 주시기에 따듯하게 두 팔 벌리시고 우리를 반겨주시지만 우리는 무엇을 정할 때 자주 세속과 천상의 기로에서 하느님께 대한 우선 지향을 소외시키는 사례가 적지 않습니다. 하느님을 차선으로 생각하시며 혹여 사람들의 교통문제 배려를 우선하였다면 이는 매우 심각한 오류라고 생각되는 것이지요. 이는 또한 비판을 위한 비판으로 끝나기 쉽상이니 계속하여 다만 평상심으로 글을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
 
오웅진 신부님께서는 베론성지에서 사람이 세 번 태어난다고 하셨습니다. 1. 육의 탄생, 2. 영의 탄생, 3. 영원한 탄생이라고 하셨지요. 이에 세상에서 가장 보호 받아야 할 어머니의 태중 10개월이 일생을 좌우하듯 우리는 두 번째 탄생인 세례성사를 통하여 내 자아가 죽고 하느님의 영을 취하는 생일(영명 축일)을 맞이하였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태교를 이어왔습니다. 한편 세속에서는 두 번째 탄생을 흔히들 '결혼'이라고 이야기 하는데 이 또한 만물의 영장인 한 인간과 인간에게 매우 의미있는 예식임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결국 두 번째 탄생인 결혼 또는 세례성사를 통한 혼인성사를 통하여 우리는 내가 아닌 하느님의 태교를 보다 원할하고 수월하게 받기 위하여 적지않은 시행착오를 겪기도 합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을 때일수록, 부모이신 하느님 아버지와 하느님 어머니 태교 사랑에 얼마나 나를 열어 두느냐가 관건이겠는데 우리가 태중에 있으면 있을수록 그것을 과연 알 필요가 있겠는가?라는 혼돈에 빠지기도 합니다.
 
이 때에 비유가 많이 담긴 성서 말씀 가운데 오늘 복음 말씀 후반부 묵상의 글을 보더라도 글을 부치는 한 사제께서 신학생 시절 산을 좋아하시어 지리산 등정을 거듭할 때 어느날인가 20명의 벗을 이끌고 폭설을 만나 오를 때 길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 처하였고 어떤 처음보는 젊은이가 비닐을 걸치며 빠른 걸음으로 씽긋 미소 지으며 지나감으로써 그의 발자국을 따라 무사히 등정을 마쳤다는 일화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때에 우리는 부모와 배우자 또는 미래의 자녀를 떠나 홀로 자주 긿을 잃을 수밖에 없는 '스스로의 태교'중 그 발자국 따라 다시 성모님 태중을 믿는 두 번째 아기맘으로 영적인 길을 느낄 수가 있는데 이같은 여정이 과연 무엇인가 생각하기도 합니다. 이종호님 경우는 그 분의 대답이 또한 아빠의 대리자이신 신부님의 말씀으로 보여집니다. 말씀과 전례로 이루어지는 미사 참례시 세속과 단절하며 어느날은 천상에서 일치의 영으로 기도할 때도 있는가 하면 하늘 배의 형상을 이루고 있는 성당에서 천상을 향하는 노아의 방주로서 승선한 두 쌍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기도를 더하기도 합니다.
 
이로서 성당 안 팎의 제대에서 제대로 끝나는 그 문과 함께 입당과 파견 미사 송가를 통하여 우리는 그렇게 인사를 하고 다시 집이라는 대문을 통하여 들어가고 또 나올 것입니다. 여기서 한사람의 혼(Soul)은 영(Spirit)의 마음으로 신부님은 성모님과, 수녀님은 또한 예수님과 혼인하신 그리스도 향기를 맛보기도 합니다.
 
신랑은 신부를 하느님의 어린양처럼, 신부는 신랑을 그 어린양이 예수님처럼 서로 섬기고 사랑하기 위하여 새로운 시행착오를 맞기도 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혼인성사를 칠성사 가운데 두 번째 성품성사와 더불어 봉사의 성사라고도 합니다.
 
부모의 마음이란 그렇게 사랑스런 자녀가 결혼이라는 새로운 관문을 통하여 그 행복을 이어가기를 청하고 또 그렇게 이어지길 기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사랑을 잃어버릴 수 있는 현실은 녹녹치 않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보호 받아야 할 태중이 그동안 우리 어른들의 인성교육 부재로 청년들의 무지가 이어지고 여전히 방관되어 무고한 아기에게 사형선고를 가함으로써 사형장으로 변하고 또한 능지 처참형으로 돌팔이 의사들이 메스가 무당들의 그것처럼 춤을 추며 판치는 세계 제1의 낙태왕국 현실인 이 나라에서 장차 우리들의 자녀인 신혼부부들은 어김없이 3개월 사랑하고 3년 다투며 또한 30년 화해하는 행로를 걷고 있는데 이 또한 순교자를 위시한 성인들의 통공의 발자취를 자주 잊는 장님같은 부모 마음으로부터 하느님의 눈을 뜨는 은사가 과연 무엇인가를 배우는 장으로 활용해야 할 것입니다.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 또한 필자의 부덕한 마음의 소산임을 봅니다.
 
신앙인들은 인류 모두를 사랑하시는 하느님 은총을 언제라도 다시 받을 수 있는 세속 기준의 기회주의자가 아닌 천상의 기회자로서 거듭납니다. 그래서 하루의 해와 달님을 통해서도 우리는 하느님의 발자취와 더불어 선인들의 발자국을 풍성히 느끼며 아침, 점심, 저녁의 생을 돌아보기도 하고 노래에서도 또한 초성(아기처럼), 중성(하늘에서 오늘 축일 맞으신 삼위의 대천사처럼도 좋치요?), 종성(하늘 끝까지 봉헌하는 기운처럼, 프로 가수들의 노래도 잘 들어보세요. 그 입김마저 절대로 내가 끊지 않습니다)의 화합과 호흡을 통한 그것들을 성화시킬 수 있는 기회를 얻습니다.
 
저는 이 때에 이종호님께 두 번째 자녀의 혼인 예절 때는 첫 번째의 시행착오일 수 있는 그것들에 대한 예방 차원으로 상기 이사람의 느낌이 맞다는 견지아래 몇가지 개선 방안을 제시할까 합니다.
 
1. 교적지 본당 주임 신부님께 타 성당에서 혼인성사를 올리고 싶은 것에 대한 양해를 구하십시오. 그러면 관련 협조 공문을 새로운 성당 사무실 측에 전달해 주실 것입니다.
 
2. 그런데 이종호님은 교통 문제 등이라 하셨는데 자칫 하느님 복음에 반하는 부조금 또는 하느님보다 인간들의 배려 우선 관련 등으로 혼인 성당을 옮기는 것이라면 그것을 심각하게 재고하셔야 할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고사하신 신부님이 그러한 점에서 커다란 거부감을 행사하셨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혹여 맞더라도 교적지 신부님께 사정 이야기를 잘 해 보심이 필요할듯 합니다. 대개의 경우 신부님 또한 하느님 아버지와의 모뎀 연결로 작은 것은 져주시니 너무 두려워 할 필요도 없습니다.
 
3. 이 두가지 문제가 해결 된다면 어느 본당에서 혼인식을 올려도 한 본당에서 올리는 것과 다를 바가 없기에 수월하게 그 문제가 풀릴 것입니다. 결국 종교가 아닌 신앙이라는 것은 그 우선 순위를 얼마나 내가 아닌 성부모님의 마음으로 돌아가느냐가 아닌 돌려 드리느냐가 관건이기에 우리는 하느님의 눈으로, 예수님의 입으로, 성령의 의지로 꼭 그렇게 됨을 간구하는 성호경으로부터 새롭게 두 번째 삶이라는 태교를 맞이하고 세 번째 영원한 탄생의 기로 앞에 서 있는 것이며 지금은 비록 상기 제시받는 문제들이 인간적 사고 등으로 엉킬 수 있겠으나 이 또한 부모 마음으로서 세계 2위의 이혼왕국 환경에 처해 있는 내 자녀들의 결혼 생활을 성가정화로서의 완전한 보험으로 이끌 수 있는 방안이 될 것입니다.
 
4. 1, 2항이 어느정도 맞다면 교적지 본당 신부님 상담이 항시 우선이니 사위감(자매님들은 주로 딸을 시집 보냄이 아닌 새 아들을 얻는 것이라 하시지요? 이 또한 성모님의 모성애를 닮은 깊은 기도의 깊은 결과라고 보여집니다)과 딸과 잘 상담하셔서 신부님의 관면으로 청하시기 바랍니다. 일감상 가장 좋은 방법으로는 역시 성가정화 지향으로서 신혼 부부가 최 우선적으로 미사성제를 궐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것이 현세보다 내세를 믿으며 그것을 훤히 보실 수밖에 없는 신부님께 최상의 약정 효과를 발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2항을 자유롭게 내 의견과 하느님 의견을 교류하면서 묵상하심을 권고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과의 교류, 교감=크로스체크=십자가 묵상의 키는 성당 밖에서는 주님의 기도+성모송=묵주기도 등의 해법이 성립 되겠군요.
 
요즘 저의 글이 다소 중언부언이고 복잡하여 재교하기가 그러하니 자녀 혼인 축하 메시지를 겸한 남편과 아내=남중 내편+안의 해로 유추하여 이해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럼 사랑스런 자녀의 혼인예식을 미리 축하드립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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