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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성당 주임신부, “그러게 기도를 하려면 골방에서 해야지!" (담아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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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홍주 [jhj5063] 쪽지 캡슐

2010-05-20 ㅣ No.154672

명동성당 주임신부, “그러게 기도를 하려면 골방에서 해야지!"
정의구현사제단
 
2010년 05월 20일 (목) 13:19:12 정의구현사제단 .
 

1. 교회여 내 아픔을 알아다오!

이틀간 내리던 비가 그쳐서 기도처를 ‘들머리’로 옮겼고 잠자리도 거기에 마련했습니다. 가로등이 꺼지기를 기다렸다가 누우니 열한시가 넘었습니다. 습하고 차가운 바람이 불어와서 걱정했는데 고맙게도 금방 잠에 빠졌습니다. 그런데 얼마나 흘렀을까. 누군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습니다. 눈을 떠보니 아직도 한밤중이었습니다. 신문고라도 울린 사람처럼 한 사나이가 크게 슬프게 울부짖었습니다. 아내도 병들고 딸도 아파서 성당을 찾아갔는데.... 교무금도 내고 헌금도 잘 냈는데... 돌아온 것은 위로와 축복이 아니라 주거침입죄 고소였다는... 대충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4대강반대도 좋지만 우선 이런 문제를 위해서 기도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마구 우리를 나무랐습니다. 하도 시끄럽게 구니까 경찰이 달려왔습니다. 이 사람은 또 다시 주거침입 및 안면방해로 고소될 판이었습니다. 그걸 보더니 명동성당도 똑같구나 싶었는지 그의 언성은 더욱 커졌습니다.

2. 지금은 내 근무시간

신부님 한 분이 곱게 달래서 보내드리자 이번에는 성당 위에서 한 사람이 슬그머니 내려왔습니다. 그 때가 새벽 세시 반, 나중에 물어보니 명동성당 측 용역이었는데 우리 잠자리에 대고 물을 뿌리는 것이었습니다. 뭐하는 짓이냐고 따졌더니 도리어 “나는 내 일을 할 뿐이오!”하며 당당했습니다. 지금은 화분에 물을 주는 시간이라면서 말이지요. 이 봉변의 뒷이야기는 하도 어이가 없어서 일일이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마침 명동성당 주임신부께서 나오셨기에 이래도 되는 거냐고 물었더니 대답이 아주 간단하셨습니다. “그러게 기도를 하려면 골방에서 해야지! 마태오복음 6장 6절!”

   
 

3. 강의 위기가 아니라 교회의 위기

화를 가라앉히고 나니 주님의 천사 두 분이 오셔서 우리를 깨운 것이었습니다. 강을 생각하고 교회를 생각해보라고 말입니다. 이대로 세상의 욕심꾸러기들에게 강을 빼앗길 수 없다는 절박한 심정에서 기도하고 있습니다만, 여기선 강의 위기보다 교회의 위기를 목격하게 됩니다. 우리 교회는 지금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교회의 본질을 잃어버렸습니다. ‘보잘것없는 이웃’의 가치를 망각하고 박대합니다. 입에 옳은 말만 달고 살면서도 정작 행동에 나서진 않습니다. 앞에서 하는 말 다르고 뒤에서 벌이는 일이 다릅니다. 망가지는 강을 보면서도 그렇고 교회를 보면서도 똑같이 억장이 무너집니다.

4. 어느 여인의 위로

이슬로 축축해지고 호스 덕분에 젖어버린 잠자리 두고 신부님들은 반 씩 나눠서 목욕탕에 갔습니다. 욕탕의 후끈한 온기가 간밤의 냉기를 말끔히 몰아내 주었습니다. 그래도 몸과 다르게 간밤의 소동 때문인지 마음은 심란했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엊그제 한 원로신부께서 짜증을 부리며 툭 던지고 간 말이 아직 명치끝에 걸려있었거든요. “아이고, 너희들 아직도 이런 거 하냐?” 그런데 지나가던 한 여인이 따뜻한 꿀차와 함께 다음과 같은 쪽지를 손에 꼭 쥐어주고 뛰어 갔습니다.

“신부님, 단식 마치면 맛있는 것 드세요. 신부님 덕분에 제가 가톨릭교회를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 양심과 신앙을 지키는 옳은 일을 하시는 겁니다. 신부님은. 많은 분들이 저처럼 신부님을 응원하고 있습니다. 저와 함께. 외롭지만 신부님만 겪는 일이 아니고 수많은 사람들이, 강들이, 대한민국이, 하느님이 외롭습니다. 기운내세요.”

오늘은 단식 4일차입니다. 밤은 춥더니 낮은 한낮처럼 뜨겁습니다. 신부님들의 건투를 빕니다.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인사드렸습니다.

2010.05.20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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