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7일 (일)
(녹) 연중 제14주일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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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열린 마음으로 살다 가신 도 요안 요한 신부님이 생각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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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상철 [yyusch] 쪽지 캡슐

2016-07-02 ㅣ No.210938

제가 도 요한 신부님을 알게 된 건 35년 전 쯤입니다.

당시 친구 하나가 살레시오 수도원에서 목공 선생을 했고,

한 친구는 수도원 내 기숙사에서 기숙 아이들 사감을 하고 있어서,

친구들한테 놀러 다니다 신부님과 친해지게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제가 영세를 받게된 과정과,

생존해 계실 때 저 와의 관계이야기입니다.

 

수도원에 놀러 갔다가 신부님께 인사를 드리면,

반갑게 맞아 주시면서 가끔은 사제관으로 데리고 가서

조그만 잔에 술도 한 잔씩 주시곤 하였습니다.

어쩔 땐 미사에 사용하는 포도주를, 또 더러는 양주를.

 

그렇게 친해지다가 제가 신부님께 여쭈었습니다

"신부님, 제가 천주교에 대해서 공부를 하고 싶은데,

세례를 전제로 하지 않고 교리반에 들어가면 좀 않되겟습니까?"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엉뚱하고 당돌한 청이었는데,

신부닌 께선 " 아,, 그러세요!"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왕십리에서 왕복 2시간 반 내지 세시간을 왕복하면서

일주일에 한 번, 두 시간씩 1년 과정 교리공부를 시작하엿습니다.

 

제가 서른 살에 대학엘 갔는데 교리 중 마음이 급해져서 다시 청을 하나 했습니다.

"신부님 제가 대학교 입학이 우선인 것 같은데 교리 휴학하고 내년 이맘 때부터 다시 하면 않되겠습니까."

신부님게선 또 흔쾌히 허락하셨죠. "네. 그러세요."

 

그리고  대학생이 되어서 가을 부터 교리 공부를 다시 시작했고,

다음 해 부활을 두 달 남기고 영세 받기를 청해서 수사님께 전례에 대한 교리를 과외로 배우고,

주님 부활 하신 날 밤 영세를 받았습니다.

영세를 청할 때 신부님께서 활짝 웃으시며 하신 말씀은 "아! 그럴줄 알았어요." 였답니다.

 

신부님의 교리 1년 중 매번 성가로 시작해서 성가로 마치기는 했지만

성경은 한 번도 꺼내지 않으셨습니다.

그 옛날의 예수님에 대해서는 거의 말씀을 하지 않으셨지요.

 

교리 중 하시는 말씀 중 한 예를 들면.

" 지금 이 밤에 우리가 이렇게 모여 공부 할 수 있는 것은

발전소에서 부터 송전 과정, 등 등 많은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를 위해 수고해 주는 덕분이고,

우리를 여기로 데려다 주고, 다시 집에 끼지 데려다 주시는 늦도록 수고하시는 분들이 계셔서이다.

우리는 삶 속에서 감사해양 할 일과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자연이 이렇게 함께 어우러져 돌아 가고 우리가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게 하는 것도,

그저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으시는 하느님께서 사랑으로 보살펴 주시는 덕이다"

 

이렇게 생활 속에서 감사하고 세상 속에 함 게 하시는 하느님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영세를 받고 처음엔 본당으로 교적이 옮겨져 서먹 했지만

이런 저런 시간들이 흐르면서 신부님께 찾아가서, 저 고백성사 좀 주십시요, 하면은

"응, 그래요, 와 줘서 고마워요" 하시면서 테이블에 마주 앉아 제 이야기를 다 들어 주시고

조언도 해주시고, 그리고 사죄경, 보속을 주셨죠.

 

돌아 보면 그립고 행복했던 시간들이었습니다.

아직까지도 제 신앙생활에 고비 마다의 버팀목도 되어 주시고요.

 

몸 여기 저기서 끊임 없이 생기는 암으로 10여 차례나 수술을 받고 투병하시면서도

묵묵히 사랑을 실천 해가신 신부님,

 

신부님, 거기선 몸의 고통도 없고, 서로 사랑하시는 주님과 함께 계시니 정말 행복하시지요?

아직 저를 잊지 마시고 기도해 주십시요. 

주님께서 사랑 하신 제자, 저 요한도 신부님 생각 자주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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