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8일 (월)
(녹) 연중 제14주간 월요일 제 딸이 방금 죽었습니다. 그러나 가셔서 손을 얹으시면 살아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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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을 보며, 기도드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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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철 [wiseycj] 쪽지 캡슐

2001-12-02 ㅣ No.5206

 

(제대 앞에 아름답게 타고있는 대림초를 바라보며 기도드립니다.)

 

  초급장교의 월급이 요즘 중학생들 매월 용돈 만큼 밖에 되지않던 옛날 이었습니다.

 

결혼 1주년이 되던 가을, 저의 가족은 셋 이었고 2주년이 되자 넷이 되었습니다.

한 살 터울로 어김없이 늘어가는 우리 식구가 거처하던 단칸방, 가을이 가고 이맘때가 되면

하루에 겨우 한 장으로는 훈김 조차 돌지않는 좁은 방 가득히 솜이불을 깔고 고슴도치처럼

그 속에 파고들어 눈을 붙였습니다.

 

 눈을 붙이고 막 깊은 잠에 빠지는 11시가 되면 두 어린것들은 기막히게 시간을 마추어 잠이

깨었고 칭얼대기 시작하였습니다. 저는 벌떡 일어나 성냥을 찾아 접시 위에 있는 초에 불을

부치고 "뺀찌"로 알미늄 종지의 한쪽을 집어 촛불 위에 올립니다. 5분 인지, 10분 인지, 잠을 자는지, 깨어있는지, 시간이 흐르면 물이 보글 보글 끓기 시작합니다.

머리맡에 소중하게 모셔둔 미제 "쎄밀락" 분유통에서 세 수저를 떠내어 물 속에 넣고 조심,

조심 저으면 뽀얀 김이 서리면서 우리 새끼들 먹이가 완성됩니다.

 

 밤 10시면 전기불이 끊겨버리는 그 조그만 양철지붕 집 사랑채 월세방에서 저와 아내는 촛불 위에서 우유를 끓여 먹이며 늘 잠이 모자랐고 더 달라고 때로는 보채는 아이들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으로 살았습니다. 초가 타면서 까맣게 올라오는 그을림이 가끔씩 제 코를 찌르면 제채기가 나왔습니다. 눈물이 묻어나올 때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초에 불을 잘 부치는 법과 초가 녹아 흐르지않게 태우는 요령, 알미늄 종지속

물이 빨리 끓도록 만드는 법을 터득할 수 있었습니다.

 

 그 두 아이들이 다 자란지도 오랜 옛날이 되어버렸고, 이제는 그 아이들이 40을 넘기어 슬하의 자식들이 다 훌쩍 커버렸습니다. 촛불로 우유를 대워 먹였다는 말이 이제는 캐캐묵은 "신화"가 되고말았습니다.  그 촛불이 이제는 저희 두 노인의 가슴 속에서 만 타고있을 따름입니다.

 

 대림절을 맞는 첫 주일, 성당 제대 앞에서 아름답게 타고있는 촛불을 바라보며 저는 기도를 올렸습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저희 가족 알뜰하고 부족하지않게 살게해 주셨습니다.

  주님, 저희 가슴 속에 주님을 향한 아름다운 촛불 꺼지지않고 타오르게 하소서.

  주님, 옛날 읽었던 안델슨의 동화 "성냥팔이 소녀", 이 땅에 아직 있을진대, 그들 감싸

  지켜주소서.

  주님, 저에게 사랑의 뜻 새겨 주시어 불쌍한 이웃 위해 제 빵 나누어먹게 만들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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