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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도의 또 한번의 '퇴행'을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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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요하 [jiyoha] 쪽지 캡슐

2002-03-25 ㅣ No.31327

                     충청도의 또 한번의 ’퇴행’을 보며

 

 

 

 

 충청도 고향 땅에 붙박여 살고 있는 토박이 작가로서 지난 1990년대 중반부터 충청도 전 지역을 휩쓸었던 자민련에 의한 충청도의 ’신지역감정’ 바람과 관련하는 내 고뇌와 저항에 대해서는 지난번의 글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대전 행사를 보고」에서 소상히 피력했다.

 

 그래서 다시 충청도의 ’지역주의’를 문제 삼는 그런 류의 글은 쓰고 싶지 않았다. 정말이지 그런 글을 다시 쓰게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것은 지난 23일 천안에서 열린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충남 행사’에 대한 간절한 ’기대’이기도 했다. 대전 행사의 결과와는 달리 충남의 행사에서는 의외의 놀라운, 또는 좀더 희망적인 결과가 나오기를 진심으로 소망했던 것이다.

 

 그러나 내 기대와는 너무나 다르게, 또는 우울한 예상대로 충청도 출신 이인제씨에게 몰표가 쏟아지는 현상을 보자니, 지역주의의 무지막지한 몰이성을 다시 한번 체감하게 되면서 충청도인으로서의 오늘의 내 심회를 또 한번 적어보고 싶은 마음이 동하게 되었다. 물론 고뇌와 갈등이 더욱 컸다. 쓰는 일도, 쓰지 않는 일도 모두 내게는 괴로운 일인 탓이었다.

 

 지역감정이나 지역주의가 무조건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논법에 나는 일정 부분 동의하는 편이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속담의 뜻대로 그것은 어느 정도 자연 이치와 인지상정의 요소를 지니고 있다. 그것에서 순박성을 살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의 도가 지나쳐서 팔이 안으로 굽기만 하는 게 아니라 그 굽은 팔이 마구 휘둘려져서 극단의 배타성으로 나아간다면 그것은 엄청난 왜곡과 파괴와 퇴행의 의미를 지니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애향심이나 순박성은 곧 완벽한 무지가 되고 몰이성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내가 1990년대 중반 자민련에 의한 충청도의 엄청난 신지역감정 바람을 보며 실로 경악하며 개탄했던 것은 대중의 무지―진정한 가치관을 봉쇄하고 파괴시키는 퇴행성에 대한 뼈아픈 자각 때문이었다.

 

 여기에서, 지난 1995년의 지방 선거 직후에 <태안신문> 8월 21일자에 썼던 칼럼의 한 대목을 소개해 본다.                

 

 《그러나 우리 충청도도 지역 감정을 조장하여 기반 삼으려는 한 정파의 정략에 철저히 휩쓸리므로써 영·호남과 똑같이 천박한 지역 감정 지역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제는 영·호남의 지역 감정 대결을 비판할 수 있는 자격도 잃게 되었고, 한 정파의 이익을 초월하여 진정한 국가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는 토대도 매우 부실하게 되고 말았다.

 

그저 오늘만을 생각하는 간단한 이해 타산의 잣대로, 우리 나라에 군사 쿠데타와 군사 독재의 시효를 연 인물에 대한 종합적인 판단도 철저히 묻어버린 채, 그리고 그의 수많은 훼절들도 간단히 정당화시켜 주는 이런 몰이성적인 현상은 앞으로 더더욱 부정적인 현상들을 낳을 것이다.

 

민중으로 승화되지 못한 대중은 놀라운 일시적 현상을 만들어낼 수는 있을지언정 진정한 역사는 만들어내지 못한다. 역사에 대한 자각과 애정을 지니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유치한 지역 감정을 조장하고 이용하여 거기에 기반하려는 사람은 역사에 이름이 남을 수는 있을지언정 길이 빛나지는 못한다. 오늘만이 중요할 뿐 역사에 대한 두려움이 없기 까닭이다.

 

나는 양반 골의 의연함이 사라지고 ’패거리 정신’이 기승하게 된 오늘의 현상을 가슴 아파하며, 거대한 왜곡의 물결에 도매금으로 파묻혀 버린 것을 창피스럽게 생각한다. 또다시 왜곡되지 않을, 진정한 충청도 정신의 복원과 참된 미래를 갈망할 뿐이다.》

 

나는 지난 23일의 ’천안의 결과’를 지켜보면서 7년 전에 썼던 그 글을 상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굳이 그 글을 찾아 읽어보자니 7년 전의 비애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라는 사실이 좀더 뼈아프게 느껴졌다. 그리고 과거에는 자민련에 의해서 촉발된 그 비애가 이번에는 민주당에 의해 재생산되는 기이한 현상에서 역사 발전의 갖가지 곡절이며 더딘 발걸음 따위를 다시 한번 체감하는 기분이었다.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대회를 인터넷 동영상으로 생중계하는 <오마이뉴스>의 화면과 기사들을 읽어보면서 즉발적인 ’독자의견’들의 엄청난 폭주를 실감하는 것도 내게는 큰 놀라움이었다. 무려 2000건 대를 육박하는 독자의견 수량으로 볼 때 조회수는 실로 엄청날 터였다.  민주당이 벌이고 있는 오늘의 정치 행사에 네트즌들의 관심이 얼마나 크게 집중되고 있나를 실감할 수 있는 대목일 것이다.

 

그 기사들에 대한 엄청난 량의 독자의견들을 다 읽어볼 수는 없었지만, ’부산시민’이라는 분이 쓴 글 하나가 특히 인상에 남는다. 그는 ’광주 행사 결과’를 예로 들면서 "전라도 사람들에게는 원래부터 ’지역감정’이라는 것이 없었다"고 말했다. 호남인들은 지역감정에 의해서보다는 김대중이라는 ’인물’을 선택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인물에 대한 호남인들의 판단력과 평가가 경상도 지역에 잘못 투영되어 영남지방의 지역감정을 촉발시켰다는 논지였다.

 

어느 정도 정리가 된 그 논지를 읽으면서, 그 논지의 타당성 여부를 떠나 한번쯤 깊이 음미해봐야 할 사항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이 어느 정도 긍정성을 지닐 수 있는 것이라면 영남인들과 충청도 사람들이 깊이 참고해야 할 말이라는 생각도 하면서….

 

과거 자민련에 의한 충청도의 신지역감정 바람을 그토록 개탄하고 혐오하며 그것의 극복을 가장 큰 과제로 삼았던 민주당 사람들에 의해 오늘 또다시 재생산되는 지역주의의 결집과 고착화 현상을 뼈아파하고 부끄러워하는 나로서는 경상도 지방에서 생겨날지 모를 ’노풍’ 현상에 대한 우려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내가 살고 있는 충청도 지방의 지역주의의 노정은 문제 삼으면서 경상도의 현상에 대해서는 침묵을 한다면 그것은 모순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노무현씨가 오랫동안 자신의 출신 지역에서 푸대접을 받아온 사실과 <오마이뉴스>의 ’독자의견’ 란에 투영된 ’부산시민’이라는 분의 그 ’인물론’을 결부시키면 반론의 여지가 전혀 없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 이 시점에서는 아직 결과가 나타나지 않은 경상도 지역의 ’미시적 현상’에 대해서는 발언을 하고 싶지 않다. 이미 결과가 나타난 ’광주 현상’과 결부시켜 충청도 사람으로서 충청도의 현상에 대해서만 문제를 삼으며 부끄러워할 따름이다.

 

나는 이 부끄러움으로 민주당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과거 자민련에 의한 충청도의 신지역감정 바람과 맞서 싸울 때의 그 고뇌와 의기들을 다 어디에다 묻어버렸느냐고.

 

지역에서 선거 때마다 힘써 도왔던 우리 지역 출신 국회의원 문석호 민주당 의원이 천안 행사장에서 압도적인 표차로 승리한 이인제씨와 손을 잡고 만세를 부르는 모습이 나는 참으로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와 거리를 둘 수밖에 없음을 절감했다.

 

나는 문 의원에게 묻고 싶다. 진보와 개혁보다 수구와 지역주의가 더욱 중요하냐고. *

 

 

2002년 3월 25일

충남 태안 반딧불 작가 심오(深梧) 막시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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