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4일 (목)
(녹) 연중 제13주간 목요일 군중은 사람들에게 그러한 권한을 주신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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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사회생활 발걸음 뗀 아들 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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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선 [peterpan65] 쪽지 캡슐

2005-08-16 ㅣ No.86567

 

 세상 부모들 마음이 이러저러하다는 이야기는 어렸을 때부터 귀가 따갑도록 들어왔고 그래서 그럴 것이다는 생각은 늘 갖고 있었지만 막상 늦은 나이에 자식이란 것을 품에 안아보니, 그 전까지 내가 그럴것이다는 생각은 여러가지로 많은 오류가 있었고 훨씬 미치지 못했음을 깨닫는다.

 

십계명을 살펴봐도 하느님을 공경하라는 덕목 다음에 인간들이 인간사에서 지켜야 할 첫번째 덕목으로 孝를 선정하신 것만 봐도 그렇고 세상 내로라하는 종교들의 계명에 공통적으로 들어가는 교리가 孝인 것을 보면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치 않다고 본다.

 

우리 부부는 맞벌이라는 핑계로 자식을 늙으신 부모님께 맡겨왔다.

 

워낙에 자손에 대한 사랑이 각별하시고 벌벌 떠신다고는 하나, 아이들 키우기가 누워서 떡먹기가 아님은 경험한 사람들은 별 이의없이 고개를 끄덕거릴 것이라 여긴다.

 

거기다 둘째까지 생산하고 맡기자 여간 죄스러운 마음이 아니었다.

 

용돈이라고 드려봐야 낯 간지러운 액수에 자랑거리도 아니고 이 방법, 저 방법을 강구해봤지만 역시 맞벌이란 핑계는 그렇게 쉽게 딱 무릎을 칠만한 묘수를 가르쳐주지 않았다.

 

아내와 나는 우리의 생활에 거의 혁명과도 같은 거사를 치루지 않으면 안된다는 비장한 각오 끝에 큰 녀석을 무작정 데리고 오기로 했다.

 

작은 녀석을 데려올까도 생각했지만 큰 녀석 키우실때 직접 이유식을 정성드레 갈아 만드셔서 먹이고 그런저런 덕에 허벅지 살이 통통하게 올라 오죽하면 내가 [허벅장군]이란 별명까지 붙여줄 정도로 튼튼하게 자란 모습을 보니, 솔직히 우리 부부는 그럴 자신이 없기에 작은 녀석도 할아버지, 할머니께 그런 혜택 보라고 우린 큰 녀석을 데리고 오기로 한 것이다.

 

그간 일 년하고도 반년을 더 키우시며 정도 퍽이나 드셨을테고 막상 당신들 품을 떠나 우리가 데려가려하자 냉큼 내어주시지도 못하시고 우물쭈물 아쉬워하시는 부모님을 뒤로하고 우린 냉정하게 아이를 데려와야만 했다.

 

그런데 이제부터가 문제였다.

 

막상 데려오기는 했으나, 맞벌이하는 우리에게 있어 이 녀석을 어떻게 할 것인가?하는 문제가 난관에 봉착했다.

 

나이가 어느정도 되면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맡긴다고 하겠지만 이제 생후 18개월 된 녀석을 남의 손에 맡기기가 말처럼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고민만 하고 앉아 있는다고 뾰족한 수가 생기는 것도 아니고...

 

집 앞에 있는 어린이집을 직접 찾아가 원장선생님을 만나 사정 얘기를 했다.

 

걱정하지 말라며 초보 부모인 우리들에게 용기도 주고 위로도 해주는 가운데 다음 날 녀석을 맡기기로 결정했다.

 

그러니까 처음으로 녀석은 할아버지, 할머니 혹은 아빠, 엄마의 품을 떠나 비록 하루중 절반이긴 하나, 홀로 사회 생활을 하게 된 셈이다.

 

이제 생후 18개월 된 녀석을 생각하니 그것은 부모로서 너무 가혹한 일이라고 생각하여 그날 밤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별의 별 생각이 나를 묶어버려 밤새 눈만 말똥말똥 뜬 상태였다.

 

"우리 부모님들도 우리가 처음 학교란 것을 갈 때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하는 생각부터 "녀석이 만일 적응하지 못하고 아빠 엄마 찾으며 울고불고하면 어쩌지?"

 

"어린이 집에선 어찌보면 가장 어린중에 속할텐데 형이나 누나뻘 되는 아이들이 때리거나 할퀴면 어떡하나?"하는 생각에 나는 밤새 애꿎은 냉장고 문만 연신 열어제끼며 물만 들이켰다.

 

그러다 겨우 잠이 들었나보다 하지만 오만가지 방정맞은 악몽이 나를 두어번이나 깜짝 놀라게하며 깨우곤 했다.

 

옆에서 새근새근 곤히 자고 있는 아내가 괜히 밉살스럽게까지 보였다.

 

그렇게 아침을 맞고 아무것도 모르는 녀석의 옷가지며 기저귀를 챙기고 새 옷으로 갈아 입힌 후, 그 어린이 집에 데려갔다.

 

원장님과 선생님들이 활짝 웃으며 녀석을 반기자 낯 가리는 녀석이 "와앙~!"울음을 터뜨리며 내 목을 꽉 조이며 가슴으로 파고 든다.

 

순간 가슴이 덜컹 내려 앉으며 그냥 아이를 데리고 도망나오고픈 마음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하지만 이내 장난감 자가용에 앉히자 울음을 그치며 그 장난감에 관심을 보인다.

 

녀석보다는 크지만 어쨌거나 다른 아이들이 녀석의 주위로 신기한 듯 몰려든다.

 

녀석은 또래들이 많음을 보자 언제 울었냐며 신나하는 것 같았다.

 

우리가 가는 것을 보면 또 울까봐서 아내와 나는 원장선생님과 대충 인사하고는 도망치듯 어린이 집을 빠져 나왔다.

 

나오는 길에 왜 그렇게 가슴이 아리고 안됐는지...

 

나는 아내에게 믿고 맡긴 이상 쓸데없이 어린이 집에 자꾸 전화하고 그러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자 아내는 내가 어린애냐며 눈을 흘긴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궁금하기도 하고 혹시 녀석이 울지는 않는지 안절부절하기만 했다.

 

휴대폰이 울려서 보니 아내에게 온 전화다.

 

전화를 안 하려 했으나 도저히 못 참고 한번 했더니 너무 적응을 잘해서 잘 논다라는 회신을 받았다며 내게 흥분된 목소리로 전한다.

 

쓸데없이 전화하지 말라니까!하며 잠시 역정을 냈지만 금새 허허허~하는 웃음 소리가 나에게서 나왔다.

 

저녁 때 녀석을 데리러 가야한다.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 반, 세근 반 벌렁거리고 기대된다.

 

세상 부모란 딱지를 붙이고 살아가다보면 별의 별 일을 다 겪게 마련일텐데 침착하지 못하는 내 자신이 우습게 보이기도 하고 원망스럽기도 하다.

 

저녁때 데려오면 아버님, 어머님에게 전화를 드려 녀석이 첫 사회생활을 기가 막히게 한다고 자랑을 떠벌려야겠다.

 

내일 또 어린이 집에 데려다줄땐 나도 이틀 사이에 많이 성숙해져 있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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