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7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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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가 가르치는 하느님의 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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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훈 [totoro] 쪽지 캡슐

2008-10-01 ㅣ No.125398

<예전에 제가 올린글을 손질하여 다시 올리는 바입니다.>

인간의 정의와 하느님의 정의는 다릅니다.

인간의 정의는 하느님으로부터 가르침을 받고 지도를 받아야 합니다.

인간의 정의의 목표는 '공평'의 실현입니다.

그래서 많은 경우 저울을 형상화해서 정의를 나타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정의는 '용서'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게시판이 이렇게 어지러운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교회가 추구하는 '정의'를 인간의 '정의'로 곡해하거나 오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

교회가 정치참여를 해야 하나, 교회가 경제활동을 해야 하나, 교회가... 라는 질문에 대해

교회의 정체성은 자신의 성화임무를 통해 자신과 이웃의 영혼을 하느님께로 이끄는 것에서

나타난다 라고 말씀드립니다.

그러기에 교회의 모습은 <모든이에게 모든것>이 되는 역동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

하느님의 정의가 '공평'이라면 아마 인간의 영혼은 어느 누구도 구원될 수 없을 것입니다.

성서 안에서 '하느님의 얼굴을 보지 못한다'라는 명제는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를 극명히 나타내준다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인간은 '정의' 앞에 설 수 없습니다.

기소하는 검사도, 재판하는 판사도 어느 누구도 정의로울수 없기 때문입니다.

정의로우신 분은 하느님 한 분 뿐이십니다.

간음한 여인을 구해주신 예수님의 말씀

누구든 죄없는 사람부터 돌을 던져라...

인간은 인간에게 정의의 허울로서 돌을 던질 수 없습니다.

그것은 주님의 권한이고, 주님도 행사하지 않으신 권합입니다.

인간은 용서를 목표로 해야 자기 자신도 용서받습니다.

그것은 주님의 기도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즉, 죄를 용서받고 구원되기 위한 첫번째 행동의 열매는

회개의 증거로서 타인을 용서하는 일입니다.

...

따라서 인간의 정의는 계속해서 하느님에 의해서 촉진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교회가 할 일입니다.

처벌주의의 교정사업이 또다른 재범을 확대재생산해 냅니다.

세상의 처벌은 교화와 교정을 위한 프로그램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가 '정의'를 말하는 이유... 그리고 가르침에 대해 확인하는 이유

그것은 누군가를 잣대질하고 처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난날의 과오를 '용서'해주기 위해서입니다.

자캐오처럼 용서해주고, 자캐오가 올바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돕기 위함입니다.

누구를 재판하고 잣대로 재는일... 그것은 하느님의 일입니다.

교회는 용서를 통해 새로운 생명에로 이르는 길을 제시해 주려고 합니다.

...

세상은 아는것 만큼 보인다고 합니다.

피카소 작품 앞에서 2차원과 3차원의 이해 없이는, 그 경계에 서있다는 자기이해 없이는

그저 작품이 어린애 낙서처럼 보이는 것처럼

세상의 "정의"인식만 가지고서는

교회의 판단이 세상의 일처럼 보일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

하지만, 분명한 것은

교회가

세속적 의미의 '정의'를 위해 일하고 있지 않다는 것은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교회는 언제나

하느님의

용서하기 위한 정의,

정의로운 사랑,

사랑하기 위한 정의를 가르침을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

교회는 누군가를 단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느님 창조사업과 구원사업에 협력하는 작은 도구로서 사용되려 노력합니다.

그 뜻만은 곡해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

따라서 이 사안을 통해

죄인은 과오를 '고백' 하고,

이웃들은 그 과오를 '용서' 하고

공동체는 새로운 공동체를 '창조'하는일

그것이 이루어지길 바라는 마음,

하느님 보시기에 참 좋았다라는 창세기의 말씀을 살아내기 위한 몸짓..

그것이 교회가 걸어가고 있는 역동적인 길이라 생각됩니다.

...

그러기에 교회는

정의로운 의인들만 모인 공동체가 아니라

하느님 보시기에 부족하고 게으른 쓸모없는 종들이

자신 영혼의 용서와 이웃의 용서를 구하기 위해

함께 노력하고 기도하는 분들의 공동체입니다.

...

교회는 이미 와 아직 의 시간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내적인 에너지는

우리 삶을 살아가게끔 이끄는 에너지는

자신의 과오를 깨끗하게 해주시고

다시 살아갈 수 있게 용기를 주시고

이끄시는

<하느님의 대자대비 하심에 대한 무한한 믿음>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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