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8일 (월)
(녹) 연중 제14주간 월요일 제 딸이 방금 죽었습니다. 그러나 가셔서 손을 얹으시면 살아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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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시골 성당 신부님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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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인 [august5581] 쪽지 캡슐

2001-06-30 ㅣ No.3972

아름다운 할머니...  

 

..  번호:239  글쓴이:푸른바다  조회:32  날짜:2001/05/31 22:28  ..  

 

 

..  아주 오래된 이야기가 될 것 같군요. 적어도 우리들에겐 말이예요.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일이 될 테니까,옛날 이야기라고 해도 될 듯 싶구요.

여기 궁리 성당이, 지금은 비록 초라하게지만, 세워지기 20년 전엔 지금처럼 그리 많은 천주교 신자가 있질 않았지요. 많은 분들이 멀긴 하지만, 평택성당을 걸어서 가야했던 시절이 있었답니다. 지금처럼 차를 타면 편히 15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를 걸어간다는 것은 그때 일로는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지요. 그렇지만 주일이면 성당에 가는 기쁨과 즐거움은 그 어느 것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궁리 신자들만의 행복이었답니다. 바쁘고 고된 농사일을 하루 놓고 성당가는 일은 농사짓는 분들에겐 마음편한 일은 아니었지만 그분들에겐 유일한 기쁨이었을 겁니다.

아마도 그 때, 그 어려운 시절의 이야기가 될 것 같군요.

여기 궁리라는 작은 마을에 한 아주머니께서 오셨지요..그 아주머니는 아주 까랑까랑한 목소리로 교리를 가르쳐주셨구요. 그런 할머니의 모습은 여러 면에서 다른 분들과 많은 점에서 다르게 사셨던 분이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아주머니를 전교회장이라는,아주 색다른 이름으로 불러드리길 원했지요. ...

시간이 가면 역시 모든 것이 변해지는 가봅니다.점차 세월이 가면서 그분은 오랫동안 살아오셨던 뭇 아주머니들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게 되셨습니다. 말하자면 궁리 아주머니가 되신 것이지요.. 많은 분들이 그 아주머니 영혼에서 나오는 재미나고 진솔한 교리를 들으며 세례를 받기 시작했고

많은 분들은 그분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랜 동안 혼자 사셨던 분이었기에 남모르는 아픔과 외로움, 그리고 아무도 돌보지 않는 고독감과 싸우셔야 했고,그런 아주머니는 조금씩 조금씩 나이를 들어가시면서 점차 할머니가 되셨겠지요? 때로는 아프셔도 약보다는 신앙으로 이겨내시길 바랬던 그분은 차라리 기도할머니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겁니다. 때로는 그런 억측스러움이 많은 이들에게는 따가운 회초리로도 가해졌지요. 혹여나 게으름과 나태함으로 잘못을 저지르기라도 하면 그분은 여지없이 그 매운 손으로 형제, 자매, 어른, 아이들 할 것없이 등짝을 때리시곤 했으니까요. 그러니, 그분의 억측스러움이 배인 따가운 매는 차라리 회초리라고 해도 되겠지요? 20년이 흐르면서 그분의 거친 손바닥에 매를 맞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라고 한다면, 그분이 우리 마음속에 차지하고 있는 자리가 얼마나 큰 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것같고요.

 

20년이 지난 뒤, 어느 해 2월.

눈이 수북이 쌓인 성당 마당을 걸어오시는 그분과 인사를 나누면서 아주 우연히 그분 신으신 신발을 보았지요. 튿어진 신발 사이로 엄지 발가락이 훤히 보여 마치 삐져나온 감자를 보는 듯했습니다. 신발 속으로는 연실 눈이 녹아 흘러들어갔지요. 조금이라도 추우면 온풍기를 틀지 않고는 겨울을 날 수 없어하는 우리들과는 무언가 많은 점에서 그 할머니는 다르셨습니다. 발가락이 눈에 젖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분은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성당 미사 준비를 하셨지요.

며칠 뒤, 신발의 싸이즈를 알아서 사드렸던 신발은 꼭 그렇게도 고집스러우시게도 주일 미사때에만 신고 나오셨던 할머니.

그저 눈빛만 보며 웃어도 덩달아 깔깔 웃으시는 그 할머니는 강직하시지만, 어느 누구보다도 깨끗하고 맑은 영혼을 지니신 분이셨다는 것을 이제야 알 것같습니다...

...

...

이제, 자신있게 ’궁리 할머니’라 자타가 인정하는 그 할머니는 궁리 성당 모든 교우분들 마음 속에 지워지지 않는, 또 한송이의 장미, 성모님으로 남아계실 것이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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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 아직 콘테이너와 조립식으로 갖추어져 있어 조금은 썰렁한 성당이지만, 자주 석양의 노을 빛이, 짙은 연보라빛으로 성당 지붕에 가닿으면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이 되지요.

 

오늘도 궁리 성당 강철 지붕 위엔 그 때 그 날처럼 연보라 빛 노을이 이불처럼 덮여졌습니다.

그 노을 빛 속을 종종 걸음으로 그분 할머니는 떠나셨습니다. 몇 개의 발자국을 노을 빛으로 물들이면서......

...

...

우리는 궁리성당에서 한 평생을 몸바쳐 살다가 노을 빛으로떠나가신 그분 할머니를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할머니’라 이름하고 싶습니다.

 

할머니 행복하십시오

 

 

참고로, 할머니는 오늘 논산, 살트르 바오로회에서 운영하는 양로원으로 가셨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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