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7일 (일)
(녹) 연중 제14주일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자유게시판

마르띠노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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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연 [martincho] 쪽지 캡슐

2000-11-02 ㅣ No.14841

15년전으로 기억됩니다. 내 친구의 친구 하나를 소개 받았습니다. 재무부에 근무한다는

장내찬이었습니다. 젊었을 적이어서 어린 아이들과 가족 단위로 야유회도 다녔고 가끔

술도 한 잔 나누던 기억이 납니다. 건강을 무척 생각하여 술을 많이 마시지 않던 친구

였습니다. 자주 만나지 못 했고, 서로 삶이 바빠 잊혀진 듯하다 90년대 초에 또 만나게 되었지요. 재무부에서 나와 신용관리기금이란 곳에서 근무하였는데 그 회사와 우리 회사가 같은 건물에 있어 가끔씩 엘리베이터에서 얼굴을 마주하곤 했습니다.

부도가 나거나, 문제가 생긴 신용금고를 관리한다 하였고 그런 금고의 관리 사장으로

근무한다는 소식도 듣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한동안 서로 연락이 끊어졌다가

IMF 이후에 금감원에 국장으로 영전했다는 소식을 듣고 전화로 축하해 주었습니다.

이것이 그와 나와의 교분의 전부이지만, 그의 자살 소식에 내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인간으로서 주님께 가장 큰 죄는 자신이 생명을 버리는 것임을 그도 알았을 것인데

어떤 상황이 그를 죽음으로 몰았는지 그는 그만 주님께 큰 죄를 지었습니다.

오늘 새벽 한시 경에 빈소를 찾아가 그의 본당 교우들 틈에서 연도를 바쳤습니다.

아직 어린 두 형제가 지키고 있는 빈소는 참 안스러웠습니다. 그의 죄가 그를 자살로

몰아세웠을까? 그의 사생활을 세세히 알지 못하는 나로서는 언론의 보도가 전부이지만

부도나 문제를 일으킨 금고를 냉정히 처리하여 ’저승사자’로 불리웠다는데 그것은 지탄 받을 일이 아닐 것이고 부정한 방법으로 축재를 한 죄와 권력을 남용한 죄는 있으리라 짐작됩니다. 내 생각이 틀릴 수도 있겠으나, 그가 스스로 죄를 감당할 수 없어 자살이란 극단의 처방을 택했으리라 믿지 않습니다. 그는 인간적인 괴로움을 신앙으로 견딜 수 있었을 것입니다. 오랫동안 신앙 생활을 해 왔기에 가능했을 터인데, 왜 소중한 생명을 헛되이 버렸는지 안탑깝고 애석합니다. 법적인 처벌이 무서웠을까요?  교우들에게서, 가족과 친척들에게서 받을 모욕이 겁났을까요?

세상에 대한 부끄러움은 있었을 것이로되 그보다 더 중죄인들이 버젓이 복권되어 활개치고 있는 이 세상을 그는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을 터인데....

아마도 그는 혼자서 책임져야할 부분에서 자신이 없다고 생각했으리라 짐작됩니다.

부정 대출된 수 백억원을 국장 혼자서 무마하는 능력이 그에게는 없다고 봅니다.

소심한 그의 성격이 그런 과감한 결단을 내릴 수 없으리라 믿습니다. 그렇게 큰 사건의 무마를 일개 국장인 그가 전결할 수 있었는지... 그 체제를 모르니.....

 

장내찬 마르띠노의 죽음이 전적으로 그의 죄 값에 해당된다고 생각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비정한 사회와 부패한 권력이 합작으로 만들어낸 아픔이기에 우리에게 던지는

의미는 무엇인지 깊이 생각하게 하는 죽음으로 여겨졌으면 좋겠습니다.

당당하게 죄 값을 치루고 주님 앞에 회개하였으면 좋았을텐데, 마르띠노의 죽음은

우리에게 던져진 화두일 뿐, 해결도 보속도 되지 못하니 안타까울 뿐입니다.

더럽고 감춰진 것은 언젠가는 드러나는 것이 신의 뜻이니, 마르띠노여, 잘 가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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