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7일 (일)
(녹) 연중 제14주일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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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의 기도/엉겅퀴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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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인 [shell88] 쪽지 캡슐

2002-06-21 ㅣ No.35272

 

     엉겅퀴의 기도(이해인)  

 

제가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지 가겠습니다

누구에게든지 가서 벗이 되겠습니다

참을성있는 기다림과

절제있는 다스림으로

가시 속에서도 꽃을 피워낸

큰기쁨을 님께 드리겠습니다

불길을 지난 사랑 속에서만

물같은 삶의 노래를 부를 수 있음을

내게 처음으로 가르쳐준 당신

모든걸 당신께 맡기면서도

때로는 불안했고 저자신의 무게를

감당하기 어려울 때도 많았습니다

일상의 잔잔한 평화와 질서를 거부하고

달아나고 싶던 저의 보랏빛 반란이

너무도 길었음을 용서하십시오

이젠

더 이상 진실을 거부하지 않겠습니다

허영심을 버리고 그대로의 제가 되렵니다

당신이 원하시는 곳으로

저를 불러주십시오

참회의 눈물을 흘린 후의

가장 겸허한 모습으로

모든이를 사랑하게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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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미의 기도 (이해인)  

 

 피게하소서 주님

 당신이 주신 땅에

 가시덤불 헤치며

 피흘리는 당신을 닮게 하소서

 

 태양과 바람 흙과 빗줄기에

 고마움 새롭히며 피어나게 하소서

 

 내 뾰족한 가시들이

 남에게 큰 아픔 되지않게 하시며

 나를 위한 고뇌 속에

 성숙하는 기쁨을 알게 하소서

 

 당신 한 분 믿고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당신만을 위해

 마음 가다듬는 슬기를

 깨우치게 하소서

 

 진정 살아있는 동안은

 피흘리게 하소서

 죽어서 다시 피는

 목숨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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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들 하세요?

 

우리 수녀원 뜰엔 요즘 온통 치자꽃 향기가 가득한데요.

엉겅퀴와 장미의 기도 시를 고독의 숨은 땀과 눈물도 많이 흘린 우리 축구선수들,

그리고 삶의 길에서 지금 이 순간도 어려움을 이겨내고 계신 이웃들께 드립니다!

 

요즘은 모두 너도 나도 월드컵 열기에 취하고...

이태리와의 경기에서 역전승이 가져온 환희와 기쁨을 되새김 하느라

어떤 사정으로 그늘진 곳에서 아프고 슬프게 우는 이들 조차 잠시 잊어버리고....

정말 모두가 빙글 빙글 웃고있는 모습이에요.

이 한마음의 열기가 금방 식지 말고 주님 사랑,이웃사랑에까지 더 넓게 아름답게

이어지면 얼마나 좋을까 하루에도 몇번씩 생각하곤 합니다.

이렇게 공동체적으로 기뻐하는 한국인의 모습을 처음 본 것 같아요.

모르는이와도 함께 얼싸안으며 기뻐할 수 있는 한 마음의 축제...

박지성 선수를 비롯해 골을 넣는 순간마다 감독에게 달려가는 그 모습은 정말

아름다웠고 말로는 표현 못할 서로에 대한 신뢰와 감사가 그 안에 들어있다고 봅니다.

세상일과는 무관하게 보일 수도 있는 수도자들도 각자가 일하는 곳곳에서

응원의 열기와 관심이 매우 뜨겁답니다(글쎄 봉쇄 수도자인 가르멜 수녀님들 면회를 가니

그분들도 동네가 시끄러워 처음엔 할 수 없이? 축구경기를 보고’축구라는 것이 그렇게

재미있는 줄은 몰랐네..)’해서 웃었답니다.어떤 젊은 수녀는 아슬아슬한 게임에 가슴을

졸이며’오, 주님,제발 우리가 한골만 넣게 해 주세요. 한골만...’하고 빌고 비니 정말

극적으로 한 골이 들어가더라고 했습니다.우리도 마지막 경기는 수련원과 수녀원

식구들이 다 같이 액정 비디오로 볼 예정입니다.

 

선수들과 히딩크 감독도 훌륭하지만....전심 전력으로 응원하는 붉게 타는 아름다움의 힘

우리 국민들의 모습도 정말 눈물이 날만큼 자랑스럽고 대단하지요?

 

학생들 기말고사 시험지를 가져와 며칠간 저는 채점하느라 정신이 없을 것 같군요.

축구 경기 보느라고 공부도 안해 학생들 성적이 안 좋게 나오면 어쩌나 벌써부터

걱정이 되네요. 너무 야박하진 않게 주는게 좋을 것 같지요?

우리 집 앞바다엔 ’비로소’광안대로가 거의 완성 되어 제 모습을 보이니

바다의 모습  자체가 달라보이네요.

 

6/22일은 하필 김대중 대통령의 영명축일(토마스 모어)이기도 해서 성인의 삶을 묵상하면

나름대로의 의미도 있고...그래서 왠지 더둑 좋은 결과를 자꾸만 기대하게 되지만

설령 우리의 기대대로 안 된다 해도 크게 실망하진 않으려고 합니다.

꿈 속에도 환청으로 듣는다는 ’대한민국’을 그리 많은 인파가 외쳐다니...

하느님도 성모님도 우리의 이토록 애국적인 ’화살기도’에  귀가 아프실 것 같지요?

우리 모두 한 마음으로 응원하는 이 기쁨의 나날들....그래서 6월은 우리의 심장도 예수님처럼 붉게 타버릴 것만 같네요.

사랑의 불가마이신 예수성심이여 우리 선수들의 몸과 맘과 발을 축복하소서.아멘.

 

쓰다 보니 조금 길어져서 죄송! 부산 광안리 분도 수녀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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