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6일 (토)
(녹) 연중 제13주간 토요일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으냐?

자유게시판

★★★교회해체선언, 그 비애의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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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혜 [allone] 쪽지 캡슐

2002-05-08 ㅣ No.32973

퍼온글입니다. 출처는 말하고 싶지않습니다.천태만별의 천주교신자들을 여기서 보았습니다.개신교신자들이 일반적으로 "잘못유식들"하다면 천주교신자들은 일반적으로 "정상기준미달들"이라는 것이 제가 여기서 배운것입니다. 떠나면서 그래도 남은 형제적 애정으로 진솔한 편지 한편을 올려봅니다. 파일로 보내진 편지라서 개인적 사신에 해당되지는 않을지 걱정하면서....

사족하나! 무어라 댓글을 달려면 저기 아래 황미숙언니처럼 제목은 좀 이상해도(이해부족으로인한).....좀 길게 원고지 2장이상은 되도록....정성을 다해서 쓸정도는 되어야 기본적인 예의가 아니겠습니까? 제가 퍼온글 정도의 댓글을 달정도가 아니면 가만 읽고서 공부나하세요. 건방져서 죄송합니다만 사실입니다.(성지혜 데레사)  

 

 

해체선언, 그 비애의 언저리

 

금구요한 형제님.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 태울수는 없다는 말처럼 오죽 교회현실에 대한 걱정이 크시면 ’해체’라는 단어까지 쓰게 되셨을가 상상이 갑니다.

저는 근 30년간 일선 본당에서 봉사를 한답시고 얼쩡거린 경험이 있습니다. 우연챦게 세군데 본당에서 사목회장 봉사를 했었습니다. 그렇다고 사목회장은 재력가라는 항간에 회자되는 말에 저는 전혀 해당이 안됩니다. 그 동안 꽤 여러분의 신부님을 자문 보필이라는 명목으로 모셨었고 세번 모두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사임을 하고 말았습니다. 역부족이었지요.

끝내는 체험을 바탕으로 미천한 신앙과 지식으로 쇄신과 토착화를 위한답시고 본 게시판에 졸문을 올리기 시작했고 그 글의 주제가 어떤 것이든 결론부분은 항상 평신도의 신앙적 의식에 대한 호소였습니다.

 

모든 성직자가 다 성인처럼 훌륭한 분이면 좋겠지만 평범한 인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일생 삶을 주님께 들어 바친 그 분들을 훌륭한 사도 되게 하는 것도 병들게 하는 것도 그분들의 주위에 있는 평신도들입니다.

성직자를 나무 끝에 밀어 올려 놓는 것도 평신도이고 흔들어 대는 것도 떨어뜰이는것도 평신도입니다.

제가 끝내 사임을 하지 않을수 없었든 이유의 뒤에는 애석하게도 평신도가 있었습니다. 단 두세사람만이라도 평신도사도직의 소명을 깨닫고 옳은 판단으로 일치가 되면 성직자를 옳은 길로 가도록 보필하지 못할것이 없을 것입니다.

형제님께서는 주교직과 더불어 본당 봉사자의 직선제 등등을 거론하셨습니다. 실제로 인천교구는 시노드 결과로 직선제를 교구규정으로 확정했다지만 어림도 없는 일임을 저는 압니다. 왕년에 꺼먹고무신 한 켤레 국수 한 그릇에 표가 팔려 다니는 선거의 시대가 있었습니다. 자유민주주의는 국민들의 의식수준에 따라 점차로 구현됩니다. 정치인들이 썩었다고 하지만 그들보다 이 땅의 종교 성직자들이 그 고유한 소명의 수행을 비례로 따지자면 더 부패했고 이들보다 더 한심한 것은 평신도들입니다. 평신도를 감히 경멸하거나 비하하는 말이 아닙니다. 병신도로 길들여져 왔다는 사실을 깨닫자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소위 신자유주의시대에 같은 층의 아파트에 몇 년을 살면서도 서로 인사 없이 지내는 것이 세상 인심이고 본당 공동체라고 이웃에 대한 무관심이 별반 다르지 않은 상황이니 직선제가 얼마나 유명무실하고 맹랑한 허구인지를 저는 체험한바 있습니다.

만연한 무관심은 결국 적임자를 뽑는게 아니라 왜곡된 소수의 책동자에 의하여 편협한 의미의 선거가 되고 마는것입니다.

 

종교도 그 시대상에 따라 발흥기와 암흑기가 있었든 것 같습니다. 금세기가 이성론이 사라지고 일원론이 대체되고 물질이 정신을 덮는 시대라면 어찌 종교라고 온전히 서 있겠습니까.

우리의 교회는 평신도가 세운 교회입니다.. 이제 이 나라의 교회는 모름지기 평신도에 의하여 평신도로부터 혁신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평신도 신학이 진작되어 저변확대가 이루어지고 평신도신학자가 성직자들의 피정을 지도하는 날이 와야 겠고 평신도에 의해 편집 발행되는 언론이 있어야하고 사제는 성사집행만 할수 있어야 하고.......

그러기 위하여 컴컴한 방에 촛불 하나 써놓고 눈물 퍼내는 피정도 좋지만 밝은데서 터놓고 돌아다니거나 둘러 앉아 의식화토론이 더 절실합니다. 예를 들자면 M.B.W. 같은거 말입니다.

제2차바티칸공의회가 끝난지 40년이 지났어도 평신도들은 이를 알지 못하고 있는 현실과 수동적이고 노예근성의 신앙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금빛 찬란한 주교들의 모자와 지팡이와 까운을 보고 하늘에서 내려 온 사도인양 전율하는 신자들, 사목회라는 이름의 거수기, 순명이라는 이름의 맹종, 소공동체와 친목회를 혼동하는 무지. 자신의 신경안정제로 억지로 나가는 미사 참례......

청소년들의 비행이 전적으로 부모와 가정의 책임이라면 이 시대의 평신도들의 무명과 교회의 혼미는 과거 가톨릭 교회의 제도적 모순의 필연적인 결과입니다.

 

오늘 성서공부 시간에 나가 앉아 있었습니다. 옆에 앉은 형제가 내게 귓속말로 교통사고가 나서 입원을 했다고 말했습니다. 놀란 나는 그의 아래위를 살피면서 어디를 얼마나 다쳤는지 또 입원한 사람이 어떻게 여길 나와 앉았는지 영문을 몰라 눈만 둥그렇게 뜨고 바라보았습니다.

그의 대답이었습니다. "다친덴 아무데도 없어. 그냥 누워 있는거야. 보험사 직원이 올 때쯤에만 들어가 누워 있으면 돼. 합의를 볼려면........" 그러면서 그는 성서를 펴 놓고 붉은 연필로 밑줄을 긋고 있었다. 그는 몇 해째 사목회 모 분과장 자리를 차고 있는 사람입니다.

냉담율, 미사참례율에 가슴이 덜컹하지 않는가. 내 집 곳간에 벽이 허물어지고 비가 새는데 어깨띠 두루고 가두선교 나가서 신용카드 발급 해 주는 가판대 옆에 서서 같이 전단지 나누어 줍니다.

 

역사는 말합니다. 역사의 변천 그 고비마다 혁신의 기치는 평민들이 들고 있었습니다. 평민들에 의한 기치는 발전을 여는 서막이고 지배자들에 의한 기치는 독재에 의한 후퇴의 신호였습니다.

주님께서 세우신 교회에서 하늘의 진리를 주님의 대리자가 피사목자에게 나누어 주고 피사목자는 이를 감사로이 받는다. 지당한 말입니다. 이 수직적인 그림을 공의회에서 과감히 바꾸었습니다. 우리가 곧 교회, 내가 곧 교회임을 천명하지 않았습니까.

금구 요한 형제님. 이 땅에 어버지의 나라를 위하여 착하고 순박한 그리고 수동적인, 바라만 보고 주는 것을 받기만 하는 평신도들의 신앙 의식의 grade up을 위하여 더욱 헌신해 주시기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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