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6일 (토)
(녹) 연중 제13주간 토요일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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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른 신부님의 사랑 표시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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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규수 [johnwhrbtn] 쪽지 캡슐

2000-06-10 ㅣ No.11409

굿뉴스에 들어와 보고 느낀점

 

나와 다른 의견을 수용하는 태도가 미흡한 감이 있다.

다원주의의 시대에 살아가면서 절대성을 강조한다.

나도 제대로 훈련받지 못해 그럴지도 모른다.

 

인신공격이 짙은 글을 쓰고,

왜 삭제하라고 친절하게 권유하는지.....

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삭제해야 하는가!

그러는 분들은 자신이 만물의 척도라도 되는 것인가?

 

신부님의 글을 읽고 느낀 점

 

저는 교리에 대해 잘 모릅니다.

지극히 평범한 신자로서 신부님의 글을 대하고, 하느님의 원의에 따라 세워진

신부님의 뜻이 꺽일 것이 걱정되어, 논리와는 거리가 먼 글,

 지극히 감정적인 언사를 사용하여  원하시던 그렇지 않던

신부님을 변호해 드리고자 하는 간절한 소망으로 이 글을 적습니다.

 

 사용하신 어휘들이 약간은 생소하고 어려운 점도 있어

처음엔 두렵고도 놀랐습니다.

그 다음에 세상에...   신부님이 이런 글을 쓸 수가 있다니.

우리 교회가, 구성원들이 용납해 줄 것 처럼 보이지 않았답니다.

그럼 이 글을 쓰신 신부님은 작정한 신부님이구나.

그래도 안됐다. 신학교 6년 부제 사제를 거쳐 오는 동안 들인 그 공은

어찌하고. 부모님들은 또 얼마나 실망하실까! 동료 신부님들은?

그런 걱정들 속에서 신부님의 입장에 다가가자

얼마나 그동안 마음 고생을 하셨을까? 안쓰러웠답니다.

 

제도화 된 구조 속에서 그 구조의 허물을 보고서도 많은 이들(당연히 저도 포함됩니다)은 현재의 안락을 포기하기가 힘들어 자신의 생각을 접어버리고 마는데 그 어떤 결단 속에서 ’상당히 괜찮은 길’인 사제의 길을 포기당할 수도 있는 글을 쓰셨을까? 생각하게 되니 신자된 도리를 다하지 못한 것 같아 미안스러웠습니다.

아마도 사랑이신 하느님을 믿으시기에 그 어떤 두려움도 이겨내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연 이 길밖에 없었는가 착잡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사제 서품을 얼마 앞두고 쓰신 당차고 품위있는 사제로서의 다짐이 너무나 컸기에  본당 사제로서의 길을 걸어가면서 힘겹게 살아가는 신자들을 보면서 사제로서의 정체성과 교회의 정체성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시게 된 것으로 보였습니다.

 몇몇분의 말씀처럼 신학생때 정체성을 확립하고 사제로서의 길을 걸어가시면 얼마나 좋으련만, 사목자로서 살아가면서 느끼는 그 괴리감이 너무 컸던 것 같았습니다.

성격에 따라서 넣어둘 수도 있고, 드러낼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어느 신부님의 말씀처럼 우리가 기도해 드릴 성질의 것이지 드러내놓고 험담할 성질의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성직자로서의 자기성찰은 때 늦은 것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나 가능해야 하는 것이고 죽을때까지 이루어져야 한다고 봅니다.

 

 신부님의 글을 삼일동안 시간나는데로 정독한 결과(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으나) 제 우려와는 별개로 신부님의 글은 시대의 변화에 따르지 못하는 교회가 변화되고 쇄신되어야 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말씀으로 들렸습니다. 제가 첨에 얼핏 보고 걱정했던 만큼의 이단적인 글이 아니란 걸 알았습니다. 이단이기는커녕 교회와 교회에 속한 구성원들에 대한 지극한 사랑의 염원이 묻어있는 글이었습니다.

 

 성사만 하더라도 과거엔 백여가지가 넘는 성사가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루터의 프로테스탄트 이후 시대적 필요성에 따라 칠성사로 정리하였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피치못할 사정으로 주일미사를 궐하고 그것으로 인해 고해를 해야하는 것을 두려움으로 느끼는 신자분들까지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성사의 내용이 아니라 성사의 의무화란 형식변화의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겠습니까!

 시대의 변화 속도가 하루가 다른 오늘날에 성사 참여의 의무화로 인해 교회와 멀어지는 경우를 보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라면 고해 성사의 의무에서 탈피하여 자발적인 참여가 가능할 때를 생각해 보는 일이 결코 교권을 침해하는 일이라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참고로 저는 영세받은 후 지금까지 13년동안 고의로나 의도적으로 주일미사를 궐한적이 없으며, 지금까지 평일미사를 적어도 한주일에 두 번 이상은 참례하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지금도 일주일에 사일정도는  미사 참례와 각종 회의로 성당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적어도 두달에 한번 정도는 자발성과 의무감이 뒤섞여 고해 성사를 하고 있습니다.

 

물론 신부님의 글이 보는 이들의 생각과 달라서 엄청 힘들게 느껴지는 분들도 있을 것이나 복음 말씀 속에서 시대의 징표를 읽는 메시지를 건져내야 한다는 말씀이나 인간 예수로서의 삶을 본받아 살아가자는 그 말씀의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요.

 

주님이 친히 세우신 교회가 주님이 행하신 삶과 넘을 수 없는 간격을 보이고 있다면 젊은 사제로서  예수님의 삶, 살아있는 예수의 삶으로 돌아가자고 외칠수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느님은 사랑이시라는 말씀에 전적으로 공감한다면

우리가 내 생각만, 내가 아는 것만이 ’유일하고 배타적이며 독점적인’ 인식이라고 말할 것이 아니라 나와 다른 견해 속에서도 진실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는 다양성 속에서도 발전하는 우리 교회의 능력을 믿습니다.

 

 

그리고 신부님 힘내시고요.

그래야만 사랑이신 주님의 길을 힘차게 걸어가실수 있잖습니까!!!!!!

 

유감의 말씀: 교구 사제 회의라든가 그런 장소에서 먼저 논의하셨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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