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4일 (목)
(녹) 연중 제13주간 목요일 군중은 사람들에게 그러한 권한을 주신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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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Re:이어려움을신앙의힘으로극복하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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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영혼 [121.131.235.*]

2011-08-02 ㅣ No.9577

형제님의 솔직한 고백에 박수를 보냅니다.
대체적으로 주님을 믿는 여정에 있어 군중들에게 많은 시선을 돌리는 시행착오인듯 합니다.
따라서 죽음속의 생명이신 주님과
순간속의 영원인 기도와
허무속의 영광이 선명하게 우러나오는 형제님의 신앙을 의탁하도록 하겠습니다.
형제님은 자칫 여기서의 의탁을 주님이 아닌 보편 인간에게 한 단순함이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주님의 은총일 것입니다.
그리고 치유자이신 하느님께 다시 그것을 내어 맡길 것입니다.
 
자! 그러면 이 새벽에 우리 함께 형제님과의 대화로서 주님의 제대를 바라보기로 합시다.
형제님은 파란색, 필자는 분홍색으로 응답하겠습니다.
 
저는 세례받은지 3년차 되는 초보신자입니다.
저는 오랫동안 사람들의 악담에 시달려 왔습니다.
문제의 시작은 대학시절이었습니다.
1학년때 저는 우연히 자위행위를 하게되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자위행위를 한다는 것을 안 한 학우가 그것을 학교에 소문을 낸것 같습니다.
 
필자는 유아영세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오랜 냉담으로 스스로의 어둠속에서 시달림보다 더 나쁜 방관을 해 왔습니다.
시달림과 방관의 차이 예를 든다면 순교자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현세가 아닌 내세의 생명을 가르쳐주시는 사제를 따를 때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문제의 시작은 영혼의 대학시절이지요.
그 1학년 때 우연히 스스로 위로 받으려는 고독의 길 결과는 어땠을까요?
사람은 누구나 소문을 냅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하히 사람속의 예수님을 보느냐가 관건일 것입니다.
하지만 냉담중에는 그 은총을 볼 여력이 없었습니다.
 
그후로 저는 사람들의 의심과 구설수에 시달리며 지내왔습니다.
자연히 사람들을 멀리하고 사람들에게도 오해를 받지 않을려고 행동에 조심을 하였습니다.
집안에서도 자위행위를 한다는것은 안후 특히 여자는 사귀지를 못하게 하였습니다.
지금 나이가 47살입니다.
그동안 여자를 사귀어보지도 못했고 관계를 해본 적도 없습니다.
 
어린시절 누군가에게 구속을 많이 받은, 매를 많이 맞고 자란 필자는 은연중에 사람을 무서워 했나봅니다.
자연히 사람들을 멀리하고 사람들에게 오해를 받지 않으려고 행동에 조심하였습니다.
집 안에서도 스스로를 위로하려고 아내와 다툴 때에는 아내도 힘들어 하였고 그것보다 더 무서운 침묵으로 응대했습니다. 한국 남자들이 여자 누르면 여자들은 앙심을 품는 이치와 똑같습니다.
그래서 아내들이 남편보다 두배 이혼청구율이 높은 나라가 우리나라 환경이지요.
필자는 이제 지천명을 지나고 있습니다.
지천명은 하늘의 이치를 안다는 뜻이 아니라 하늘에 더욱 순명하기 시작하는 나이입니다.
인간이 하도 하느님 말을 안 듣기에 순명보다 순종을 하자는 어머니 스타일 말씀이 적혀있기도 합니다. 
평생동안 여자를 올바로 사귀고 올바른 영육 관계를 이루는 남자가 과연 있을까요?
현세에는 있어도 없는 것이고 지금의 우리 눈으로는 내세의 그것들이 육안으로는 안 보입니다.
그러나 형제님은 왕따를 많이 받았기에 볼 가능성이 더욱 높습니다.
하지만 성령의 권고와 악령의 유혹 가운데 어느 길을 선택하느냐가 관건일 것입니다.
 
이제는 자위행위를 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저를 괴롭히는 사람들은 제가 마치 화장실에서 자위행위를 하는것마냥
제가 가는 곳마다 따라다니며 악담을 하면서 저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의 악담때문에 저는 집과 직장을 빼고는 함부로 외출을 하지 않습니다.
저녁때는 성당의 모임이나 교육받을 때를 제외하고는 외출을 하지 않습니다.
밖에 나가면 않좋은 사람들에게 항상 감시를 당하는 느낌이 들어서 불안해서 나가지를 않습니다.
사정이 이런대도 그 사람들은 제가 아직도 자위행위를 하면서 밤늦게 유흥가같은곳에서
술먹고 노는것마냥 의심하며 계속해서 악담을 하는것 같습니다.
오해를 받지 않을려고 해도 사람들은 저를 가만히 두지를 않습니다.
 
사람의 몸에도 신앙의 신비의 도구로서 죽음의 암세포가 동반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암(癌) 세포는 유일하게 인체 내에서 산소없이 살 수 있는 세포라고 합니다.
형제님이 자위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바로 암세포를 굶겨 죽이는 커다란 선행이요. 영적인 이익입니다.
군중들은 단순하기에 악담에 쉽게 물들거나 형제님을 그렇게 더 괴롭힐 수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죽어가는 고통의 환자에게 이기적인 무지로 조금만 더 기운을 내라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살아있는 환자에게 어서 죽기를 바라는 악령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돈 때문이고 자기애 때문이지요.
군중들은 소수의 악령계의 중간 보스들에게 끌려다닙니다.
바로 돈 마귀에 현혹되어서이기도 한 것이지요.
예수님은 돈을 바라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요즘 신자들은 예수님을 이용하여 돈을 더 벌려고 기도속에도 야단입니다.
그런 군중들이 무엇이 두려운가요?
어둠의 감시자들이 왜 두려운가요?
침묵으로서 어둠의 유혹에 걸린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지 않아서입니다.
따라서 자신을 위해서 지나치게 기도를 많이 해서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형제님의 그것을 판단하는 것이 두려운가요?
유흥가에서 흥청망청, 술마귀, 여자마귀등에 현혹된 군중이 두려운것이 아닙니다.
님으로 하여금 주님의 큰 일꾼으로서의 자질을 과대망상, 인간적 확대해석등으로 가리는 악에게 할애한 스스로의 죄가 두려움을 조장한 것입니다.
 
이러한 불안한 생각때문에 14년째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치료를 받고는 있지만 일하는데는 큰 지장이 없기때문에 직장은 계속해서 유지하고 있습니다.
첫직장은 복지관의 소개로 들어갔는데 사장이 별로 좋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장애가 있다는 것을 알고는 최저임금에도 못되는 저임금에 저를 이용한것 같습니다.
그 직장에서 12년을 유지하였습니다.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마시고 주님을 두려워 하십시오. 님의 치유를 위해 대신 기도해주시고 오늘의 사랑으로 이끌어주신 주님께 감사를 드리십시오. 이 감사를 잘하면 다른 사람들도 결국 님의 오늘의 건강을 위한 도구일 것입니다. 
뭔가 착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보이는군요.
이것이 심해지면 내탓이 아닌 온통 니 탓이오!를 외치는 큰 병을 앓게 됩니다.
그런데 형제님은 바보처럼 일을 끈기있게 잘 하였습니다.
사실은 돈 많은 사람이 더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더 걱정거리도 많을 뿐더러 이들도 인간인지라 나름대로 자구책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다 하지만 우리가 자주 남는 시간에 주님께 기도 적선을 하는 행위를 탈피하기 어렵습니다.
"네가 가진것을 모두 가난한 이웃에게 나누어주고 다시 오너라" 하시는 주님 말씀에 청년은 풀이 죽어 돌아갑니다.
그러나 형제님은 그런 돈보다 영적으로 가난한 졸부에게 적선을 베풀었습니다.
적선대 적선 그 사장이나 그 형제나 마찬가지군요.
형제님이 일한 댓가는 절대 안정적인 하늘나라 은행에 적립되었으니 역시 감사할 일입니다.
 
제가 그렇게 그 직장에 오래다녔던 이유는 저를 괴롭히는 사람들의 악담때문에 그만두고
다른 직장에 다닌다 하더라도 사람들이 저를 의심하고 짤리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감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더이상 그런식으로 살며는 안될것 같아서 지난 3월에 그만두고
복지원이 새로 소개 시켜준 직장에서 지금은 잘 다니고 있습니다.
일하는것 자체는 재미가 있고 해서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직장에서 일을 하다가도 저를 괴롭히는 사람들의 말만을 듣고
직장 사람들이 제가 자위행위를 하는것은 아닌지 하는 의심을 받는 기분이 들때가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괜찮지만 저를 괴롭히는 그 소문때문에 괞찮은 직장에서 짤리는것은 아닌지 하는
불안한 마음때문에 하루하루가 힘듭니다.
저는 이미 그 사람들의 악담때문에 사회적으로 매장당한 기분이 듭니다.
부모님께도 죄송하고 집안 망신을 시키는것 같아서
차라리 저에 대해서 모르는 곳으로 멀리 떠났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실수를 한것은 저의 이 문제를 하느님께 의탁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호소했다는 것입니다.
 
어디를 가나 주님의 품이라는 것을, 주님이 함께하신다는 것을 기억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참으로 행복한 일입니다. 그러나 악령이 심은 가라지파들은 주님이 함께 한다는 것이 부담스럽다 못하여 주님을 무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주님과 함께 일을 하는 것은 가장 즐거운 것입니다. 문제는 내가 즐거움이 아닌 주님과 함께 즐거움이 진짜입니다. 내가 즐겁고 주님은 고통받는다면 그것은 잘못된 일입니다. 이 때에도 형제님을 시기하고 질투할 수 있는 것이 우리 인간입니다. 인간은 판단력이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또 모함을 하거나 지나간 일을 거론하면 먼저 침묵을 구할 수 있도록 기도하십시오. 예수님도 빌라도 앞에서 침묵하셨습니다.
 
"그것은 너의 말이다"가 들려올 때까지 침묵하십시오. 노래도 내가 부르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부르시도록 하는 사람은 하늘나라 프로인데 그 과정을 위해 하늘나라에 저축한 그것을 주님께 조금씩만 달라고 하십시오. 그래서 성당 버전도 좋고 명랑 친구 버전도 좋고 어디선가 들리는 음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이 때에 선과 악 식별력을 주님께서 허락하실 것입니다.
 
그러기 위하여 우리는 성사생활을 합니다. 성사생활은 인간의 무한한 잠재력을 다시 복돋아 주실 것입니다. 그사람들은 형제님을 매장시키지 못하였습니다. 오히려 부메랑으로 심판받아 매장될 그사람들을 위해 기도해주십시오. 하느님 아버지와 하느님 어머니께 죄송할 수 있는 예수님이 되십시오. 형제님이 그리 충분히 잘 되고 있음을 믿으십시오. 감사할 것이 참 많은데 등잔 밑이 어두워 못 찾나 봅니다. 하느님이 찾으실 수 있도록 눈을 감고 귀도 잠시 내려놓으면 될 것입니다. 반드시 주체는 성부와 성모이십니다. 그다음이 은총, 선행 등등이며 이 또한 주님께 맡기는것이 좋습니다.
 
형제님이 떠나고 싶어하는 곳은 결국 하느님의 품이지요. 그러나 보십시오. 형제님은 이미 성모님의 태중에서 태교를 받고 있습니다. 영원한 삶을 위한 남다른 태교들, 그 은근과 끈기는 매우 훌륭한 덕목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진정한 치료는 전문의에게 맡겨야지 돌팔이 수준을 면키 어려운 우리 인간들이 아닌것입니다. 영혼의 병원에서 기다리시는 고해소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제가 이문제에 대해서 모교 카페에 계속해서 글을 올렸습니다.
오랫동안 혼자서 지내면서 저의 마음을 호소할곳이 인터넷 게시판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차갑고 더 큰 모욕만 받은 기분입니다.
사람들은 계속해서 저를 의심하며 제가 가는 곳마다 따라다니며 악담을 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의 악담때문에 직장과 성당을 제외하고는 함부로 외출을 하지 못합니다.
제가 주로 가는 곳은 국립도서관뿐입니다.
차라리 제가 거세를 한다면 그 사람들이 더이상 제가 자위행위를 한다고 괴롭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화학요법으로 주사로 거세를 할수 있다는 뉴스를 본적이 있습니다.
그렇게라도 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그렇게 모교카페에 글을 올리기도 합니다.
한국인과 인터넷 한국인의 정과 비례하는 악의 요소들
잠시 세계 1위의 한국인들의 낙태, 제왕절개, 세계 2위의 교통사고, 이혼에 대하여 하느님께 의탁하는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일단 1분에서 3분만 하십시오. 자기안에서 탈출 못하는 사람들이 이처럼 수두룩한데 직장과 성당이라면 매우 많이 외출하였군요. 돈 가지고 가난한 이웃보다 개미처럼 자기 가족하고 피크닉하기 바쁜 사람들 전혀 부러워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그런 자세로는 백날 꿀벌처럼 헐벗은 이웃 돕는다 하여도 소귀에 경읽기요, 허락해주시지 않을 것입니다.
 
거세는 악의 유혹입니다. 화학요법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 법은 하느님께 맡기고 카이사르 법은 카이사르에게 맡기기 바랍니다. 도둑들이 거세니, 화학요법이니 하는 것들은 가소로운 일들입니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거룩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간음 마귀들도 회개합니다. 사탄은 저멀리 도망을 치거나 숨겠지요. 
 
물론 저에게도 책임은 있는것 같습니다.
그들에게 빌미를 제공했고 문제가 생기면 과감하게 부딪쳐서 해결을 해야했었는데
그저 참으면서 피하기만 하였습니다.
하지만 더이상 이런식으로 살면 안될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직 부족한것이 많지만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고 혼자만의 고립된 생활을 탈피하고자
레지오모임에도 가입해서 미약하나마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성당모임에는 열심히 참석할려고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의 문제는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을 실천할수 있는 사랑의 마음이 저에게는 없는것 같습니다.
그냥 형식적으로 다니는 것은 아닌지 하는 회의감이 들때가 있습니다.
 
책임 공유도 좋습니다. 도둑을 맡도록 허술하게 사는 태도도 물론 잘못된 것입니다. 성당에도 사실은 그런 미숙한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예로서 길거리에 엄청나게 귀한 시간들을 빼앗고 버리는 지각주의자들이 수두록한 곳이 우리 성당입니다. 엄청난 전염성이 있으니 역시 경계해야 할 일입니다. 역시 참기만 하면 오히려 성당에서 더 스트레스가 쌓일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안에 있으면 미소와 함께 지혜를 주실 것입니다. 레지오 모임 매우 훌륭한 가톨릭의 유산이지요. 성당 모임 열심히 참석하는 것 그것은 주님의 다섯상처를 치료해드리는 선행이 될 것입니다.
 
누구나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 실천력이 있겠습니까? 그렇게 우리는 너무 있기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욱 나를 버리십시오. 신앙은 주님안에 머무는 것입니다. 그리고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반드시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주님을 사랑할 능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평화의 도구되기를 소망합니다. 이는 어린아이처럼 매우 훌륭한 기도입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혼자서 지내다 보니 성당사람들과 이웃들과 친교를 나눌줄을 모릅니다.
그저 제 주변의 작은 틀안에서만 지내고 있습니다.
요즘에는 시간이 남아서 신앙생활을 좀더 열심히 해보고자 책도 읽고 성경공부도 좀더 열심히 하고
성체조배와 저의 마음속에 감추어진 죄에 대한 고해성사도 좀더 자주 할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제가 게으르고 작은 죄에도 너무나 많이 넘어지고 있으며 갈등을 부딪쳐서 해결할려고 하지 않고
회피할려고만 합니다.
이것이 문제를 더 크게 한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제가 신앙적으로 저의 이 문제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솔직한 충고를 해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한국사람들 영육 고립 누구나 그럽니다. 99.999% 그러니 그것도 신경쓰지 마세요.
주님께서 보실 때는 세계 방방곡곡을 날아다닌다 한들 먼지보다 더 작고 겨자씨보다 더 작은 존재가 인간입니다.
그런데 왜 주님께서는 겸손의 리더쉽으로 섬김과 사랑의 리더쉽으로 우리 마음을 감동시킬까요?
그것은 우리가 조급하기 때문입니다.
조급하면 악이 유혹하기 매우 수월합니다.
성체조배, 묵주기도, 미사, 영성체 주님이 마련해주신 성화방법을 열심히 하겠다는 것은 커다란 축복입니다.
원래 소심하고 자기 억제가 심한 사람이 기도도 그리 잘하는 법입니다.
형제님은 잘한다(태크닉=기술력)보다 더 좋은 자세도 엿보입니다.
문제 크게한 것 아니니 안심하시고 주님이 아닌 내가 그것들을 해결하려고 할 때 문제가 발발하는 것입니다.
계속 용기잃지 마시고 연옥 생활을 허락하시어 감사드립니다. 하시며 조용히 눈을 감고 주님을 초대하시기 바랍니다.
 
2011. 8. 2(火). 海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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