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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실화]가슴이 짠해지는 우리나라 유명인사의 실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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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실화]가슴이 짠해지는 우리나라 유명인사의 실화
임관되어 전방에 근무중이었다.
수류탄 사고를 당해 한 쪽 팔을 잃게 되었다.
여자 친구가 병원으로 병문안을 온데서 그는 확인해야 할 것이 있었다.
여자 친구에게 “팔이 없는 나를 지금도 좋아하느냐?” 고 떨리는 가슴을 억제하면서 물었다.
“나는 너의 팔을 좋아한 것이 아니고 너를 좋아했기 때문에 팔이 있고 없고는 상관하지 않는다.” 는 대답을 얻었을 때 정말로 천지를 다시 얻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병원엘 드나들면서 간호에 간호를 거듭하였다. 그러나 여자 친구의 아버지는 그것이 아니었다.
딸이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새 길을 찾을 것을 권유하였다. 그랬더니 그의 딸은 아버지에게 이런 질문을 하였다.
한 팔을 잃으신다면 엄마가 아버지를 떠나는 것이 옳다고 생각을 하세요?”
그 남자와 사귀는 것을 허락을 하게 되었다.
더 큰 노력을 하여 린스와 샴푸를 합친 효과를 내는 하나로를 개발했고
사용할 수 있는 2080 치약을 개발하고, 영상통화를 가능하게 한 앱을 개발하는 등의 업적을 세워 통신사의 부사장이 되었다.
현재 세라젬헬스앤뷰티 대표 조서환씨의 이야기이다.
△ 그의 수기에서 발췌한 부분이다.
아내를 처음 만난 건 초등학교 1학년 때다. 어찌나 공부를 잘하던지 초등학교 때 그 사람 성적을 앞선 적이 없다.
이 생각은 고등학교에 입학해서도 변하지 않았다. 고교 졸업 직후 육군3사관학교에 입교했을 때는 연애할 시간이 전혀 없었다.
주고받으면서 지고지순한 사랑을 키웠다.
오른손을 잃고 병원 신세를 지게 됐다. 입원해 있는데 그 사람이 너무나 그리웠다.
덜컥 겁이 났다. 한 손이 없는 상태로 그녀를 어떻게 만날지 걱정이 태산이었다.
첫째, 나를 본 순간 놀라 도망칠 것이다. 둘째, 이게 웬 날벼락이냐며 엉엉 울 것이다. 셋째, 기가 막혀 멍하니 서 있을 것이다.
연락하자니 두렵고, 안 하자니 보고 싶고. 하지만 보고 싶어서 미칠 지경인지라 힘들게 연락을 했다.
양손을 쓸 수 없어 어머니가 떠주는 밥을 먹고 있었다.
고향 뒷산에 흐드러지게 핀 산도라지 꽃 색의 코트를 입은 하얀 얼굴의 그녀가 통합병원 문을 열고 들어섰는데 그 모습이 눈부시게 예뻤다.
그런 그녀가 날 본 뒤 아무 말 못하고 우두커니 서 있는데 가슴이 미어졌다.
어머니는 밥을 먹여주다 멈췄고, 병실에 있던 사람들도 모두 이야기하라며 자리를 피했다.
하지만 자존심 탓에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자존심보다 더한 것은 두려움이었다.
만일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하면 어쩌나. 나는 아무 말 못하고 그저 입을 굳게 다문 채 그녀를 쳐다보고만 있었다.
그 사람은 여전히 우두커니 바라보기만 했다. 불쌍해 보일 내 처지보다 저 사람이 왜 그렇게 안타깝고 딱해 보이는지, 마음이 너무나 아팠다.
날 사랑하느냐고 묻고 싶다가도, 다른 사람에게 보내줘야 하는데 누가 나만큼 사랑해줄까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용기를 내어 겨우 입을 열었다.“아직도 나 사랑해?” 그 사람은 말없이 고개를 두 번 끄덕였다.
아니 앞으로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불행의 깊이만큼 행복을 느낀다.’고 하지만 정말 그때 느꼈던 행복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왼손만 가지고 이 예쁜 사람을 행복하게 해줄 수 없을 텐데. 이건 너무 이기적이다.
나는 “얼굴 봤으면 이걸로 끝내자”는 마음에 없는 말을 했다. 그러자 아내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생각이 가슴 깊은 곳에서 큰 파도처럼 밀어닥쳤다.
모태신앙인 아내는 날 위해 매일 새벽 기도를 했고 나는 링거를 꽂은 왼손으로 글씨 연습을 했다.
항상 아내는 내가 뭐든지 할 수 있다며 격려와 지지를 보냈다. 이후 내 인생의 목표가 된 아내는 지금까지 매일 소중한 조언을 해주고 있다.
사업상 힘들 때도 꼭 아내와 상의한다. ‘백발백중’ 명답을 말해 하나님 음성처럼 듣고 산다.
메일로 받온 글을 html로 편집하여 재구성 한 글 입니다.김현피터
♡고난은 다른 노력을 위한 도구일 뿐 장애는 아니다. 하기 싫은 사람은 핑계를 찾아낸다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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