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5일 (금)
(홍)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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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울 수 없는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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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탁 [daegun011] 쪽지 캡슐

2001-07-30 ㅣ No.4240

 

                  지울 수 없는 노래

 

’어머니날’이 ’어버이날’로 바뀐 지는 꽤 된 것 같다.

누가 바꾸었는지 모를지만 어머니 은혜뿐 아니라 아버지 은혜 또한 소홀히 하지 말자는 취지에서 그렇게 되었을 성싶다.

 

 내가 청소년이던 그 시절만 해도 ’어버이날’은 아버지가 빠진 그냥 홀 ’어머니날’이었다.

그러나 ’어버이날’로 부르건 ’어머니날’로 부르건 그런 문제는 접어두고, 어머니 생각을 할 때마다 내겐 늘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지금은 정확히 이름을 기억할 수도 없지만 그 당시 이미 삼십대에 접어들고 있던 그는 혼자서 움직이기도 힘든 장애인이었는데 사지를 움직이기 힘들 뿐 아니라 언어소통도 제대로 되지 않는 중증의 뇌성마비였다.

그런 그의 손발이 되어 매사를 돌보던 이는 당연히 어머니였고, 그런 어머니 덕에 아마 그는 그나마 힘겨운 삶을 버티어 왔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세상을 버리셨으니 그가 겪어야 했던 좌절은 아마 보통 사람들로선 상상하기가 쉽지 않은 충격이었을 것이다.

처음 그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그 당시 내가 가지고 있던 직업 때문이었다. 그때 나는 방속국의 프로듀서였는데 방송프로그램의 소재를 찾다가 그를 알게 된 것이다.  

방송을 통해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나는 달동네를 헤매던 중 그와 조우하게 된 것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그 불편한 손가락으로 뭔가를 만들며 간신히 연면하던 그의 소원은 차비를 모아 어머니 무덤에 가보는 것.

나는 방송을 통해 그의 소원을 소개했고, 곧 마련된 성금으로 그는 택시를 대절해 어머니 무덤에 갔다.

 

그의 소원을 풀어주었다는 기쁨의 눈물보다 더 흥건히 나를 적셨던 눈물은 그뒤 방송에 다시 나온 그의 노래를 듣는 순간 흘러내리던 눈물이다.  

그가 처음 소개되었던 그 프로그램의 200회 특집을 하던 날, 초대 손님으로 나왔던 그가 불렀던 노래는 객석에 그야말로 눈물의 홍수를 이루었는데, 누군가가 밀고 있던 휠체어에 앉아 그가 노래를 부르고 있는 동안 나 역시 한 마디의 연출지시도 내리지 못한채 마냥 눈물만 흘리는 바보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 날 그가 불렀던 노래는 ’어머니 은혜’. 사지를 비틀며 그가 열창했던 그 노래의 가사는 모두 토막토막 끊어지는 모음만으로 되어 있었다.

’아 으 아 으’ 비명을 지르듯 열창하던 그의 가슴 미어지던 ’어머니 은혜’. 그때 그 노래는 ’어버이날’을 몇번씩 보내고 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내가슴을 울리곤 한다.

 

                                               김재진 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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