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6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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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진의 '들쥐론'에 대한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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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요하 [jiyoha] 쪽지 캡슐

2004-01-04 ㅣ No.60349

 

                     이상진의 ’들쥐론’에 대한 생각

 

 

 

 

 나는 ’들쥐근성’과 ’들쥐론’ 모두 싫어한다. ’들쥐론’이라는 말만 나와도 나는 혐오감으로 몸을 떤다.

 

 솔직히 말해 옛날에는 ’들쥐근성’이 뭔지를 몰랐다.

 ’들쥐근성’이라는 게 있는지도 몰랐다.

 

 그러다가 1980년대 초 그것에 관한 말을 처음 들었다. 우리나라 사람에게서 들은 게 아니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 관해서 어느 미국인이 한 말이었다. 그 미국인의 ’들쥐론’은 우리 민족을 완전히 능멸하고 모독하는 말이었다.

 

 참담한 슬픔과 분노를 느꼈다. 미국인으로부터 그런 모욕적인 말을 들어야 하는 우리의 처지가, 그러고도 분노할 줄 모르는 우리의 현실이 내게 절망감을 안겨 주었다.

 

 그 후로 나는 ’들쥐’라는 이름만 들어도, 텔레비전에서 들쥐 그림만 보아도 그 미국인의 말을 떠올리는 ’기억의 고통’을 겪어야 했다. 그 기억의 고통은 물론 모멸감의 고통이기도 하다.  

 

 미국인에게서 처음 그 말을 들었던 때로부터(다시 말해 우리 국민 모두 들쥐로 간주된 때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오늘 나는 다시 들쥐로 간주되었다. 이번에는 미국인이 아닌 같은 한국인에게서….

 

 나는 정초부터 들쥐가 되어버린 상황이다. 나뿐이 아니다. 그는 ’들쥐 떼거리’라는 말을 했으니 들쥐가 된 사람은 나 외에도 무수히 많다.

 

 나와 수많은 사람들이 정초부터 들쥐가 된 이유는 단 하나, 새해 첫 아침에 산을 올라 해돋이(’해돗이’가 아니다)를 보며 하늘에 일년 기원을 드렸다는 것뿐이다.

 

 그가 새해 첫 아침에 산을 올라 해돋이를 보며 하늘에 일년 기원을 드리는 사람들을 ’들쥐 떼거리’로 매도할 정도로, 나를 포함한 그 수많은 사람들은 어리석은 사람들이다. 한마디로 ’들쥐근성’을 갖고 사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 ’들쥐론’이 매우 빈약하다. 새해 첫 아침에 산을 올라 해돋이를 본 사람들이 왜 들쥐인지에 대한 논리적인 설명이 없다. 그런 사람들을 ’들쥐 떼거리’로 본 이유가 나름대로 있기는 하지만 전혀 논리적이거나 타당한 설명은 아니다.

 

 20여 년 전 미국인이 한국인을 일러 말한 그 ’들쥐론’에는 약간의 논리적인 설명이 있었다. 그렇게 볼 법도 하다는 생각을 갖게 하는 구석이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 한국인에게서 들은 ’들쥐론’에는 아무런 이유 설명이 없다. 그저 새해 첫 아침에 산을 올라 해돋이를 하며 하늘에 일년 기원을 드렸다는 것, 그런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 수없이 많다는 것이 그 이유의 전부다.

 

 타당한 논리도 없이 수많은 사람들을 하루아침에 ’들쥐’로 매도한다는 것은 보통 망발이 아니다. 매사에 함부로 지껄이고 제멋대로 망발을 일삼는 사람이나 할 수 있는 짓이다.

 

 그의 ’들쥐론’은 20여 년 전 우리 국민을 일러 ’들쥐’로 매도한 그 미국인과 똑같은 시각이면서도 더욱 천박하고, 적극적으로 추악하다.

 

 그는 일년 한해를 좋게 맞으려는 수많은 동포들을 ’들쥐 떼거리’로 매도하면서 그 ’들쥐론’과 관련하는 종합적인 생각을 한번이라도 해보았을까? 그 말을 사용하면서, 그 말이 생겨난 배경이며, 민족적 모멸감과 결부될 수 있는 상황에 대한 고뇌 따위를 조금이라도 가져보았을까?     

            

 이런 의문을 가져보는 것 자체가 나를 우습고 서글프게 한다.

 

 

 (040104)

 충남 태안 샘골에서 지요하 막시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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