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7일 (일)
(녹) 연중 제14주일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자유게시판

사랑하고 싶은 사람만 사랑할 수 있을까!

스크랩 인쇄

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2003-12-02 ㅣ No.59180

 아침에 신문을 읽는 것이 저의 일과 중에 하나입니다.

저는 직장 생활을 하는 것도 아니고, 결혼 생활을 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사람 사는 이야기를 잘 모릅니다. 그러면서도 저는 세상 속에 살고 있는 교우 분들께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세상을 잘 몰라서는 안 되기 때문에 신문을 읽습니다.  사실 가려운 곳은 등인데 종아리만 긁어주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오늘 아침에 신문에서 詩를 한편 읽었습니다.

시의 내용도 좋았지만 시를 평하는 사람의 평론도 좋았습니다.

시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訃音

 

조간신문에

흑백 사진 한 장과 함께 실린

訃音란을 바라볼 때면

 

죽어라 하고 싶은 일만 하다가

사랑하고 싶은 사람만 사랑하다가

죽어가고 싶다.

 

 

 ‘죽어라 하고 싶은 일만 하다가, 사랑하고 싶은 사람만 사랑하다가 죽어가고 싶다.’는 말이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저 자신 올 한해를 돌아보면 제가 하고 싶은 일만 할 수 없었습니다. 조직에 있기 때문에 체면 때문에, 욕심 때문에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많이 했습니다.

 

 시인처럼 사랑하고 싶은 사람만 사랑할 수 없는 처지이지만 사랑할 수 있는 사람도 사랑하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아니 사랑해야 하는 사람도 다 사랑하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시를 평론하는 분은 죽음을 이렇게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죽음은 완전 고용. 나이도, 학력도, 연줄도, 인물도, 시험도, 면접도, 적성도, 월급도 불문. 모두들 데려다가 꽃단장 시켜놓고 별 타령 부르는 신선놀음인지, 이승의 전과만큼 재봉틀 달달 박는 박음질인지, 그도 저도 아니면 오염된 은하수 변에 비닐 깡통 쓰레기 줍는 영세민 취로사업을 시키는지 여하튼 죽음은 태고 이래 완전 고용. 사고를 통한 수시 고용. 노화를 통한 정기 공채. 전쟁을 통한 대거 특채’

 

 죽음을 또 다른 곳으로 가는 것이라 생각하며, 그 죽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열려있고, 그 죽음은 누구나 갈 수 있는 곳이라 이야기 합니다. 하긴 죽기 싫어도 죽고, 죽고 싶어도 죽고, 죽음에는 예외도 없고, 죽음에는 차별이 없습니다. 그 죽음을 회사의 취직처럼 이야기하지만 사실 죽음 앞에 누구도 예외는 없다는 말이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오늘도 다들 죽음의 문 앞으로 가고 있습니다. 마치 한 장 남은 달력이 올해도 곧 끝나는 것을 말해 주듯이, 우리는 주변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봅니다. 나도 또한 그 죽음을 향해 가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시인처럼 ‘하고 싶은 일만하고, 사랑하고 싶은 사람만 사랑’하는 것은 어쩌면 어렵고, 불가능한 일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다들 죽음을 향해 가고 있는데 서로 미워하고, 시기하고, 싸우고, 원수처럼 지내면서 사는 것도 별 의미가 없어 보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 하셨듯이 ‘예’할 것은 예하고 ‘아니요.’할 것은 ‘아니요’ 라고 말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사랑이든, 죽음이든 내가 깨어 있으면서 맞이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사랑받고 있는지 모르는 것도 안타까운 일이고, 죽음을 향해가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는 것도 어리석은 일이라는 생각입니다.

 

 ‘깨어 있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시편은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파수꾼이 새벽을 기다리기보다 내 영혼이 주님을 더 기다리나이다.’ ‘암사슴이 시냇물을 그리워하기보다, 내 영혼이 주님을 더 그리워하나이다.’

 

 주님을 그리워하고, 주님을 기다리면서 ‘성탄’을 준비했으면 좋겠습니다.

사랑도, 죽음도 그분으로 말미암아 시작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630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