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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로 살아온 것 같아 억울해지는 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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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요하 [jiyoha] 쪽지 캡슐

2009-09-18 ㅣ No.140188

           '바보'로 살아온 것 같아 억울해지는 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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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미성지 순교자 유해실에서 / 2003년 7월 충남 서산시 해미면의 '천주교 해미성지 유해실'에서 기도를 했다. 천주교계 월간지 <생활성서>사에서 취재차 오신 기자 수녀님이 사진을 찍어주셨다.  

평생을 정직하고 고지식하게 살아왔다(어언 환갑을 넘기고 나니 이런 얘기도 할 수 있는 것 같다). 쑥스럽고 부끄러운 말이기도 하다. 이유는 두 가지다. 별 볼일 없는 사람의 주책 모르는 자기 자랑일 것도 같고, 세상을 너무 무능하게 살아왔다는 못난 고백일 것도 같다.

필경 고지식함과 정직은 '무능'과 쉽게 통할 터이다. 고지식하고 정직하다는 것은 현실적 무능을 의미하거나 내포한다는 말에 반론을 제기할 자신이 없다. 또 내가 지금 '평생을 정직하고 고지식하게 살아왔다'는 말을 하고 있지만 그것의 질량을 나로서는 계량할 수가 없다. 인간의 눈으로는 그것을 판별할 수 없고, 오로지 하느님 앞에 가서나 내 눈에도 확연히 보이게 될 것이다.

아무튼 나의 이런 말 자체도 하느님 앞에 가서는 진위가 드러날 것으로 생각하면서, 이왕 내놓은 말이니 그냥 하자. 평생을 고지식하고 정직하게 살아왔다. 내가 '바보'임을 수없이 실감하고 확인하면서 정말 아둔패기 꼴로 평생을 살아왔다. 이런저런 현실적인 손해도 적잖이 겪고 감수했다.

'정직'과 '양심'이라는 단어는 내 삶 속에서 참으로 중요한 명제였다. 그것은 일단 아버지로부터 왔고, 종교(천주교)로부터 왔다. 아버지는 어린 자녀들에게 이런 말씀을 자주 하셨다. "죄짓고 사는 것보다 가난하게 사는 게 몇 천 배 낫다." "내가 하는 일을 하느님이 다 보신다. 내 마음, 내 생각까지 하느님은 아신다." "늘 '하느님의 눈'을 생각하면서 살아야 한다." 등등….

물론 철없던 청소년 시절에는 사고도 쳤고, 젊은 시절에는 너무 술을 좋아한 나머지 방탕에 가까운 생활을 한 적도 있지만, 일찍이 아버지가 주입시켜 준 '하느님의 눈'을 알게 모르게 늘 의식하며 살아야 했다. 철이 들어갈수록 아버지의 말씀이 더욱 명료해지는 현상도 경험했다.

한때는 아버지의 지독한 가난과 현실적인 무능을 모멸의 눈으로 보기도 하고 원망도 했지만, 종래는 그것이 아버지의 종교적 구원관과 연결되는 것임도 알게 되었다.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지을 때 엄청난 금전을 바치고 '통정대부'라는 작호를 받았던 증조부로부터 내려온 튼실한 가세가 백부에게서 모두 유실되어, 백부에게서 한 평의 땅도 얻지 못했음에도 평생 동안 자신의 장형에게 항의 한번 하지 않고 그저 공대만 하고 살아오신 선친의 태도를 이해난망의 눈으로 본 적도 있지만, 그것 역시 선친께는 영적인 자산이 되었음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평생을 가난 속에서, 현실적인 아무런 욕심도 없이, 그저 맑은 동심을 유지하며 동화와 시를 짓고, 청년 시절 스스로 찾고 얻은 가톨릭 신앙 안에서 올곧게 사시다가(아내를 지독히 고생시킨 죄만을 안고) 이승을 하직하신 선친에게서 물려받은 '양심'과 '정직'이라는 단어는 내 삶에서 나도 모르는 사이 속성이 되고 관성이 되고 철칙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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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미성지 '14처' 앞에서 / 2003년 7월 가족과 함께 천주교 해미성지에서 '14처'를 돌며 '십자가의 길' 기도를 했다. 천주교계 월간지 <생활성서>사에서 취재차 오신 기자 수녀님이 사진을 찍어주셨다.  
ⓒ 지요하  해미성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법치(法治)'를 거스른 적은 거의 없다. 철이 들면서 '법치'보다는 상식과 순리가 우위라는 인식을 가지면서도, 그 순리와 상식을 위해서도 더욱 열심히 경우 바르게 살려고 애를 써왔다.

병역의무도 현역 복무 36개월을 꽉 채우는 형태로 완수했다. 후방(논산훈련소 조교), 베트남 전장(백마사단 도깨비연대 전투병), 전방(중동부 전선 15사단 38연대 철책선 분대장) 등으로 군대생활을 알차게 했다.

공직에 있어보지를 않았으니 '뇌물'이라는 걸 주고받을 위치에는 있지도 않았다. '공돈'이라는 건 한번 구경해 본 적도 없다. 예술잡지에 '예술인 탐방기'를 쓰면서, 또 지역언론매체에 몸담고 있으면서 누구를 인터뷰할 때 거마비 정도를 받은 적은 있으나 그것 역시 공돈은 아닐 터이다.      

단 한 번 뇌물을 주어본 적은 있다. 군대 시절 논산훈련소에서 파월 지원을 할 때다. 두 번이나 나 한 사람에게만 특명이 떨어지지 않아서 연대본부 인사과 병장에게 3천원의 뇌물을 쓴 적이 있다. 그때 인사과 병장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이상하다. 다른 지원자들은 그대로 다 통과가 되는데, 너 하나만 연대장 결재에서 걸린다 말야. 그 이유를 모르겠어."

그러나 다행히도 세 번째 지원에서는 연대장 결재에서 통과가 되었다. 특명이 나서 부대를 떠나게 되었을 때 논산훈련소 제28교육연대장 문영창 대령이 9중대 졸병인 나를 불렀다.

"내가 월남에서 대대장을 하고 와서, 너를 월남에 보내고 싶지 않았다. 너는 아무 줄도 없고 빽도 없는 놈이니 그대로 말단 전투병으로 가게 될 것이 뻔해서…. 그런데 네가 하도 월남엘 가고자 하니, 나도 곧 국방대학원 입교를 하게 돼서, 결재를 했다. 월남 생활을 무사히 마치고 오기를 빈다."

그러며 그는 내게 봉투 하나를 주었다. 연대장실을 나와서 봉투를 열어보니 3천원이 들어 있었다. 내가 인사과 김 병장에게 뇌물로 준 돈과 일치하는 금액이었다. 고마운 마음과 신기한 마음으로 찔끔 눈물이 났다.

연대장 문영창 대령이 일개 사병인 나를 그렇게 기억하고 생각해 준 것은 1969년 11월의 '삼선개헌' 국민투표와 관련이 있다. 2,500여 명 연대병력 전체가 공개투표를 했다. 당연히 전원 찬성이었는데, 막판에 반대표가 하나 나왔다. 공개투표장에서 과감하게 반표를 찍은 병사가 누구인지를 연대장은 알아본 모양이었다. 그 날부터 내 이름은 그의 뇌리에 각인이 된 성싶다.

얘기가 잠시 곁길로 나갔지만, 나는 큰 일이든 작은 일이든 옳지 않은 것에는 따라붙지 않는 습성이 있다. 언제나 옳은 선택을 위해 고민을 했고, 양심과 정의를 결부시켰고, 그리고 용기도 발휘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위장 전입이라는 것은 한번 꿈도 꾸어보지 않았다. 그럴만한 팔자도 아니었다. 위장전입이라는 말도 지난 2000년 전후 '국민의 정부' 시절에 처음 들어보았다. 위장전입이 문제가 되어 두 사람이나 국무총리가 되지 못하고, 또 한 사람은 경제부총리가 되지 못하는 상황을 지켜보았다.

그 사람들 나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나라의 법을 거스르고 깔아뭉개고도 태연히 큰 벼슬을 받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이 너무도 뻔뻔스럽게 보였다. 인사권자가 벼슬을 준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범법 사실을 의식하고 미리 사양을 해야 할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다.

나는 그때 하느님께서 인간에게만 베푸신 '수치심'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몰염치와 파렴치와 후안무치 등의 단어들을 떠올리면서 야당(한나라당) 쪽 인사청문회 투사들을 응원했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위장전입 정도 가지고 뭘 저러나? 너무 극성이다. 혹시 겨 묻은 개가 똥 묻은 개 나무라는 거 아니냐?" 등등의 말을 하는 것도 귀담아듣지 않았다. 나는 정말로 한나라당을 응원했다.

그리고 인사청문회의 위력으로 말미암아 두 사람이나 국무총리가 되지 못하고 경제부총리 후보자도 낙방을 하는 것을 보면서 민주주의의 진일보와 실체를 확인하는 기분을 맛보았다. 속상해하는 마누라를 달래며 한나라당의 승리를 마음속으로 축하했다. 이건 진심이고 진실이다.

<3>


▲ 작업 모습 / 우리 집(아파트) 거실 한쪽에 컴퓨터를 놓고, 주로 오전에 글 작업을 하며 산다. 2003년 7월 천주교계 월간지 <생활성서>사에서 취재차 오신 기자 수녀님이 사진을 찍어주셨다.  
ⓒ 지요하  원고 집필

그런데 나는 요사이 심각히 분열증상에 빠져 있는 것 같다. 위장전입에다가 여러 가지 범법 사실이 있는(그게 세상에 고스란히 드러난)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 노상 '법치'를 운위한다. 위장전입 같은 건 기본이라는 듯이, 그걸 거리낌없이 해온 사람들이 아무 문제없이 검찰총장도 되고, 장관도 되고, 대법관도 된다.      

그건 정말 아무런 문제 거리도 되지 않는 상황이다. 왠지 야당 의원들도 그걸 크게 문제삼지 않는 것 같다. 나 혼자 하는 생각일지 모르지만 훗날 정권이라도 잡게 되면 큰 벼슬을 얻게 될 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일을 오늘 만들지 않겠다는 속셈일지도 모르겠다. 위장전입 정도는 문제되지 않는 풍토를 만들어놓겠다는 심산일지도 모르겠다는 얘기다.

하여간 나라꼴 '엿장수 맘대로' 판이다. 미국 '북부보스톤교회' 홍석환 목사의 말대로 대한민국 참 이상한 나라다. 코미디도 보통 코미디가 아니다.

"자기는 위장전입을 해 놓고 위장전입을 한 사람을 기소하는 검찰총장이 된 사람이나, 자기는 위장전입하고, 위장전입 사건을 맡으면 법대로 하겠다는 대법원 판사 후보자나, 이런 후보자를 고위 공직자로 임명하려는 대통령도 위장전입을 한 사실들이 있는 나라. 이 분들이 다스리는 나라는 도대체 어떤 나라인가? 자식 사랑이 너무도 지극하여 잘못 할 수도 있다. 잘 못을 했으면 벌을 받아야지 힘없는 서민들이나 벌을 받고 힘있는 사람들은 버젓이 활보하고 공직을 맡겠다니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디 있나? 그것도 벌건 대낮에 말이다. 그리고 잘못한 사실이 있으면 점잖게 사양을 해야지 왜 그것도 검찰총장에다가 대법원 판사가 되려고 하나? 이건 말도 안 된다. 그러고서 어떻게 법을 지키라고 하는가? 더구나 밝혀지지 않았으면 그냥 묻어갈 수 있다지만 버젓이 시인을 하면서도 공직을 맡겠다는 심보는 뭔가?"

구구절절 옳은 말이기에 너무도 통절하다. 뻔뻔스러운 벼슬아치들은 그 뻔뻔스러움 때문에 심적 고통이 없겠지만, 나 같은 소시민은 허탈감도 크고 심정이 매우 아프다. 이런 뼈아픈 심사를 누가 달래줄 것인가.

앞서도 말했지만 나는 평생을 범법이라는 걸 모르고 살았다. 3년 만기 복무로 병역의무도 완수했고, 위장전입 한번 마음먹은 적도 없고, 부동산 투기도 한 번 한 적이 없다. 범법이라고는 교통단속 카메라에 걸리고 주차위반에 걸려 범칙금을 몇 번 물은 것밖에는 없다. 음주운전을 한 적도 없다.

'이소성콩밭 요관협착증' 수술을 받은 적이 있는 아들녀석의 콩팥 하나가 방광 근처 골반뼈 앞에 위치하고 있어 녀석은 축구 같은 격한 운동을 하지 못하고 사는데, 그 사실을 활용하면 병역 면제를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녀석은 입영을 하기로 했다. 친구들 모두 군대 가는데, 저 혼자 면제를 받으면 친구들 보기 미안하다는 게 녀석의 말이다.

나는 녀석에게 감사하고 격려했다.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하여 굵은 벼슬아치들과 한나라당 국회의원들 가운데는 질병, 고령, 생계곤란 등의 이유로 병역면제를 받은 사람들이 셀 수조차 없이 많은데, 너는 그런 '비정상적인' 부류 속으로 들어가지 말라"는 말도 호기롭게 해주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니 내가 바보짓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평생을 고지식하고 정직하게 살아왔음이 갑자기 슬퍼지고 억울해진다. 고지식하고 정직하다는 것은 바로 내가 '바보'라는 소리밖에 안 된다는 생각이 왕왕 든다.

정말 슬프고 억울하다. 범법을 저지르고도 버젓이 벼슬을 하고 나랏일을 하는 사람들 앞에서 '법치'에 주눅들며, 그런 사람들의 다스림을 받아야 하는 나는 도대체 뭔가. 그런 현상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하등의 문제로 여기지 않는 국민들 속에서 도대체 나는 뭔가? 도대체 어디 가서 이 박탈감과 억울함을 위안 받아야 하나.

그나마 내가 천주교 신자라는 사실이 천만 다행이다. 하느님 앞에서나 나는 위안 받을 수 있다. 내 모든 것을 챙겨보시고, 내 머리카락까지 세어두신 하느님 앞에 가서나 나는 위안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것만을 생각하고 오늘 가만히 죽치고 살아서는 안될 것이다. 그것은 하느님의 뜻이 아니다. 이 억울하고 슬픈 심사를 글로 풀기라도 해야 한다. 내 나름의 방법으로 저 '옳음'을 향해 발언하고 작은 행동이라도 하고 살아야 하느님 앞에서 셈 받을 수 있는 점수를 쌓는 일이 될 것이다. 이것이 내 신앙 신념이다.
                      
              
09.09.17 14:09 ㅣ최종 업데이트 09.09.17 18:22
위장전입, 양심과 정직, 인사청문회, 징집면제
출처 : '바보'로 살아온 것 같아 억울해지는 심사 - 오마이뉴스
ⓒ 2009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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