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4일 (목)
(녹) 연중 제13주간 목요일 군중은 사람들에게 그러한 권한을 주신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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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야말로 하느님의 선물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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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창열 [dearjohn] 쪽지 캡슐

1999-11-19 ㅣ No.7774

 

 

 

웃음꽃이 피는 9114호실

 

 

  가톨릭대학 의정부 성모병원 9114호. 이곳은 암 말기로 죽음을 앞둔 환자가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것을 도와주는 방입니다. 이곳은 처음에 들어오면 환자나 그를 도와주는 모든 사람들이 말 붙이기에 어색한 곳입니다. 왜냐하면 환자가 죽음의 고통을 안고 누워 있어 무슨 말부터 시작하여야 할 지를 몰라 당황하기 때문입니다.

 

  98년 1월 처음으로 진단을 받고 수술한 E병원, 치료가 잘 되지 않아 다시 찾았던 S병원, 여러 곳이 있었지만 치료의 효과가 없었고 그래서 그 곳들을 포기하여야 했습니다. 그 후 누군가에 의한 이끌림처럼 의정부 성모병원을 알게 되었고 가족들의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저의 진료를 최종적으로 맡기기 위해 이곳을 택하였습니다. 생각해보니 이 결정은 주님의 은총인 것 같았습니다.

 

  99년 9월 17일 입원 후 여러 검사결과 위암말기로써 더 이상 손댈 수 없는 상태이므로 집으로 돌아가 요양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고 의사선생님이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통증으로 고통이 심해 있던 나는 "선생님, 제발 이 고통에서만 벗어나게 해 주세요"라고 애걸하여 겨우 입원을 허락 받았습니다.

 

  8층의 3인실에 자리가 비어 있어 입원하였고 고통이 심하여 몸부림치며 소리지를 때 한방에 있는 환자들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그분들도 힘이 드는데 피해를 주기도 싫었습니다. 복부의 아픔도 견디기 힘이 드는데 (그분들 때문에) 아픔을 참아야 하는 것은 나에게는 이중의 고통이었습니다. 입원 치료 중 이 병원에는 죽음이 얼마 남지 않은 환자의 통증 관리와 새로운 세계(죽음)로 들어가기 전에 쉬어가도록 돌보아주는 ’호스피스’라는 조직이 있고 그곳에서 봉사하는 분들이 계신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은총으로 저에게 나타나신 분들. 모든 이에게 사랑을 골고루 베푸시며 관대한 호스피스 수녀님, 분에 넘치는 사랑을 주시는 원목실 수녀님, 견진 성사의 대부님이 되어준 고마운 봉사자 요한 형님, 죽음의 고통을 잊게 해 주는 조석구 교수님과 다른 의사선생님들, 그리고 때로는 눈물을 보이는 정을 가진 간호사들, 자원봉사자, 이분들이 이곳에서 일하는 분들이지요. 나의 아내 제노베파, 그리고 형제들과 함께 큰 은혜를 같아야 할 모든 분들이십니다.

 

  의사들의 노력으로 차차 고통은 줄어들었고, 죽음 앞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고 가족과 나눔을 갖고 생을 정리할 수 있도록 글을 쓸 것을 격려해 주시고, 봉사자 야유회 때 저를 기억하며 주웠다고 선물로 주신 빨갛고 노란 낙엽들…. 수녀님, 너무나 고맙습니다.

 

  주님의 도구가 되도록 깨닫게 해준 사랑이 가득한 원목실 수녀님. 당신은 낭떠러지의 나뭇가지에 매달려 주님을 찾는 이의 이야기를 들려 주었고, 그로 인해 저는 삶에 대한 확신과 무엇보다 더 소중한 주님의 뜻을 초연히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다른 수녀님들과 함께 해주었던 한시간여의 위문공연. 그 때 들려주었던 ’내가 만일’의 노래가사로 9114호는 사랑의 병실이 되었답니다.

 

  매일매일 병고의 고통스러운 시간에 찾아와 기도와 도움을 주는 자원봉사자들. 따뜻한 한마디 한마디의 말과 부드러운 그분들의 손길로 인해 고통으로 지쳐 있던 저의 몸과 마음은 활기가 돋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저의 소생을 간절하게 도와주는 간호사 선생님들 이야기를 할 차례입니다. 2년간의 약물치료로 저의 양팔에서 핏줄을 찾는 것은 금맥을 찾는 것보다 더욱 어려웠습니다. 설령 세, 네 번 찔려 붓는다 해도 짜증을 부릴 수 없답니다. "내 팔의 상태는 내가 더 잘 아는데 뭐!" 라고 생각하고 있으니 너무 애쓰시는 그분들에게 짜증을 낼 수는 없지요. 저에게 가져다 준 엽서, 사랑의 음악을 녹음하여 주고, 저는 복을 받은 환자랍니다. 가끔 담배를 피워서 정이 가득한 눈흘김을 받을 때도 있지만 우리 간호사 선생님들은 천사이지요. 말 그대로 백의의 천사…

 

  제가 입원하여 있는 9114호 병실의 아름다운 모습도 말씀 드리겠습니다. 병실 문을 열면 오른쪽 벽에는 노란색의 커다란 ’미’자의 색지가, 빨간색의 ’카’자와 노란색과 파란색의 ’엘’자가 함께 붙어 있답니다. 합하여 보면 ’미카엘’. 저의 세례명이자 수많은 이들의 격려와 사랑이 씌어져 있는 게시판이랍니다. 어떤 주사보다도 더 효과가 강한 치료제이지요. 가득 씌여진 글 중에 몇 가지만 소개할까 합니다.

  "아우님! 사랑해요. 그리고 주님 안에서 영원히 함께 할거예요."

  "아프신 가운데서도 많은 것을 나누고 남기시는 미카엘 형제님을 통해 큰 영광 받으실 하느님을 찬양합니다."

  "사랑하는 사람들만 무정한 세월을 이긴답니다. 우리들 가슴속에는 따뜻한 물이 흐르고 있구요. 좋으신 분 알게 됨이 참 기뻐요." 등등 많은 사람들의 글, 편지, 아름다운 그림들과 함께 맞은편 문에는 얼마 전 병실에서 특별히 견진성사를 받을 때 찍었던 고마운 분들의 사진이 붙어 있습니다.

 

  처음 호스피스 수녀님의 권유로 시작한 9114호 병실의 ’꾸밈과 나눔’을 통해 모든 분들의 발걸음이 더욱 가벼워졌고 저 또한 더 편한 마음으로 주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암’의 육체적 고통으로 인해 전 하루하루 많은 것을 잃지만 잃은 만큼 더 많이 얻고 있습니다. 광대뼈만 남아 깊게 패인 얼굴의 미소지만 웃음을 잃지 않았기에 모든 이를 기쁘게 하였고 그 분들의 꿈과 노력에 보답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원목실 수녀님이 아내 제노베파와 저에게 말씀하셨답니다. "미카엘, 아낌없이 베푸는 활짝 핀 웃음으로 무서운 고통의 아픔을 감내하며 지쳐 쓰러지지 않는 참된 용기에 탄복을 금치 못하겠어요." 수녀님의 이 한마디로 저는 다시 용기가 납니다. 저의 ’미소’와 ’소생’을 희망으로 가진 분들로 인해 전 나이가 사십이 되었는데도 아기와 같이 변해갑니다.

 

  성모병원의 호스피스과와 같이 평온하고 따뜻함이 가득한 조직이 나와 같은 병으로 인하여 삶의 고통을 느끼는 이들에게 두루 알려지기를 이 글을 쓰는 새벽에 기도 드립니다. 그리고 저를 사랑해 주시는 모든 이들을 위해 주님께 몸 안의 힘을 다 모아 기도 드립니다. 몸 안의 힘이래야 앉아 있을 수도 없이 누워만 있어야 하는 것이지만…

 

 

나에게 바람이 있습니다.

세상 떠나는 어느 날.

이 세상을 향해

잘 살았노라고, 행복했노라고, 미소지으며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에게

활짝 웃으며 눈을 감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1999년 11월 9일

김대진 미카엘

 

 

 

 


 

 

대자 고 김대진 미카엘님을 위하여

 

 

  위의 글은 지난 11월 11일 오전 7시 30분 하느님께로 돌아가신 김대진 미카엘 형제님이 돌아가시기 이틀 전에 남긴 글입니다. 그리고 이 글은 우리와 함께 하느님의 백성이었던 고인의 본당인 녹양동 성당에서 11월 13일 오전 9시에 고인을 위해 봉헌된 장례미사 중에 제2독서로 봉독된 글이기도 합니다. 또한 얼마전 새로 부임하신 녹양동 본당 주임신부님의 마음에 와닿는 강론말씀과 함께 미사에 참석했던 우리의 심금을 울리며 숙연케 했던 글이기도 합니다.

 

  위의 글을 소개하는 저는 호스피스 봉사자로서 미카엘의 형님이 되고 다시 견진대부가 되는 과정에서 깨끗하고 맑은 한 영혼이 ’왜 내가 이제야 하느님을 만나게 되었을까’하고 아쉬워하며 짧게 남겨진 삶을 하느님의 사랑으로 곱게 물들여가는 모습을 아주 가까이서 지켜 보았습니다.

 

  위암말기상태에서 호스피스케어를 받으시는 동안 활짝 열린 자신의 마음 안에 가득히 채워지는 하느님의 사랑과 평화를 느꼈던 미카엘님은 죽음을 맞이하는 자신의 모든 체험을 또 다른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싶어했습니다. 누구나 언젠가 반드시 한번은 가야 할 그 길을 어떻게 하면 의미있고 소중하게 갈 수 있는가에 대해 꼭 알려주고 싶어했던 고인의 깊은 뜻이야말로 주님의 새계명인 사랑의 이중계명을 상기시켜주려는 주님의 가르침이라고 깨닫게 되어 세속으로 쏠려 흐트러진 우리들의 마음의 옷깃을 다시 한번 여미게 합니다.

 

 

  참고로 김 미카엘이 병실 안밖에 남긴 많은 짧은 글 중에서 몇가지를 더 소개합니다.

 

 

 

  사랑의 병실 9114호

  (일명 : 호스피스를 위한 사랑의 방)

 

  사랑은 이렇게 나에게 가까이 있다.

  사랑. 늘 감사드려요.

 

  기쁨, 행복을 누구든지 나누어 가지고 싶습니다.

  - 이 방 환자 -

 

  요한 형님.

  당신은 주님께서 주신

  행복한 선물이십니다.

  사랑합니다.

  - 미카엘 아우 -

 

 

 

 

  위의 글들을 읽으신 분마다 고인의 영원한 안식과 크나큰 슬픔에 잠긴 유족들의 위로를 위하여 함께 기도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동안 미카엘님의 영육간의 건강을 위해 애써주신 성모병원의 원목실 최신부님, 수녀님들, 의사, 간호사선생님들 그리고 호스피스 자원봉사자 여러분들, 또한 녹양동본당 주임신부님을 비롯하여 기도와 봉사로 큰 도움을 주신 본당수녀님, 구역장님, 연령회장님 및 본당의 많은 교형자매님들께 유족들과 함께 깊은 감사를 드리며 고마우신 모든 분들을 위해 김 미카엘을 사랑하신 주님의 이름으로 하느님의 축복을 빕니다.

 

 

 

  주님. 당신 사랑으로 아름답게 물든 미카엘의 영혼을 당신께서 손수 거두시어 우리들의 모범이 되었던 그가 그토록 바랐던대로 하늘나라에서 주님과 함께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소서. 아멘.

 

 

 

1999년 11월 13일

아쉬움과 그리움을 안고

대부  송창열 사도요한(동두천 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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