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6일 (토)
(녹) 연중 제13주간 토요일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으냐?

자유게시판

의사들이 왜 파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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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준균 [jklee2] 쪽지 캡슐

2000-08-11 ㅣ No.12857

안녕하십니까?

저는 지난번 1차 파업떄 한번 자유게시판에 글을 올렸던 이준균 요셉이라고 합니다. 현재 모 대학병원에서 신경과 전임의로 일하고 있지요. 당시 많은 분들이 읽어주신 데 대해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읍니다. 제 생각에 찬동하든 반대하든 말입니다.  파업이 끝난후 병원일 바빠서 오늘의 묵상만 보다가 자유게시판에는 거의 들어와 보지 못했읍니다. 오늘 이렇게 다시 들어와 보니 정말 많은 의견들을 제시해 주셨군요.

일반 시민들의 감정(혹은 인식)이 어떤지 저는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도저히 이해를 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겠지요?

그러나 저는 지난 월요일부터 파업에 들어갔읍니다.  그러고도 가톨릭 신자냐?라고 하실 분도 계시겠지만 다음 제가 드리는 질문을 차분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따위 변명은 읽을 가치도 없어 하시는 분은 이쯤에서 창을 닫고 나가셔도 되구요. 어쨌든 환자를 보는 의사로서 파업에 적극 찬동한 저로서 나름의 이유를 대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어떤 분은 의사들이 무얼 요구하는지 제대로 알 수 없다, 시민단체보다 더 설득력이 없다 하셨는데 저희들이 요구하는 것은 단 하나입니다. 제대로 법을 어기지 않고 양심껏 진료할 수 있게 해 달라하는 것이지요.  그럼 누가 법을 지키지 말라고 했냐 양심진료하지 말랬냐라고 하실 분도 있을줄 압니다.

예를 들어 보지요.  Hemo-Vac(수술후 봉합상태에서 내부의 액체를 뽑아주는 기구) 같은 경우 작은 수술이면 1개면 됩니다. 그러나 큰 수술이고 부위가 넓으면 3개이상 필요할 수도 있지요.  그러나 보험 인정은 1개에 한해서 해줍니다.  의사들은 금방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됩니다. 1개만 넣으면 병원이 손해 볼 일은 없지만 환자의 상처가 잘 아물지 않아 곪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의사로서 할 일이 아닙니다. 3개를 넣으면 2개에 대해선 비보험 처리되죠. 환자에게 2개에 대한 값을 다 받으면 병원은 손해보지 않습니다. 그러나 환자의 부담이 증가되죠.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나중에 이것이 보험심사에 걸리면(2개에 대해 돈을 환자에게 받으면 불법으로 되어있음) 곧 부당청구가 되어 환자에게 전액 환불해 줘야 하죠. 이런 것이 너무 불합리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므로 눈감아 주기도 하지만 병원이나 의료계를 한번 칠 필요가 있다고 판단이 되면 부당청구했다 해서 (안받을 걸 받았다해서) 언론에 공개가 되어 도둑놈으로 몰고 가지요.

이런 식으로 의사들은 의료윤리와 경제논리 사이에서 딜레마에 내몰리게 되지요. 가끔이 아니라 지금도 항상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대개의 환자(시민)들은 이런 내막을 모르고 언론에서 한번 터뜨리면 2개를 더 써서 상처치유가 잘 된 것은 모르고 2개값을 더 받았다고 비윤리적인 의사놈들 하고 몰아가지요.  그냥 나쁜 놈이다 하기에는 명분이 약하니까 들이대는 것이 바로 허준/히포크라테스지요.

 형제/자매님께서 목에 종양이 있다고 가정해 보겠읍니다.

이게 만일 단순조양(양성 종양)이라면 종양만 제거하면 되지만 악성종양()이라면 미용은 나중 문제고 목 주위를 광벙위하게 절제해야 되겠지요. 그 사람의 인생에 있어 천지차이지요. 이것이 어떻게 결정되냐 하면 병리 슬라이드 판독에 전적으로 의존하게 되지요. 그러나 이렇게 중요한 행위에 전혀 가치를 인정해 주지 않습니다.  판독료는 아예없고 몇천원하는 슬라이드 제작비만 주지요. 도대체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흉부 X-선 판독료가 미국은 19만원 정도라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촬영료 몇천원 밖에 없지요. 심전도 판독에 미국은 12만원 하지만 우리나라는 2천 몇백원의 검시비만 물릴 뿐입니다.(미국에 비교하는 것은 많은 분들이 미국의 의료서비스 수준을 외래에서 이야기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와 미국의 소득 수준이 차이가 있으므로 당연히 십몇만원 요구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예 돈을 안준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이야기지요)

의사가 병리 슬라이드를 잘 못 판독해서 혹은 X선 사진을 잘못 판독해서 암이 아닌 환자를 암으로 진단내리게 했다면 당연히 의사는 그 책임이 있읍니다. 그 결과 안해야 될 수술을 했다면 대부분의 형제/자매님들이 소송을 제기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 판독을 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전혀 인정을 해주지 않는 것이 과연 제대로 된 사회라고 진정 생각하시는지요?

물론 의료계 내부에도 제약회사와의 유착이라든지 탈세, 소득누락 같은 비리가 많이 있을 줄로 압니다. 이것은 분명 시정되어야 할 부분이지요.  중요한 것은 요즘의 의료대란이 이런 의료윤리의 문제 때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현재는 아주 중요한 순간이지요. 앞으로 몇십년의 의료환경을 결정지을 의료 시스템 정비의 문제가 초점이지요.  부패와 비리는 우리 사회 여러 집단에 광범위하게 퍼진 문제로 의사사회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최근 3-4일을 제외하면 언론, 방송에서 의사들의 문제인식을 국민들에게 보여준 적이 거의 없다고 기억됩니다.

 

허준/히포크라테스에 대해 말해 보겠읍니다.

아마 제가 레지던트 2년차였을 때로 기억합니다. 당시 중환자실에 사립체 질환을 앓아 숨도 혼자 못쉬고 사지의 힘이 하나도 없었던 환자가 있었읍니다.  남편은 일용직 노동자였고 환자는 아직 20대 후반의 젊은 여자였으며 아이가 하나 있었읍니다. 겨우 인공호흡기를 뗄 수 있어 잘되었구나 했는데 그녀의 어머니가 눈물로 하소연을 하더군요. '제 힘으로 숨을 쉬니 제발 집으로 가게 해주세요.  설사 집에서 죽더라도 하루하루 병원비 부담하는 것보다 나을테니까요'

지금은 절대로 퇴원할 시기가 아니다라고 했지만 그 대화를 나눈뒤 많은 생각을 했읍니다.

도대체 세상은 왜 이런가?  왜 이런 사람들은 제대로 된 치료도 못 받을까?  나는 전세지만 25평 아파트에 살고 있고 자가용도 가지고 있고 가끔 가족들과 밥 먹으러 가기도 한다. 내가 저 사람을 도와주면 안될까? 왜 내가 그러지 못하는 걸까?  이런 자괴감도 들었읍니다.

사실 저는 그분을 도와주지 못했읍니다. 1-2만원 도와준다면 아무 도움이 안될거 같고 몇십만원이라면 도울 용기가 솔직히 없었읍니다. 형제가 굶어죽는데 배불리 먹는다면 모두 살인자들이다라는 간디의 말처럼 저도 그 환자분의 건강악화에 일정부분 기여했다면 진정으로 하느님께서 용서해 주시기를 바랍니다(환자는 결국 며칠 더 일반병실에 있다 퇴원했다). 허나 어떤이가 '왜 그 환자에게 경제적으로 도움을 주지 못했냐'고  말한다면 저는 슬픔과 더불어 불쾌감도 느낄 것입니다. 아마 이 글을 읽는 형제분들도 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같은 느낌을 가지실 거라 생각합니다. 사실은 어떤 개인이 할 것이 아니라 정부가 이런 분들의 문제를 해결해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선진국의 1/3-1/5 수준의 의료비를 부담하는 상황에서 더 이상 수가 인상하면 분업 불참하겠다는 시민단체나 의보재정의 국고 부담에 조금도 관심이 없이 의사들만 위와같이 불쌍한 환자들과 맞닥뜨리며 고민하게 미루는 정부가 과연 히포크라테스를 말 할 자격이 있는지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타인에 대한 도덕적 비난은 대개 본인의 도덕적 오만함과 동시에 나타나지요.  길가다 아이들쳐 업고 구걸하는 사람들을 보며 가슴이 아픔을 안타까움을, 그리고 우리들 삶에 대한 회의를 많이들 느끼셨을 겁니다. 누구나 그런 경험이 있지요.  그떄 누군가가 동냥하지 않았다고 여러분을 질책한다면 여러분은 기분좋게 받아들이시겠읍니까?   예수님외에는 이런 꾸중을 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1-2시간 기다리고 5분 진료받기를 원하지 않으시지요? 현실은 왜 그렇습니까?

현재의 수가체계를 한번 되짚어 보시기 바랍니다.

아기가 뇌의 깊숙한 곳에 뇌종양이 있어 수술을 받고 싶은데 한달에 한번 수술하는 사람보다는 매일 3-4번 수술하는 의사에게 수술을 받게 하고 싶으실 겁니다.

그러나 두개골 가까운 곳에 위치한 간단한 종양 제거술이나 위와같이 몇시간씩 걸리는 어려운 수술이나 수가가 같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수술을 배우려고 할까요?  기술 종속은 의료에서도 가능한 일입니다.

부모님이 뇌출혈로 쓰러져 빨리 중환자실 입원해야 하는데 중환자실이 부족해 오래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안타까우시다구요?  suction(가래뽑기), position change(체위변경)같은 간호행위에 수가를 인정하지 않는지 관료들에게 물어보시기 바랍니다(중환자실은 가동할수록 적자임).

금융구조조정에는 몇 십조씩 투입하고 여기에 시민단체나 국민들이 크게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있읍니다.  투신의 부실을 돈이없어 주식투자에는 관심도 없는 많은 사람들이 낸 세금으로 메꾼다는데 별로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단 말입니다.

의보재정은 몇천억원을 지원하라고 하는데도 정부는 내몰라라 하고 각종 시민단체는 국민의 돈으로 집단이기주의를 실현한다 뭐다해서 야단입니다.  국민 건강확보를 위한 재정(의사배불리기 위한 재정이라고 한다면 더이상 말하지 않겠읍니다)이 명분에 있어 금융구조조정보다 못하단 말인가요?

간단한 치료받고 치료비 싸게 냈다고 의료보험이 좋아 하시는 분들은 진짜 비싼 MRI같은 검사나 각종 수술재료가 비보험으로 되어있다는 것을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의약분업은 좋은 제도이지요.

어제 경실련 전화하니까 '도대체 개정 약사법에 독소조항이 어디있단 말인가' 하던데 비슷한 생각을 가진 분이 있다면 개정 전후의 조문을 꼼꼼이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의사가 자기 환자가 먹는 약이 무엇인지 모른다는게 말이나 됩니까?

대체 조제시 환자 동의를 구하는 조항이 있었는데 개정하면서 그게 슬그머니 빠져 버렸지요. 의사는 물론이고 정부, 시민단체, 약사들조차 그 항목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는데 그냥 빠져버렸지요.  법이 이렇게 만들어지는 것을 저는 이해못합니다.

 

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그만하겠읍니다.

약간 감정적인 부분이 있더라도 그냥 이해해 주십시오. 사실 화가 나거든요.

이준균 요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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