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8일 (월)
(녹) 연중 제14주간 월요일 제 딸이 방금 죽었습니다. 그러나 가셔서 손을 얹으시면 살아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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섣달 그믐 정성들여 놋그릇을 닦는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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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수 [fr1004] 쪽지 캡슐

2000-12-18 ㅣ No.2225

어느 해 밤이었다. 어머니가 전화를 하셨다.

늦은 시간이라 무슨 일이라도 있나 싶어서 어머니의 음성을 듣는 순간 손이 팽팽했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어머니는 웃음 섞인 목소리로 ‘나, 백화점에 다녀왔어. 세일이 끝나는 날이라서 갔었지.’하셨다. 마지막 세일하는 날에 꼭 사야 할 것이 무엇이 있었기에 다녀오셨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 ‘무엇을 꼭 사셔야 할 것이 있으셨어요?’ 하고 물었다. 그러자 어머니는, ‘설날이 다 되지 않았니.’ 하셨다. 나는 어머니가 세일하는 백화점에 다녀오신 이유를 금방 알 수 있었다. 손자 손녀에게 줄 설빔을 마련하러 가신 것이었다.

 

전화를 끊고 한참 동안 멍하니 창 밖을 보았다. 가버린 어린 시절의 설날이 눈앞에 가득 펼쳐지는 것이었다. 어린 날 설날은 우리 아이들의 천국이었다. 한 해 동안 입어 보고 싶어서 가슴 태우던 새 옷을 입을 수 있었고, 주머니에 가득 돈을 만져 볼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다. 그러기에 설날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생이 된 해였다. 설날을 며칠 앞둔 어느 아침에 할아버지가 나를 찾으셨다. 사랑방 문을 밀고 들어가 할아버지 앞에 섰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나를 무릎 앞으로 끌어당겨 앉게 하시더니 ‘설날이 다 되었는데 조상 앞에 말쑥한 모양을 하고 절을 해야지.’ 하셨다. 나는 얼른 뒤통수를 만졌다.

할아버지는 내 머리카락이 자라서 깎을 때가 되면 항상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다. 나는 ‘아직 깎을 때가 되지 않았는데요.’ 하고 대답을 하자 웃으시면서 ‘이놈아, 누가 머리 깎으랬냐, 옷 꼴이 문제지.’하셨다. 그러고는 ‘할머니에게 가봐라.’하셨다.

 

안방으로 가서 할머니에게 ‘할아버지가 내 옷 꼴을 바꾸시래요.’ 하고 전하니까 할머니는 ‘그래, 걱정하지 마라. 내가 다 마련해 두었다.’ 하시면서 장롱을 열고 보자기에 싼 것을 끄집어내셨다. 할머니가 풀어 보여주신 옷은 검정 실과 흰 실로 거칠게 짠 무명으로 만든 윗도리였다. 일제시대 대학생들이 입었던 제복 같이 만든 것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 옷을 보는 순간 눈살을 찌푸리고 말았다. 내가 바란 것은 비단으로 된 한복이었는데 무명 양복이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퉁명스럽게 ‘이런 옷을 누가 입어.’ 하고 방문을 열고 나오려하자 할머니가, ‘이놈아, 이 옷감을 내가 지난봄부터 짠것인데 마음에 안 드니.’ 하셨다. 못 들은 체하고 밖으로 나와 동네 아이들에게 갔다.

 

설날이 되어 할머니가 이 옷을 입으라고 권했지만 나는 그 옷을 입지 않았다. 아버지와 어머니까지 나서서 나를 타일렀지만 결국 설날 아침에 교복을 입고 세배를 드렸다. 그날 밤, 그러니까 설날 밤이었다. 나는 고향 동네 아이들과 놀다가 집에 돌아와 내 방으로 가려고 안방 문 앞을 지나는데 불이 켜져 있어서 문을 열었다. 할머니는 흰 가제로 된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아 내며 울고 계셨다.

 

나는 어리둥절해서, ‘할머니, 무슨 속상한 일이라도 있으세요?’ 하고 물었다. 그러자 할머니는 내 손을 꼭 잡으시며, ‘이것아, 할머니가 해준 옷이 그렇게 마음에 안 드니?’ 하셨다. 할머니는 내가 그 옷을 입지 않아서 마음이 상하신 것이다. 나는 ‘아니에요.’ 하고 할머니 곁에 펼쳐진 이부자리 속으로 들어갔다.

 

머리끝까지 이불을 끌어당겨 얼굴을 감추고 나도 울었다. 한해 동안 베틀에 올라타고 침침한 눈을 닦아 가며 손자 옷 한 벌 해주려고 애쓰시던 모습이 그제야 눈에 보였기 때문이다. 서울에 와서 그 얼룩덜룩한 무명옷을 입고 나가면 서울 아이들이 이상한 옷을 입었다고 쳐다보았지만 나는 조금도 부끄럽지가 않았다.

 

이 서글픈 추억을 새롭게 떠올린 것을 할머니가 다시 손자들에게 백화점에 가서 세일한 옷을 사 가지고 와서 주었을 때 이들 손자들이, ‘이거 세일 때 싸게 산것이지?’ 하며 입지 않았을 때 어머니가 마음이 상하시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이제 설날이 되면 다시 옛날처럼 설빔을 해주게 되지만 어린것들이 철이 없어서 설빔을 옷으로만 여기고 세뱃돈을 돈으로만 여기는 쓰라린 일들이 이어질까 봐 겁이 나는 것이다.

 

옛날 섣달 그믐날 저녁이면 할아버지가 아이들을 마당에 모아 놓고 멍석에 놋그릇을 펼치고 짚과 재를 가져다 주시면서 윤이 반짝반짝 나게 닦게 하시면서, ‘이 그릇은 증조 할아버지 것이야, 이것은 돌아가신 삼촌 것이야.’ 하고 말씀하였다. 나는 돌아가신 증조 할아버지가 이 그릇을 더럽게 닦았다고 하실까봐 열심히 윤이 나게 재를 묻혀 닦았다. 얼마나 잘한 일인가, 아이들에게 무엇이 설빔이여 어떻게 보내는 것이 설날인지를 알려주어야 할 것이다.

 

 

 

글 박동규 (「사랑하는 나의 가족에서」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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