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걱정 안 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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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친구를 만났습니다. 결혼해서 부산에서 사는지라 어지간한 작심 없이는 만나기 힘든 친구인데.. 오랜 만에 친정에 올라왔다고요.
친구에겐 이제 백일된 젖먹이가 있어요. 아주 건강하고 두 눈이 총명해 보이는 예쁜 딸이랍니다.
친구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어요. 친구가 이런 말을 하더군요. - 고민과 걱정의 대부분은 돈 때문이더라.. 아이 가지고도 늘 돈 걱정만 했어.
아무리 봐도 넉넉하다고 할 수 없는 형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마음 한 구석이 조여오면서 아팠습니다.
친구는 임신 중에 병원에도 제대로 가지 못 했어요. 3개월 때인가.. 아이에게 아무 이상이 없다는 말을 듣고 그 다음부터는 병원에 가지 않았대요. 워낙 없는 살림인지라.. 한번 가면 족히 5~6만원은 나오는 진료비가 너무나 부담스러웠다지요.
가끔 안부 전화를 해도 힘들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기에 저는 ’적당히’ 어려운 줄만 알았어요. 한창 어려웠을 때는 30만원이 채 안되는 돈으로 한달을 살아야 했던 적도 있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전 정말 놀랐습니다.
입을 다물지 못하는 제게 친구가 말했어요. - 그냥 기도만 했어. 집에서 성당이 좀 멀어서 버스를 타야 하는데.. 그냥 걸어서 미사 드리러 다녔거든. 근데 그게 운동이 됐나봐. 덕분에 출산이 무척 수월했지 뭐야. 진통이 와서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막 뭐라고 하더라. 병원에 안 갔으니 그 동안의 진료기록이 없잖니. 나더러 이렇게 미련하고 무식한 산모는 처음 봤대..
아이를 어르며 친구가 빙긋 웃더군요. - 출산일 가까워오면서.. 계속 기도했어.. 예수님, 마리아님, 요셉성인님.. 전 제왕절개할 형편이 못 돼요. 정말 돈이 없어요. 주님의 뜻이라면 어쩔 수 없지만.. 자연분만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근데 나 병원 간지 1시간 30분만에 아이 낳았다. 의사들도 놀라고 나도 놀랐어.
정말 기적이라는 것이 있나 봅니다. 인간의 힘이 미칠 수 없는 곳에 닿는 하느님의 손길.. 오랫 동안 친구와 마주 앉아 이야기하면서.. 친구와 친구의 딸을 보살펴 주시는 하느님의 숨결을 느꼈어요. 그리고 정말 간절한 기도는 이뤄진다는 것도요.
친구는 힘든 고비를 잘 넘긴 것 같아요. 아이가 복덩이였는지.. 이제서야 숨통이 트이기 시작했대요. 근데 전.. 그게 행운이라는 생각이 안 들었어요. 가장 어려운 순간에도 하느님을 바라보고 기도했던 친구에게.. 응당 머물러야 할 하느님의 은총이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닮고 싶고,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답니다.
친구의 말이 마음에 남습니다. - 아무리 돈이 없어도, 생활이 어려워도.. 그게 중요한 게 아닌 것 같아. 하느님을 바라보는 데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거든. 이제는 걱정 안 하려고..
어떻게든 성공하고 싶어하고, 높은 자리에 오르고 싶어하고, 남들보다 앞서고 싶어하고, 많은 돈을 벌고 싶어하고.. 이런 욕심들이 채워지지 않아 늘 걱정하고 고민하고.. 지금의 제 모습이 참 어리석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 욕심들이 제 눈을 가리고 있으니.. 하느님께로부터 점차 멀어질 수 밖에요.
친구가 참 고마웠어요. 이렇게 신앙 깊은 친구가 제 곁에 있다는 것이.. 친구의 삶을 통해 하느님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말이 아니라 생활로 제게 가르쳐주고 있다는 것이..
하느님께로부터 소중한 선물을 받은 듯한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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