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8일 (월)
(녹) 연중 제14주간 월요일 제 딸이 방금 죽었습니다. 그러나 가셔서 손을 얹으시면 살아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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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선생님이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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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순 [bis10] 쪽지 캡슐

2000-02-25 ㅣ No.960

                        < 야, 선생님이셔! >

 

 

  28년 만에 졸업시킨 제자들과 만나는 회식자리였다.  일찌감치 온 녀석들의 술잔을 연거푸 받고  있는 중이었다. 뒤늦게 온 종성이라는 제자 녀석이 들어왔다.

  "야, 다들 참으로 오래간만이다."

하면서 반가운 악수를 청한다. 그리고 나서는 내 등을 탁 치면서

   "야, 오래간만이다. 너, 지금 무얼 하니?"

하면서 나에게 악수를 청한다.

  "야, 종성아 오래간만이다. 나는 교사 노릇하는데 너는 무얼 하니?"

  "응, 나는 분당에서 조그만 건설회사하나 운영하고 있어."

하면서 건설회사 대표라는 명함 한 장을 나에게 건넨다. 다른 제자들은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고 야단들이다.

  이번에는 종성이가 한술 더 떠서

  "야, 내 술 한 잔 받아라. 그런데 너는 왜 그리 늙어 보이니?"

머리가 희끗희끗하고 잔주름이 얼굴에 그려진 나를 보고서 종성이는 나에게 잔을 내민다.

 "어, 그저 코흘리개 아이들과  날마다 씨름을 하느라고 그렇지 뭐."

 "그런데 선생님이 아직도 오시지 않았니?"

 "야, 임마! 네 앞에 계신 분이 선생님이셔, 선생님!"

 "어이구! 선생님 죄송합니다."

하면서 종성이는 너부죽이 큰절을 올린다.

  벌써 제자들의 나이도 불혹(不惑)을 넘어서고 있었다. 나같이 머리에 희끗희끗 서리가 내리기 시작한 제자고 있었고, 다들 살아온 삶의 자리들이 역력하였다.

  6학년 때에도 새치가 많았던 영진이는 머리가 나보다 훨씬 흰 서리가 내렸다.

 "야, 영진아! 너 머리 염색 좀 하지 그래?"

 "선생님, 대학생들이 맞먹으려고 해서 그냥 그대로 다녀요."

 일찍 대학교 교수가 된 권위를 머리로부터 두려나 보다.

 모두들 28년 전 무성영화를 돌리면서 한 잔씩 두 잔씩 받아 마시니 술이 꽉 찼다. 다들 삶의 이 골목 저 골목에서 결혼하고, 자식 키우면서 살고 있다.

다만 6학년 때 힘이 좋고 마음이 넓어 시억시억 굳은 일을 잘 하던 동규 녀석만 노총각이라니…. 그 녀석이 나를 업고서 반갑다고 방을 두어 바퀴 돈다. 그 때도 그 녀석은 힘이 장사였다. 동규의 등판에서는 살아온 날들의 고단함이 짙게 배어 나왔다.

  그 녀석들이 붙잡아주는 장거리 택시를 타고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함박눈이 차창을 부딪치기 시작했다. 검은 어둠 속으로 흰 눈처럼 한 송이 한 송이 다가오는 그 녀석들의 얼굴 하나 하나를 떠올리면서….

  

  마지막으로 부딪는 아직도 장가 안간 동규, 그 녀석 특유의 머리 긁적이고 씨익 웃는 모습이 왜 그런지 아련하고 오래오래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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