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7일 (일)
(녹) 연중 제14주일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자유게시판

'그분'이 불러주셔서...갈매못 성지편

스크랩 인쇄

장기항 [vinchen10] 쪽지 캡슐

2008-11-13 ㅣ No.127030

 

'그분'을 사랑함에


  ‘그분’이 불러주셔서 를 게시판에 연재(?)한지 꽤 시간이 흘렀습니다. 열여섯 편의 유럽 성지순례기였지요. 혹시 기억하시는 분이 있을까? 기억하시는 분이 있다면 영광이고요.

 

  오늘 졸필이지만 갈매못순례기를 올리게 된 것은 아래 갈매못 성지미사의 유감이라고 올린 어느 형제님의 글에 댓글을 달았다가  논쟁으로 흘러가버린 게 여간 부담이 아니었습니다. 악플로 인하여 말이 많은 요즈음 조심해야하는데 저의 불찰로 제 이름까지 거명해가며 반론이 올라온 걸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댓글에 댓글로 반박하거나 요모조모 따지게 되면 본질이 다른 데로 흘러가기 마련이고 또 말싸움으로 번질 위험이 있어 그냥 갈매못 성지 순례하고 온 제 감동을 이렇게 글로 올리는 게 낫지 않을까 해서입니다. 이글로 인해서 제 댓글에 대한 오해도 풀리고 게시판의 여러 형제자매님과 함께 갈매 못을 순례하는 간접경험을 누릴 수 있지 않나 하는 욕심도 있었습니다.


  교회는 9월을 순교자성월로 정하여 성지를 순례할 것을 권장하고 있습니다. 이는 아주 옛날 구약시대부터 권장, 아니 의무로 지킬 것을 강권했지요. 유다교 뿐만 아니라 중세 유럽 가톨릭신자들은 예루살램에 다녀오는 것을 일생의 꿈으로 삼아 언젠가는 다녀오리라 는 열망을 가졌다 합니다. 그 소망이 시와 문학작품으로 그려질 때 성지순례는 로만틱한 것으로 묘사되었다고 합니다. 사실 그 당시 순례길이 얼마나 험하고 고통스러운 길이었을까요?  요즈음이야 편리한 교통수단과 잘 짜여진 프로그램으로 전담 여행사가 있어 얼마나 쾌적한 여정인지 모릅니다.

 

갈매못 순례를 가지고 이야기가 비약했네요.

  제가 다녀온 갈매못은 올해 6월 본당기도회에서 다녀왔고 10월 첫째 주에 본당 구역에서 버스 두 대로 다녀왔지요. 뭐 준비가 별 게 있겠습니까. 버스를 대절하고 중식을 예약하고 성지에 관한 약간의 자료를 준비해서 버스를 타고 갈 때 소개하는 정도면 충분하겠지요. 물론 성지소개도 성지미사에 신부님으로부터 충분하게 들을 거니까 그저 아주 짧은 예고편 정도면 될 터이고.

  두 번째 가는 길이라 미사시간보다 아주 여유를 가지고 도착하는 게 우선 챙겨야 할 것이어서 7시 40분에 출발했답니다. 갈매못은 실내 좌석이 약 300석이 될까요(눈대중으로). 제일 앞쪽으로 자리잡는 게 중요하더라고요. 뒤쪽에는 야외 산언덕을 타고 자연석으로 계단식 층계에 앉게 되면 아무래도 산만할 것이기에. 덕분에 앞자리에 자리를 잡고서는 나와서 십자가의 길을 바쳤습니다. 그날 수궁동 성당에서 주임신부님이 인솔하고 온 본당차원의 순례단 대 부대가 십자가의 길을 핸드마이크를 들고서 하고 있는 터라 우리는 성당으로 올라가는 언덕에 있는 작은 규모의 십자가의 길을 바쳤는데 정숙한 분위기로 기도하기에는 틀렸더라고요. 순교자성월에 성지순례는 어차피 차분하게 순례할 수 없지 않겠어요. 일주일 전에 중식을 예약하러 전화를 했더니 마감이 되어서 교우가 하는 식당으로 안내해주더군요. 

 

  미사 시작하기 전에 벌써 실내좌석은 물론 야외 계단까지 꽉 차서 대단한 미사가 되겠구나 싶더군요. 수녀님이 세 분인가 보이던데 전례수녀님이 미사예물 봉헌하는 방법에다 전례를 설명하는데 분위기는 소란했습니다. 그리고 입당송을 연습했지요. 성호경을 노래로 하는데 약간의 율동을 곁들어서. 율동은 십자성호를 크게 그리고 두 손을 이용하여 찬미내용을 율동으로 표현한 거지요. 아주 기초적이어서 나이 드신 분도 따라 하기에 무리가 없었고 재미가 나서 올라오는 차편에 다들 기억을 되살려 연습도 해보았는걸요. 사실 이렇게 많은 순례자가 몰리는 성지에서는 성가책을 찾아서 부르는 것보다 단순한 가사로 된 성호경을 율동을 곁들이면 금새 미사분위기로 이끌 수 있겠더라고요. 성지에서 많은 고심 끝에 결정하지 않았을까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2회) 주님께 찬미와 감사와 경배를 드리려 여기 왔나이다(2회)”

  얼마나 간단하고 명료한 가사입니까. 노래가락도 금새 따라할 정도로 쉽더군요. 글쎄, 입당송으로 그리 부적합한지 또한 교회전례에 어긋나는 게 뭔지 잘 모르겠습니다. 천여 명에 가까운 신자들이 서투른 손짓이지만 따라하다가 보니 질서는 금방 잡히더군요. 은혜로운 미사의 시작이었습니다. 참 그날 수녀님 외에는 제대 위에서 입당송을 이끌어가는 봉사자가 없었습니다. 율동을 시연하는 사람도 없었고요. 손님 신부 -수궁동 성당 주임신부님도 입당한 후에는 재미가 나는지 따라하시던걸요.

 

  강론은 탁월했습니다. 성지신부님 목소리는 힘찼습니다. 제일 먼저 순례자들이 오면 다가가서 물어본대요. 어떻게 이곳까지 오셨냐고 하면 그냥 둘러보러 왔대요. 이 대답에 성지신부님은 제일 맥이 빠진답니다. 순교자가 목숨을 바쳐서 순교한 현장에 어찌 둘러보러 올 수가 있느냐고 제발 그런 말씀은 하지 말라고 힘을 주어 말씀하실 때 감명을 받았습니다. 혹시나 그런 기분으로 온 적은 없는가. 하기사 본당 신부님이 구역 성지 순례를 강권했으니 눈치보고 따라 온 사람이야 없겠습니까만 성지 미사를 드리고 나면 달라지지요. 감화를 받지 않을 턱이 있을까요. 다섯 분의 성인들이 사형당하기로 예정된 날자에서 며칠 밀려나는 것을 안 주교님은 강력하게 항의했답니다. 주교님과 순교성인들이 주장하는 이유가 멋집니다. 예수님처럼 금요일에 처형 당하는 영광을 달라는 것이지요. 사형이 확정되었다 하더라도 하루라도 더 살고 싶어하는 것이 인지상정이 아닐까요. 갈매 성지 바로 앞 백사장에서 참수를 당하신 다불뤼 안 주교님은 도부수들이 흥정하느라 몇 번에 나누어 목을 쳤답니다. 망나니한테 뒷돈을 주는 건 단칼에 쳐달라는 눈물 나도록 가슴 아픈 사연인데 이놈들은 맛보기로 돈을 더 달라고 몇차례 칼질을 한 게지요. 한 번 칼질할 때 마다 주교님은 몸통이 벌떡 일어서더래요. 참혹하기 짝이 없는 순교자들의 희생을 들으면서 감동 안 받으면 사람이 아니겠지요. 이성례 마리아도 사형당할 때 어린아이들이 구걸해서온 몇푼의 돈을 들고서 망나니집에 찾아가서 와이로를 맥입니다. 내일 울엄아 죽을 때 한칼에 목을 처달라고....

 

  우리는 앞자리에 앉았으니 다소 산만한 뒷자리 상황은 모르겠습디다.

김밥 싸들고 재미나게 놀다가 갈 바에는 아이들하고 유원지에 놀러가지 성지에는 왜 오냐고요? 구역에서 성지에 가는 데 아이 딸린 젊은 자매님은 어떻게 합니까. 순교자들께서도 침통한 표정으로 내내 있다가 가는 모습 보다가는 순교자가 뭔지 성지가 뭔지도 모르고 따라나선 아이들을 데리고 나선 젊은 가족들의 모습에서 오히려 빙그레 미소를 짓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불어오는 산들바람에 코스모스와 풀꽃들이 흔들리는 성지 야외석에는 아이들이 까르륵 뒤뚱거리며 달려가다가 넘어지고, 고추잠자리 잡으러 손을 내미는 예쁘고 소중한 아이들이 미사에 얼마나 지장을 주었나요. 그건 그대로 아름다운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때제인지 그레고리안인지 따지지 마시고 자연스러운 이 모습이야말로 예수님 주위를 빙 둘러 앉은 복음서에 나오는 한 장면 같지 않으세요? 

 

 

  제법 오래된 영화가 기억나네요. 김대건 신부님의 일생이었지요. 유인촌 형제가 주연으로 나왔던 영화인데 오래도록 기억나는 장면을 반추해볼까요. 교우촌에서 미사를 드리는 장면입니다. 초가집 마당에서 갓을 쓰고 영대를 한 김대건 신부님이 둘러선 교우들에게 부르짖습니다. “미사는 축제입니다.” 그리고 어깨동무를 했는지 으쓱으쓱 춤을 추었는지 기억에 희미하네요. 오래되어서 똑똑하지 않지만 아마 이런 이야기가 아닌가 싶네요. 그날 신부님을 모신 미사는 얼마 만에 드리는 미사였을까요. 한 달, 어쩜 반 년 만에 드리는 미사였을지 모를겝니다. 박해를 피해서 숨어 있는 교우촌에 몰래 신부님이 방문한 미사니까 얼마나 감격스러웠을까요. 신부님도 교우들도....아마 우리나라 초대교회 신자들은 천주님을 모시는 게 너무 어렵고 황송해서 긴장이 지나쳤을 것 같아요. 이때 안드레아 신부님은 이렇게 주님을 모시는 자리가 얼마나 기쁘냐고. 얼굴도 펴고  잔치를 즐기자.  그리고 기쁜 마음으로 인사를 나누며 미사를 드리자고 한 뜻이 아니었을까요. 그 이후로 저에게 미사는 축제라는 말이 오래오래 남았습니다. 순교자 성지도 그런 의미에서 지나치게 성인들의 희생과 아픔을 강조하는 자리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믿습니다. 순교성지는 또 하나의 축복의 자리가 아닐까요. 피비린내 나는 순교의 현장에서 배우는 아픈 역사는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이 자리에서 자신이 선 좌표를 점검해보는 의미 있는 여정이겠지요.

   성체를 모시면서 부끄러웠습니다. 신앙의 선조들이 몰래 방문한 외국인 사제와 드리는 미사, 차마 성체를 그대로 입에 넣을 수 있었을까요? 눈물이 앞을 가렸겠지요. 얼마나 황감했을까요 주님의 몸이....지금 우리는 매일 미사를, 우리 본당에는 평일에도 세 번 있으니 골라가면서 미사를 드릴 수 있으니 말예요. 세상 좋아졌다 그지요?

 

 

  순례자가 많아서 두 분의 신부님과 수녀님 세 분(?)이 영성체를 해주셔서 야외에 자리한 신자들까지 큰 불편 없이 끝났습니다. 강론이 한 시간을 넘긴 탓으로 영성체 후 묵상 시간이 너무 짧은 것은 아쉬웠으나 신부님이 제대를 한쪽으로 밀더군요. 미사를 드릴 때는 제대 벽면에는 가시나무가 빽빽이 선 사이로 다섯 사람이 서 있는데 붉은 색인 걸 보면 순교성인 다섯 분을 표현한 것이 아닌가 싶네요. 병풍처럼 밀린 자리에는 통 유리창을 통해 푸른 하늘과 바다, 드리어진 소나무 가지 그대로 멋드러진 풍경화가  펼쳐지더군요. 지난번에 본 적이 있어 나야 그리 놀라지는 않았지만 순간 많은 교우들이 탄성을 지르더군요. 갈매못성지가 자랑하는 제대라 할만 했습니다. 그날은 날씨가 청명하지 않은 탓에 감동이 덜했습니다만 봄에 왔을 때는 정말 대단했습니다. 아마 많은 분들이 하늘나라는 이런 게 아닐까 하는 기분이었을걸요. 신부님 말씀따나 하늘나라를 생각했을 거예요 분명.

 

  많은 분들이 침묵 중에 드리는 미사의 경건함을 이야기했지만 갈매못 성지의 성당은 구조적으로 경건함에는 못미치는 결함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결점을 뛰어넘는 그 무엇이 있어 멋드러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요.

  글쎄요, 우리 본당 순례팀은 신부님 강론이 길어서 배가 고파 혼났다고 했지 다들 흡족해 했습니다. 눈대중으로 7,8 백 명이 넘는 순례자들이 드리는 미사에서 침묵과 묵상이 소흘했다고 지적하는 것은 일견 옳은 말씀이지만 갈매못 성당의 구조에서는 어쩔 수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또한 순교자성월을 맞아 전국에서 몰려온 순례자들로 만원인 성지에서.

    수녀님이 미사 중에 오고가는 동선이 거슬렀다는 지적은 글쎄요, 그날은 기억이 나지 않네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럴 수가 있다고 봅니다. 그 많은 교우들에게 낯 선 성당에서 미사의 질서를 유지하려면 자주 마이크를 이용했을 것이고 수다스러울 정도로 안내가 길었겠지요. 본당 미사에서 해설자가 그리 많은 말을 하고 수다를 떨었더라면 당장 신부님으로부터 전례봉사단에서 아웃 당했겠지요. 장소에 따라 환경에 따라 전례는 얼마간의 변화가 있어야하지 않을까요? 사실 전례 문제라기보다 입당송과 율동, 해설자의 진행방법이라는 지엽적인 문제를 전례의 본질에 관한 것으로 확대해석하는 것은 아닌가 싶네요. 아마 누구라도 이러한 상황에서는 더 나은 방식으로 대처하기는 쉽지 않을 거라고 봅니다.

 

  문제의 발단이 되었던 갈매못성지의 미사에 대한 유감이 처음 올랐을 때 다녀 온지 얼마 안 된 성지라 관심을 가지고 읽었고 유감으로 지적한 내용이 제게는 거슬렸습니다. 많은 순례객이 다녀가는 성지에서 수고하는 수녀님과 신부님이 얼마나 낙담을 할까 싶어 안타까운 마음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댓글을 달아서 오해를 푸십사고 하기에는 뭣해서 그냥 넘어갔습니다. 다들 자기가 가지고 있는 관점의 차이를 너무 부각한 것 같아서 마음이 편치 않았지요. 그러나 두 번째로 글이 올라오고 조목조목 지적하는 걸 보고서 아~ 이러는 건 아닌데 해서 제가 댓글을 달았지요. 저와 함께 다녀온 두 개의 순례팀은 큰 불만이 없었고 만족해했습니다. 전례를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라고 너그러이 이해합시다. 사실, 저희들은 성지에서 점심을 해결 못하고 수녀님이 소개해준 식당으로 나가서 식사를 하고 다시 성지로 들어와서 자유시간을 가졌습니다. 신부님 말씀 따라 구경만하고 훌쩍 떠날 수야 없잖아요. 성당 옆에 성인들의 유해가 모셔진 조그만 방에서 묵상을 하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성지자체가 아름다운 풍경이라 산책하는 것도 멋지지요. 성물방에는 갈매못이 자랑하는 묵주가 있는데 십자가와 세 송이 장미가 끝나는 매듭에는 성인들이 처형당했던 백사장의 모래를 담았더군요. 이 묵주로 기도하면 언제나 갈매못 성지, 순교자들과 함께 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갈매 못 묵주를 살 것을 강추 할까요.


   갈매못 성지의 자랑은 석양 무렵의 경치가 대단하다고 합니다. 성지 홈피에도 첫머리에 나오잖아요. '석양놀에 살아나는 순교의 피'라고 하지요. 차가 막힐까 서둘러 올라가느라 갈매못의 장관인 석양 노을을 보지 못해 유감입니다. 대신 황금빛으로 물든 들녘이 마음을 흐뭇하게 했습니다. 바람도 상큼한 가을, 돌아가는 순례자의 가슴에는 모든 게 고마웠습니다. 

 

   평소에 곱게 교우님들이 올린 글이나 읽다가 댓글을 어쭙잖게 올렸다가 혼이 났네요. 무조건 항복합니다.

올해만 두 번이나 다녀온 갈매못이라 관심을 가지고 읽고서는 그게 아닌데 하는 안타까운 마음에 오해를 풀어 주십사고 올린 겁니다. 성지의 열정적인 신부님과 수녀님이 받을 오해가 안타까워서 그랬다고 너그러이 용서하시고 이제는 전례에 대한 가르침도 끝내시지요. 수녀님보고 살트르 본원에 가서 전례공부 다시 받고 오라는 말씀도 지우시고요.

 

  우리 동네는 지금 노오란 은행잎이 물들어 황금빛 일색입니다. 은행잎은 고결해보여서 낙엽을 밟지 않는다지요. 제 글도 밟지 마시고 일별하시고 잊어버리세요. 참으로 눈부신 계절입니다. 그대의 믿음도 눈부시겠지요. 

   



936 14

추천 반대(0) 신고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