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8일 (월)
(녹) 연중 제14주간 월요일 제 딸이 방금 죽었습니다. 그러나 가셔서 손을 얹으시면 살아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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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게 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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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형 [largo7a] 쪽지 캡슐

2001-10-03 ㅣ No.4749

꽃게 찌개

 

토요일 아침이 밝아왔다.

오늘밤과 내일 밤이 지나고, 월요일 아침이 밝아오면  뉴욕에 딸아이를 홀로 남겨 두고 서울로 떠나야 한다.

벌써부터 내 맘 속 한 귀퉁이에는  딸아이와 헤어지는 순간의 서글픔이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언제나 만남의 기쁨 뒤에는 헤어짐의 슬픔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거실의 창문을 열었다.

허드선 강가로부터 비릿한 냄새가 묻은 시원한 강바람이 불어 왔다.

딸아이가 어릴 때부터 특히 좋아하는 음식 생각이 떠올랐다.

그 음식은 꽃게 찌개였다.

가끔 아내가 꽃게 찌개를 식탁 위에 올려놓을 때마다 딸아이가 생각나고, 마음에 걸렸었다.

간단히 세수를 하고, 아파트의 문을 조용히 열고 밖으로 나왔다.

나는 브로드웨이 8가에서 전철을 탔다. 정말 오랜만에 승차한 "R" 트레인은 내가 십 수년 전에 이용하였던 그 시절의 지저분한 서브웨이와는 아주 판이한  깨끗한 모습이었다.

토요일이라 내가 탄 칸에는 중국계로 보이는 젊은 남녀와 백인과 흑인 등 몇 명의 승객이 좌석에 앉아 있었다.

나는 차이나타운의 캐널 스트리트에서 내려 출구를 나왔다.

토요일이라 거리의 상가는 아직도 거의가 셔터를 내리고 있었다. 거리에는 일터로 출근하는 바쁜 걸음의 중국계 사람들만이 보였다. 나는 전철역 출구에서 한 블록 떨어진 생선 가게로 갔다. 다행히 두어 서넛 생선 가게의 직원들은 잘게 깬 얼음 위에 생선을 진열하고 있었다.

문을 연 생선 가게 중 꽃게를 제일 많이 갖고 있는 가게로 들어갔다.

저울에 달아보니 꽃게 한 마리 무게가 1파운드가 넘었다.

나는 살아있는 꽃게 두 마리를 산 다음 생선가게 주인에게 꽃게를 짤라 주도록 부탁하였다.

그리고 국수전문 음식점에 들러 "비프 로멘(한국의 자장면의 자장과는 전혀 다름)"을 포장해주도록 주문하였다.

그런 후, 전철을 타고  딸아이의 아파트로 되돌아 왔다.

딸아이는 아침운동을 위하여 공원에 나가고 없었다.

다행히 주방에는 사용한 흔적이 없는 큰 냄비가 있었다. 그리고 양념은 소금과 고춧가루, 후추 가루 등이 있었다.

게딱지는 쓰레기 봉지에 버리고, 양념 물에 살이 꽉 찬 게 다리를 넣은 후, 잘 익을 때까지 삶았다.

그리고 하얗게 익은 게 살을 하나하나 발라 큰 접시에 담았다.

마지막 꽃게 다리 살을 바르고 있던 중, 딸아이가 운동을 마치고 돌아왔다.

딸아이는 아파트 방문을 열자말자, 음식 냄새에 놀라며 꽃게 찌개 냄새를 금방 알아차렸다.

"아빠! 꽃게야?"

그 아이의 손에도 나에게 줄 음식이 들려져 있었다.

 

내가 끓인 찌게의 맛이 엄마가 만든 맛과는 달리 맛이 없을 텐데도 불구하고,  맛있게 먹는 아이의 마음이 고마웠다.

 

그리고 딸아이가 자신의 방, 깨끗이 치워진 책상 위의 사진액자 속에 엄마, 아빠, 오빠가 함께 찍은 옛날 사진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딸아이의 가족사랑이 고마웠다.

언제나 아내와 내가 저를 보고싶어하는 것처럼 딸아이도 그리운 엄마, 아빠, 오빠를 퇴색한  흑백사진을 통하여 만나고 있었다.

 

꽃게 찌개를 먹고 있는 딸아이의 모습을 바라보며, 나의 가슴에는 잔잔한 기쁨이 밀려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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