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6일 (토)
(녹) 연중 제13주간 토요일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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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보가 어디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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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2001-07-04 ㅣ No.21863

 저는 점심을 먹고나서, 산보를 가는 것이 유일한 운동입니다.

오늘도 점심을 먹고 산보를 가려고 사제관을 나서는데 비가 올듯 말듯 하늘이 잔뜩 흐렸습니다.  우산을 들고 길을 나서는데 초등학교 2학년인 진성이가 성당으로 왔습니다.   

 

 진성이는 성당에서 태권도를 배우는 어린이인데 달리기를 아주 잘합니다.  "진성아! 산보갈래!"하니까 진성이는 가방을 교육관에 벗어놓고 곧 저를 따라나섭니다.

 

 우리는 큰 찻길을 건너, 비가 온 뒤에 물이 많아진 개울을 건넜습니다. 그리고 막걸리를 만드는 양조장을 지나 시장으로 향했습니다.  오늘은 장날이 아니라서 시장은 한산했지만 학교에서 돌아오는 진성이 친구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다시 큰 길을 건너 진성이가 다니는 학교엘 갔습니다. 진성이가 우산을 교실에 놓고 왔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저는 오랜만에 초등학교 교실엘 갔습니다.  우리는 다시 개울을 건너 동네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고 놀다가, 성당으로 돌아왔습니다.

 

 저는 평소보다 길게 산보를 했습니다. 그리고 사제관으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진성이가 말하더군요. "신부님 근데 산보는 어디에 있어요?" 저는 순간 웃음이 나왔습니다.

으잉! 다시 산보를 가자는 말인가!

진성이는 "산보"라는 장소가 어디에 있는줄 알았나 봅니다.

 

 문득, 하느님 앞에 저 자신을 생각합니다.

하는님께서는 이미 다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다 알려 주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하느님은 어디계시냐고, 하느님의 뜻은 무엇이냐고 물어보지는 않았는지....

 

 오늘 저녁에 교우 한분과 한참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속상한 일이 있으신지 약주를 한잔 하고 오셨습니다.

그분도 제가 말씀을 드리지 않아도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이미 다 알고 계셨습니다.

그냥 그분의 이야길 듣고만 있었는데, 저는 별 이야기를 하지도 않았는데 고맙다고 말씀하시면서 가시더군요...

 

 꼭 많은 이야길 해야만 아는 것이 아님을...

꼭 먼가를 가르쳐야만 마음이 변하는 것은 아님을...

어쩌면 우리는 이미 알 것은 다 알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하는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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