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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헌집주면 새집준다’더니…재개발 복마전 여전(동아일보 6월 20일자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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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여향 [cpark] 쪽지 캡슐

2009-06-21 ㅣ No.136581

 

12일 부천시 오정구의 한 초등학교. 인근 S동 1-2구역 재개발 조합의 창립총회가 열렸다.

총회장은 시작 전부터 살벌했다. 일명 ''깍두기''라 불리는 검은 양복을 입은 경비용역업체 직원들이 수십 명씩 ''병풍''을 치고 서 있었다.

주요 안건은 재개발 정비업체 주부 OS요원(도우미)이 미리 받아둔 ''서면동의서''로 일사천리 통과됐다. 총회장 안에는 500여명이 있었으나 이들 중 직접 투표하는 사람은 겨우 30명 남짓. 간혹 토론을 요구하는 주민이 있으면 여지없이 용역 직원이 다가가 옆에 섰다. 선거 결과를 사진으로 찍는 것도 막았다.

개표 결과 추진위원회 위원장이 조합장으로 승격했고 그의 측근들이 대거 임원으로 선출됐다. 예산에 문제를 제기했던 사람들은 다 떨어졌다. 한 쪽에서는 부정 선거 의혹을 제기했다. 개표 이틀 전에 선거 결과가 나왔다는 증언도 있었다. 욕설과 고함이 오가는 사이 임원들은 ''깍두기''의 호위를 받으며 조합 사무실로 줄행랑을 쳤다. 몇몇 조합원들이 사무실로 몰려가 "선거함을 공개하라"고 고래고래 소리쳤지만 공허한 메아리였다.

''대박의 꿈''을 안고 재개발조합 설립동의서에 도장을 찍은 사람은 전체 주민의 60%. 법정 동의율 75%에 못 미치는데도 재개발 추진위원회 측은 이날 서둘러 조합 임원 선거 및 예산안을 처리하는 창립총회를 열었다. 4월 20일 재개발 정비구역에 포함된 이 지역 9만7266㎡에는 앞으로 임대 250여 세대 등 총 1500세대가 들어설 예정이다.

서울 용산 재개발 지역에서 참사가 벌어진 지 18일로 150일이 지났지만 ''재개발 복마전''의 양상은 여전히 달라지지 않았다. 부천의 재개발 조합 총회 풍경은 아주 ''평범한'' 축에 든다.

사무실 입구를 지키고 섰던 용역업체 직원도 비슷한 말을 했다. 서울에서 왔다는 그는 "포털 사이트에서 ''경비업체''라고 치면 나오는 업체 소속이다. 우리는 재개발 조합에서 의뢰가 오면 전국 곳곳을 다닌다. 이런 일은 워낙 흔하다"면서 반대파들에게 "일당을 받은 이상 저희도 일해야 하니 이해해 달라. 여기서 기운 빼지 마시고 내일 저희가 간 다음 오셔서 따지라"고 말했다. 그에게 오늘 총회를 본 소감을 묻자 "서울에서도 여기 문제가 많았다고 들었다. 이래선 (재개발 진행이)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재개발을 생각하는 주민들은 주로 노령자, 소상공인이 많다. 이들은 평생 모은 전 재산인 집을 가지고 너무 쉽게 동의서를 내 준다. 조합설립동의서 제출 후부터는 ''내 재산은 내 것이 아닌'' 게 된다. 조합에서는 동의서를 바탕으로 조합원의 모든 재산(토지, 건축물 등)의 처분권한을 갖는다. 조합원들 재산을 담보로 금융권에서 사업자금을 융통하여 정비사업을 진행하고 현금청산 명도이전 강제이전 등 막강한 권한을 행사한다. 그 결과 평생 모아 집 한 채 장만한 조합원들의 피해는 막심하다. 한 지역의 재개발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은 "도장은 본인들이 찍어주고 비대위에 와서 하소연하니 답답하다"고 말했다.

동의서를 정비업체 OS요원이 받는 것도 문제다. 이들은 동의서 1건당 10만~20만원의 수당을 받기 때문에 ''헌집 주면 새집 준다''는 식으로 온갖 감언이설을 늘어놓게 된다. 최근 법원은 자기 집 값이 얼마나 나가는지, 재개발이 끝난 뒤 아파트에 입주하려면 얼마의 돈을 추가로 내야 하는지 등 구체적인 내용을 모른 채 제출한 동의서는 무효라는 판결을 내놓았지만 여전히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

이 같은 서면결의는 재개발 단계마다 계속 반복된다. 심지어 조합원에게 도장만 받고 서류를 위조하는 경우도 있다. 문제를 제기하려고 해도 일반 조합원들이 전체 조합원 명단을 얻기도 힘들뿐더러 총회에서 용역업체에게 끌려가 내동댕이쳐지는 수모를 겪는 일도 다반사다.

그렇다면 조합은 왜 이렇게 무리해서까지 재개발을 진행하려고 하는 걸까.

조합 설립 전 이들은 추진위원회라는 이름으로 활동한다. 이들의 활동비, 인건비는 자기들이 연대 보증을 선 뒤 정비회사, 건설회사에서 빌려온 것이다. 추진위는 이미 써 버린 자금을 물어낼 수 없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지 공사가 진행되도록 해야 한다. 취재 과정에서 접촉한 모 지역의 추진위 위원장은 자기 지역에서 재개발을 하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내용의 기사를 써 줄 수 있냐고 노골적인 제안을 해오기도 했다.

이같은 추진위는 제대로 된 사업성 검토를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구체적인 추가 분담금도 얘기하지 못한다. 결국 조합설립동의서를 걷기 위해 OS요원을 쓰게 된다. 이렇게 나가는 인건비는 조합마다 보통 2억~3억 원 가량인 것으로 알려졌다.

용산 참사 이후 재개발 관련 도시정비법 개정안은 앞 다투어 나왔지만 국회가 공전된 탓에 국회통과는 갈 길이 멀다. 정희수 한나라당 의원 등 12명은 재개발 폭력의 몸통이라 불리는 정비사업 전문 관리업자들이 조합원에게서 서면 동의서를 받지 못하도록 하는 법안을 제출했지만 이제 겨우 법안심사 소위원회에 상정된 상태다. 서울시에서는 그나마 구청이 재개발을 감독하도록 제도 개선을 추진 중이지만 다른 지역은 ''글쎄요''인 상황이다.

이처럼 ''재개발 복마전''이 전혀 개선되지 않은 상황에서 조합원들이 자기 재산을 지키려면 스스로 공부를 하고 준비를 하는 수밖에 없다. 일부 지역의 주민들은 자구책을 마련하기 위해 재개발 비상대책위원회를 설립했으며 전국 재개발 비상대책위원회연합(이하 비대위연합)이 파악한 비대위 만도 전국 400 군데가 넘는다. 비대위연합 강성윤 회장은 재개발 지역 주민들의 ''공부''를 강조하면서 서면 결의에 의존하지 않고 직접 나와서 상황을 체크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비대위연합은 매주 한 번씩 재개발 스터디 모임을 한다. 18일 서울시의원회관에서 열린 31차 모임에는 60~70대 노인들이 대거 참석해 학구열을 불태웠다.

모임에선 "일단 조합에서 서류가 오면 복사하고, 조합에 내는 서류도 내기 전에 반드시 복사해 둔다", "조합원 명단을 확보하려면 구획정리 기본계획서 등이 관공서에 들어간 후 공개열람신청을 하면 된다. 그도 저도 안 되면 수십만 원 가량 들여 그 지역 등기부 등본을 전부 떼는 수도 있다", "조합설립 무효소송, 관리처분계획 취소소송을 할 때는 조합의 회유에 소송을 그만두는 사람이 생길 것을 대비해 여러 팀이 제기해야 한다" 등의 노하우가 공개됐다.

부천시 오정구의 S동 1-2구역 일부 조합원들은 불안함에 동의서를 철회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동의서 철회는 아직 조합 설립 인가 전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자신이 낸 동의서를 철회하려면 철회의사를 밝힌 문서에 인감증명서를 첨부, 재개발 조합 사무실과 구청장, 시장에게 내용증명 우편으로 보내면 된다. 그전에 문서 복사는 필수다. 간혹 조합에서 수취 거부를 하지만 송달 증명을 받아두면 된다. 그런가 하면 토지 지분이 큰 주민들은 비대위를 꾸리고 "차라리 공영개발이 더 낫겠다"며 재개발 계획 고시 자체를 취소하도록 하는 행정소송을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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