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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본 고해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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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기 [hyonggikim] 쪽지 캡슐

2016-11-07 ㅣ No.211651

영화에서 본 고해성사

 

영화 ‘Angela’s Ashes’는 아일랜드에서 미국에 이민 온 가족이 가장의 알코올 중독으로 경제적인 문제에 봉착하자 아일랜드로 역이민한 후에 주인공 프랭크가 겪은 어린 시절을 그리고 있다. 1930년과 1940년대의 아일랜드 남부 도시의 빈민가에서의 소년기, 그때 겪은 고단했던 삶, 그리고 프랭크가 돈을 모아서 꿈꾸던 이상향인 미국으로 되돌아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현재 아일랜드의 가톨릭 신자는 전 국민의 84%라고 한다. 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시절에는 아마 이 비율이 100% 가까웠을 것으로 짐작한다. 주인공 가족의 신앙심은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지 않으면 지옥에 떨어진다고 굳게 믿을 정도로 맹목적이다. 그러니 이 영화에서 주인공이 고해성사를 보는 장면이 여러 번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 이 장면들을 하나씩 짚어본다.

 

 (1) 첫영성체 전날 고해성사

주인공 프랭크는 첫영성체 전날에 다음과 같이 고해성사를 했다.

거짓말했습니다. 동생을 때렸습니다. 엄마 지갑에서 돈을 조금 훔쳤습니다. 금요일에 소시지를 먹었습니다. 친구들이 여자아이들 흉보는 걸 엿들었습니다.”

고지식해 보이는 신부는 보속으로 주님의 기도 세 번과 성모송 세 번을 바치거라. 그리고 특별히 나를 위해 기도해다오.”라고 했다.

신부님, 저는 무척 나쁜 아이지요?”

아니다. 얘야, 앞날이 창창한 아이가 그렇게 말하면 안 된다.”

 

특별히 나를 위해 기도해 달라던 그분은 겸손한 분인가 보았다. 어린아이의 심성을 제대로 읽으시고 적절히 훈계한 것 같다. 하긴 나이 어린 소년이 죄를 지어 보았자 다 그렇고 그런 거지. 나이 든 나는 영세 당시의 순수한 마음은 사라지고 이제는 금요일에 다른 절제를 하지 않았으면서 육식을 하고도 죄의식을 느끼지 않을 만큼 뻔뻔스러워졌는데.

 

(2) 첫영성체 날 고해성사

프랭크가 첫영성체하고 나서 골목길에서 토하자 할머니가 토사물에 성체가 섞였을 테니 큰 죄를 지었다며 그 아이에게 바로 신부님께 고해성사하라고 떠다밀었다.

고백한 지 하루 지났습니다.”

하루? 그래, 하루 만에 무슨 죄를 지었느냐?”

늦잠 자서 첫영성체를 못 할 뻔했습니다. 머리카락이 엉망인 채로 성당에 갔습니다. 성체를 토해버렸습니다. 할머니가 그걸 보시고 길거리에 주님을 버렸다며 어찌하면 좋을지 신부님께 여쭈어 보라고 하셨습니다.”

할머니더러 더럽혀진 성체를 물로 씻어내라고 말씀드려라.”

 

신부의 말을 전하자 할머니는 성수로 씻어내라는 말씀이냐, 아니면 허드렛물로 씻어내도 된다는 말씀이냐?”

신부님은 확실하게 말씀하지 않으셨는데요.”

다시 가서 여쭈어 보아라.”

 

고백한 지 1분 되었습니다.”

“1? 네가 조금 전에 여기 왔던 바로 그 아이냐?”

, 신부님.”

이번에는 또 뭐냐?”

할머니가 성수로 씻어내야 하는지 허드렛물로 씻어내도 괜찮은지 여쭈어 보라던데요.”

 

신부님이 허드렛물 씻어내라던데요. 그리고 다시 귀찮게 굴지 말라고 하셨어요.”

귀찮게 굴어? 사람 말을 무시하는 꽉 막힌 신부 같으니라고. 이제부터 헌금 바구니에 한 푼도 안 넣을 테다.”

 

짜증스러움을 꾹꾹 눌러 참던 신부와 심술궂어 보이던 할머니의 표정이 재미있었다. 할머니가 시키는 대로 군소리 없이 따르던 소년의 인내심도 보통이 아니었다.

 

(3) 수음(手淫=masturbation)을 고백

어느덧 사춘기에 들어선 소년은 성적(性的)인 충동으로 친구들과 어울려 습관적으로 수음에 빠지며 오랫동안 고해성사 때문에 고민한다. 성적인 고백을 하기가 민망스러워서인데 친구가 거리낌 없이 고백할 수 있는 사제를 찾았다는 낭보를 전한다.

 

그 신부는 나이가 90인데 귀가 꼭 막혀서 한 마디도 알아듣지 못해서 고해실 안에서 그냥 앉아서 알아듣는 체 하기만 했다. 소년은 재미있어서 죽겠다는 표정으로 고백한다.

고백한 지 여러 해 되었습니다. 여러 해 동안 줄곧 수음했습니다.”

 

그다음날 그 신부는 세상을 떠났는데 그걸 몰랐던 소년이 2주가 지나 가벼운 마음으로 고해실을 찾았더니 다른 신부의 목소리가 들려서 당황한다.

 

고백한 지 2주 되었습니다.”

얘야, 그동안 무슨 죄를 지었느냐?

동생을 때렸습니다. 어머니에게 거짓말했습니다. 그리고 더러운 짓을 했습니다.”

혼자 그랬냐? 아니면, 다른 사람과 함께 그랬냐?”

 

민망한 죄를 짓고 내 목소리를 알아들을 우리 성당의 신부님을 피해 멀리 다른 성당을 찾아가서 고백한 오래전 일이 생각났다. 이 장면에서 나는 나이 들고 귀까지 먼 신부님이 고해신부로는 적격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니 나는 아직도 철이 덜 든 탓이겠지.

 

(4) 성 관계 상대 처녀가 죽은 후 고해성사

열네 살에 학교를 그만두고 전보 배달원으로 일하다가 배달하러 자주 가던 집의 데레사라는 처녀의 유혹에 빠져 가끔 성관계를 맺었는데, 그 처녀가 그만 폐결핵이 악화하여 죽자, 혼전 성관계로 그녀가 지옥에 떨어졌을까 봐 괴로워한다. 어느 날 성당을 찾아 성 프란치스코 성상(聖像) 앞에 촛불을 켜놓고 혼자 눈물 흘리는 걸 보고 인자하게 생긴 신부가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고해성사를 보지 않겠느냐?”

신부님, 그럴 수 없습니다. 저는 끔찍한 죄를 지었습니다.”

그럼, 성 프란치스코에게 괴로운 일을 모두 말씀드리거라. , 우리 함께 여기 앉자꾸나.”

 

그래서 소년은 성상 앞에서 무능하고 무책임한 술주정뱅이 아버지 얘기, 가난해서 고통받고 세상 사람들, 심지어는 수도사에게도 무시 당한 얘기, 어느 처녀의 유혹에 빠져 여러 차례 성관계를 맺었는데 얼마 후 폐결핵으로 그녀가 죽었다는 얘기, 아버지가 영국으로 떠나고 소식이 없자 생활고로 도움받던 친척 아저씨와 불륜에 빠진 어머니 얘기, 그런 어머니를 미워하는 자신의 얘기를 모두 털어놓고 나서 신부에게 물었다.

 

신부님, 데레사는 지옥에 떨어졌겠지요?

아니다. 얘야, 그 아이는 분명히 천국에 있을 거야. 병원에서 일하던 수녀님들이 그 아이가 병자성사를 받고 죽도록 했을 테니까 말이다. ”

정말 그럴까요, 신부님.”

그렇다. 하느님은 너를 용서하실 거다. 그리고 넌 자신을 용서해야만 한다. 하느님은 너를 사랑하신다. 그러니 너 자신을 사랑해야만 한다. 네가 하느님과 네 자신을 사랑해야만 너는 모든 이들을 사랑할 수 있는 거다.”

 

이 신부님의 말씀을 들으니 영화를 보던 나도 마음이 평온해졌다. 나는 지금까지 이런 고해 신부님들을 여러 분 만났으니 다행이다. 임종 직전에 병자성사를 받으면 죄를 고백하지 않더라도 전대사를 받아서 지옥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니 임종이 다가오니 무슨 일이 있어도 신부님을 찾을 일이다.

 

이 영화를 보며 고해성사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고작 1년에 한 번, 많아야 두 번 정도만 고해성사하는 엉터리 신자에서 벗어나야 할 텐데.

 

(2016 1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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