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6일 (토)
(녹) 연중 제13주간 토요일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으냐?

자유게시판

두 지도자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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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철 [kaepo1] 쪽지 캡슐

2009-07-04 ㅣ No.137229

의정부교구 선교사목국에서 발행한 나무그늘(2009.0708,제51호) 이라는 소책자에
실린 의정부교구 교구장 이한택주교님의 글 입니다.
 
 
여기에 의견을 달지도 않고  원문을 한자의 가감도 없이 있는 그대로 옮기겠습니다.
 
 
 
우리 한국 교회의 가장 큰 어른이시며 온 겨례의 정신적 기둥이셨던 김수환 추기경님의 선종을 아직도 가슴 속에 간직하고 있는데, 노무현 전 대통령님의 자살 소식에 온 나라가 충격과 비통함에 빠졌고, 대통령님의 국민장이 끝나고 한참 지난 지금 까지도 그 후유증에 온 국민이 시달리고 있습니다.
 
사실 추기경님의 죽으심도 엄청난 "후유증"을 남기신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두 분
지도자들의 죽으심의 후유증은 극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한 분은 우리에게 잔잔하면서도 깊은 평화와 기쁨을 계속 전파하고 계시고, 또 한 분은 계속 불안감과 분열의
원인을 제공하고 계십니다.
 
이 세상에서의 삶을 마감하는 과정으로서의 죽음이라는 점에서는 두 분의 죽으심이
아무런 차이가 없었지만, 한 분은 이 엄숙한 순간을 온전히 하느님의 뜻 안에서 기꺼이
받아 안으심으로 선종하셨고, 다른 한 분은 스스로 시간과 장소와 방법까지 선택 함으로써(적어도 천주교의 입장에서 볼 때)선종을 거부 하셨습니다.
 
추기경님은 생전에 겪으신 고통 뿐만 아니라 생을 마감하는 순간 까지의 모든 번민과
고통을 기꺼이 감내 하셨습니다. 대통령님은 당신께 오는 고통과 번뇌가 너무 커서
그 고통과 번뇌를 맞서 싸우기 보다는 도피하려 하셨습니다.
 
두 분의 죽으심은 그 과정과 결과에서도 확실한 대조를 보여 줍니다. 추기경님은 입원하신 상태에서도 문병객들을 꾸준히 맞이하셨을 뿐 아니라,오히려 문병객들을 위로해
주시고 격려해 주시며 우리 힘을 북돋아 주셨습니다.
 
대통령님은 자살을 선택하셨기 때문에 문변 같은 일은 있을 수도 없었거니와 자살 직전에는 경호원마저 따돌려야 했습니다. 동행했던 경호원의 마음의 상처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지요.
 
추기경님은 마지막 순간까지 의식을 정돈하시며 살아 있는 우리에게 말씀으로 유언을
남기셨습니다."감사합니다. 서로 사랑하십시요" 이 감동적인 유언의 말씀은, 지금도
입에서 입으로 가슴에서 가슴으로 메아리져 가고 있습니다. 또 당신의 각막을 기증하심으로 다른 이의 시력을 회복해 주셨을 뿐 아니라, 장기 기증 운동과 사랑 나누기 운동의
시동을 걸어 주셨습니다.
 
이 운동은 확성기를 통한 선전 선전 없이도 전국 방방곡곡으로 파도쳐 나가고 있습니다.
이운동에 동참하는 이들은 학연이나 지연이나 정치이념을 초월하고  그야말로 남녀노소를 가릴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대통령님의 죽으심에서는 정황상으로 볼 때 이와 비슷한 일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추기경님의 빈소는 명동 대성당에 마련 되었고 전국 성당에서는 모든 신자들의 연도가
이어졌습니다. 명동 대성당에 문상객들은 매스컴에서 김수환추기경 신드롬이라고 할
정도로 여러가지 감동적인 일들이 일어났지요, 때로는 수 킬로씩 줄을 서서 매서운 추위를 견디어야 했는데도, 단 몇 초를 문상하기 위하여 몇 시간을 기다리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 주변 상가에서는 따뜻한 커피 또는 물을 제공하기도 하며 서로 돕는 모습들을
쉽게 볼 수 있었지요.
 
명동에는 여야 정치인들은 물론 전두환 전 대통령님도 오셨었고 우리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모셨었습니다.
 
대통령님의 빈소가 마련된 봉하마을과 전국 도처에 마련된 분향소에는 글자 그대로
인산인해를 이루었지요, 그런데 봉하 마을에 가신 분들 중에는 문상 거부를 당하거나
심지어는 계란 세례까지 받고 되돌아오신 분들도 계셨습니다.
 
추기경님의 장례미사는 장엄하지만 조용하게 엄수되었고 용인 성직자 묘지에 안장
되셨습니다.
 
대통령님의 장례는 국민장으로 치러졌으며 장렛날은 전국이 노란 바다였습니다.
장례식에서 현직 대통령님이 조사를 하시는 중에 고성을 지르는 일도 벌어졌습니다.
 
추기경님의 장례가 끝난 지금 전국에는 사랑 나누기 또는 장기 기증운동이 잔잔한
가운데 힘차게 번져 나가고 있습니다. 대통령님의 장례가 끝난 지금 우리 사회와 정국은
더 큰 혼란과 불안에 잠겨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선종과 자살은 같을 수 없습니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히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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