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8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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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님의 달에 기억하는 유다인 처녀 에디트 슈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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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미숙 [msk1009] 쪽지 캡슐

2010-05-12 ㅣ No.51558

에디트 슈타인은 유다인으로 태어났다. 유다교는 아직도 오시지 않은 구세주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므로 에디트 슈타인에게도 구세주는 아직 ‘없는’ 존재였다. 유다교 신앙을 통해 삶과 죽음에 대한 해답을 구하고자 했던 그녀는 결국 유다교를 떠났고, 한동안 철학에서 진리의 샘을 찾고자 노력했다.

그녀의 긴 기다림이 희망의 빛을 본 것은 동료 철학자의 전사 소식을 듣고 그 부인을 위로하러 간 자리에서였다. 참담한 슬픔 앞에 어찌할 바 모르는 그녀에게 부인이 말했다. “남편은 하느님의 품 안에서 영원한 평화를 누리고 있을 거예요.” 슈타인은 훗날 “그것은 내가 최초로 만난 십자가, 십자가를 지고 가는 이들에게 주시는 하느님의 힘이 함께하고 있는 십자가였다. 그 순간 나의 불신앙은 무너졌고 그리스도의 빛이 내 맘에 동터 올랐다.”고 고백했다.

그녀를 완전히 옴짝달싹 못하게 사로잡은 것은 16세기 스페인 여성이었던 성녀 ‘예수의 데레사’의 자서전이었다. 우연히 이 책을 읽은 그녀는 비로소 온전한 ‘진리’인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다. 그리고 그 진리의 이끄심에 모든 것을 바쳤다.

그리스도인이 된 그녀는 1933년 십자가의 데레사 베네딕타(십자가로 축복받은 데레사)라는 수도명으로 가르멜수도회에 입회하였다. 하지만 그녀는 나치 치하에서 자기 민족이 겪는 고통을 절감하고 있었고, 구약성경의 위대한 여성인 드보라와 유딧, 에스테르에게서 자신의 소명을 발견했다. 유다인의 불신앙에 대한 보속으로, 유다인과 그리스도인의 화해를 위한 희생 제물로서 자신을 봉헌하고자 청하였던 그녀는 1942년, 운명처럼 아우슈비츠에서 속죄의 양이 되었다.

히틀러의 광기에 덩달아 미쳐날뛰는 절망스런 상황에서도 그녀는 선이 악을 이기리라고 믿었는데, 그것은 고통에서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함께,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십자가의 힘으로 그 고통을 자기 것으로 취하는 것을 의미했다. 결국 그녀는 십자가를 기꺼이 짊으로써 주님의 사랑을 증거하고 마침내 죽음을 넘어서는 진리에 들어섰다.

성모님의 달이다. 유다인 처녀 마리아는 천사의 말씀에 “네”라고 대답한 이후 죽는 날까지 자신의 소명에 충실했다. 심장에 칼이 박힌 듯 고통스런 어머니였지만 끝까지 진리의 빛을 잃지 않았다.  

또 하나의 유다인 처녀였던 에디트 슈타인의 삶은 진리를 향한 끊임없는 여정이었다. 그녀는 “진리에 대한 추구가 나의 유일한 기도였다”고 밝혔다. 그리고 진리를 발견한 순간 온전히 자신을 봉헌했다.

찬바람 속에서도 온 힘을 다해 꽃들이 피고 있는 오월에, 강인한 여성들, 에디트 슈타인과 성모님을 기억하며 묻는다. 너는 진리를 찾았는가? 과연 그리스도가 내 삶에 진리 자체로 오셨는가? 그렇다면 그 진리로 하여 나는 세상으로부터 자유로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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