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4일 (목)
(녹) 연중 제13주간 목요일 군중은 사람들에게 그러한 권한을 주신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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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술이 좀 취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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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남 [koserapina] 쪽지 캡슐

2003-09-25 ㅣ No.57333

 

가끔 동네 마을버스를 이용할 때가 있습니다.

며칠 전에도 비가 추적거리는데 저녁미사 시간에 대기가 빠듯해서

버스를 타야 했습니다.

 

도착지 중간쯤에서 길게 줄 서 있던 사람들이 모두 승차하고 나서

버스가 막 출발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꽝꽝치면서 이미 움직이는 버스에 매달리다시피 하여

차를 억지로 세우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기사아저씨는 마지못해 버스를 멈추고선 문을 열어

그 사람을 태워 주며 버스 안에 있는 사람들이 다 들을 수 있을 정도의

큰 소리로 짜증 섞인 핀잔을 해댔습니다.

 

"사고라도 나면 어쩌려고 그러세요?

다음 차 타면 될 걸 ... 참 이상한 아저씨네.."

 

그쪽 입장에서는 어렵게 버스에 올라타자마자 자신을 나무라는 소리에

기분이 상했을 법도 한 그 나이 지긋한 아저씨는

"죄송합니다. 제가 술이 좀 취해서요..."

라고 선선히 사과하며 미안한 미소를 짓더군요.

 

기사아저씨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잠시 불편했던 차안 분위기도 일소되었습니다.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보았던 제 마음도 편안해 졌고요.

 

그리고 그 술 취한 아저씨가 차비를 지불하고

약간 비틀거리면서 돌아서는 것을 본 저는

저도 모르게 앉아있던 자리에서 황급히 일어나

서 있는 사람들 틈새에 끼어 섰습니다.

그 분이 제 자리에 안전하게 앉으시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전 안심한 마음으로 그분에게서 눈길을 거둘 수 있었답니다.

 

잘못이나 실수는 누구나 통상 저지를 수 있는 일이지요..

그런데 그것을 바로 인정하고 사과하는 건

인색할 때가 많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인정하고 나면 그 잘못이나 실수에 연연해하지 않아도 되는

홀가분함이 덤으로 주어지기도 하는데 말입니다.

 

때로 괜한 오기를 부리며 핑계거리를 찾았던 저를 돌아봅니다.

혹은 잘못했다는 것을 알아채지도 못하는 무감각한 상태일 경우도

때론 있었을지도 모르구요..

 

퇴근 후 몸도 피곤하고 비도 오는데

갈까말까 망설였던 미사참례 길에 좋은 이를 만났군요.

미사 후 은혜로움이 더해져서 의미있는 하루의 대미를

장식할 수 있었음은 물론이구요...

미사가 주는 축복은 언제나 한결같으니까요...

 

좋은 님들 주님 평화 안에 늘 행복하시기를 빕니다.

복된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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