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6일 (토)
(녹) 연중 제13주간 토요일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으냐?

자유게시판

dilemma, tree of knowledge of good&b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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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식 [goodactor] 쪽지 캡슐

2023-09-03 ㅣ No.228987

평화, 특히나 공동체의 평화라는 게 무얼 말할까요

보통은 United, 곧 잘 어우러짐, 잘 아울러짐, 잘 어울림, 곧 일치가 그 대표와 첫째로 떠오를 겁니다
각자의 성격이 나름대로 있는 것들이 그런 United, 잘 어우러짐, 일치를 서로가 함께 이룬다는 것은 또한 경의롭고 아름다울 겁니다
그렇지만 그런 일치는 어떤 의도나 목적, 어떤 생리나 환경에 따라서도 이루어지는 겁니다
BBC 다큐멘터리, 동물의 왕국, 그 정글에서 사는 동물들을 보면 끼리끼리, 유유상종하는 동물들의 모습들을 보게 됩니다
무리생활을 하는 동물들 대부분이 그렇게 살고 종의 보존과 자연의 지속에 있어서도, 이미 유전적으로 그렇게 같은 종은 일단 좁게나, 넓게나 직간접으로, 그런 구체성과 포괄성을 두고 같거나 유사한 것들과 함께 합니다
생의 대부분, 전부를 말입니다
사람들도 그럴까요
아마도 그렇지 않을까요
특별히 인간지성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평화라는 성격과 이미지가 일치를 기본적으로 두고 있으니 조형의 원리에서 보듯이 통일성이나 조화라는 굳이 아름다움을 이루는 원리를 들먹이지 않는다고 해도 달리 다른 성격이나 이미지, 다른 류의 모습들을 보이지는 않을 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깡패조직들이 단합과 일사불란할 정도의 액션들을 보인다고 해서 그 깡패조직들이 그 이름을 두고 일치를 이루고 그 바탕에서 평화를 살고 있다고 누구도 말하지는 않습니다
썩을 대로 썩은 대한민국 검찰조직이 검사동일체 의식을 보이며 집단적으로 그 치부와 폐단을 은폐하고 권력과 지위를 추구하며 그렇게 권력기관으로 그 위력을 과시하고 그 직권을 남용하며 온갖 타락과 유착과 부패의 카르텔과 컨소시엄을 버젓이 사회화하며 국가를 희화하고 국민들을 유린하면서 그런 자기 식구들을 감싸고 돌고 자기들 마음대로, 편할대로 오만가지 만행을 다 저지르며 그러한 의식적 페르조나를 아이덴티티화하고 그 패러다임을 구축한다고 해서 그런 검찰조직이 일치를 이루고 그 바탕에서 검찰의 사명과 직무를 다하고 있다고 누구도 말하지는 않을 겁니다
깡패조직들은 언제나 범죄단체구성의 궤를 돌고 있으며 검찰조직은 언제나 그 조직 개혁의 1순위에서 밀려나지 않습니다
다들 힘들고 어려워지면 곁에 있는 사람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 둘씩 사라지고 떠나갑니다
그렇게 숱하게 아픔과 슬픔을 겪고 살면서도 세상이니 그러려니 하고 사는 사람들을 보면 무던하기도 하고 아련하기도 하며 안타깝기도 합니다
서로 죽고 못살 정도로 눈에 콩깢지가 씌여 한 평생을 약속하던 남녀들이 석 달도 채 못지나 서로 갈라지고 찢어져 두 번 다시는 안 볼 것처럼 각자가 돌아서기도 많이 하는 세상입니다
그 누구의 탓도, 경험의 미숙도, 잘못된 선택도 아닙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는 누구도 다들 한 번 사는 인생이고 세상에서 해야 할 일도 다들 처음 해 보는 일이니 말입니다
그렇지만 누구들은 함께 살고, 누구들은 갈라 섭니다
그리고 누구들은 행복하고 만족스럽게 함께 살고 누구들은 불행하게도 마지 못해 죽을 상을 쓰며 같이 삽니다
그리고 서로가 그렇게 행복해했던 사람들, 서로에게 충분하게 만족했던 사람들도 세상의 풍파와 변고 앞에서는 가슴이 찢어질 듯한 생이별과 함께 그 아픔과 괴로움을 겪기도 합니다
깡패조직들과 검찰조직은 사람들의 그런 정서를 느끼지 못하고 그런 의식을 모릅니다
그것들의 지성이 어떤 방향성에 두어져 있는지 모르겠지만 폭력을 사랑하는 그들의 정수리에는 언젠가 사람답지 않은 그들의, 사람같지 않게 살았던 그들이 다시 돌아와 그 끝을 내게 될 겁니다
그들에게는 그들 자신이 돌아오는 게 마땅한 이치입니다
성경에는 사람들의 죄로 인해 죽음이 이 세상에 들어 왔다고 합니다
참으로 난해한 진리입니다
그냥 믿어 버리면 될 일들은 이 세상에는 어떻게 할 수 있는 일도 있지만 어쩔 수 없는 일들도 있다는 식견이 필요충분할 지도 모를 일입니다
또한 이 세상에서는 알 수 있는 일들도 있지만 참으로 알 길이 없는 일도 많습니다
죽음도 그런 일 가운데 하나입니다
분명한 것은 하느님의 창조는 아니지만 가능태와 현실태의 분수령과 실사는 하느님으로부터 벗어나 있지 않다는 진실입니다
겨자씨, 씨앗 하나로만 머물면 분명 그 씨앗 한 알 그대로이고 겨자씨라는 나무는 이 세상 어디에도, 어느 세상에도 없을 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겨자나무가 될 가능성이 그 겨자씨에게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 씨앗은 겨자씨이기에 다른 씨앗도 아니고 다른 성질을 가진 존재도 아닙니다
무엇을 말하는지 대충은 알아 들었으리라 여깁니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에게 죽음이 들어왔다는 것은 창조로 인한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의 선택으로 인해 그렇다는 것이 진리의 분명한 직관이고 통찰이며 가르침이기에 사람들은 그 바탕에서 이해도, 신뢰도 가능합니다
선택의 가능성은 아이러니와 딜레마를 동시에 품고 있습니다
그것이 좋을지, 나쁠지는 모릅니다
사실이 그렇습니다
겪어 보지 못했으니, 똥인지 된장인지 맛을 보지 못했으니 그것은 가능성 중에서도 인간지성의 판단과 이해를 볼모로 사로잡기에 핫한 것입니다
모든 것을 안다는 것은 풍부한 경험만을 말하지는 않을 겁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것들에 한해서만 경험가능합니다
틀린 말이 아닙니다
그렇게 가능성도, 한 알의 씨앗처럼, 압축파일 같이 함축되어 있을 겁니다
선악과 한 알의 마법과 마력이 얼마나 엄청난지는 모릅니다
분명히 선악과를 따 먹으면 죽는다고 했으니 말입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아도 선악과를 따 먹는 행위 때문에 죽었을 것이다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즉 사람의 행위가 그 사람을 죽였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살인자가 칼로 다른 사람을 찔렀으면 칼에 찔린 사람이 과다출혈로 사망에 이르지, 살인자가 당장에 그 살인의 행위로 죽는 것은 아니니 말입니다
그러나 살인자는 그 행위로, 그 살인죄에 대한 사형을 선고받고 사형당해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첫 인간들, 아담과 하와는 어느 경우에 해당되는 것이라고 생각해야 타당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과연 선악과의 마법과 마력으로 인한 죽음인지, 아니면 살인자처럼 자신들의 죄악으로 인해 이르게 된 죽음인지 말입니다
성경은 아마도 후자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인문학적 견해들은 다양합니다
사람들은 일정정도의 자기화의 속성이 있다고 보는 겁니다
수전노를 보면 그 인색함과 동시에 그 양태가 뿌리낖이, 뼛속 깊숙히 박혀 있는 것처럼 그 성격을 뚜렷하고 구체적으로 이미지화하니 말입니다
그런 사람이 성인과 같은 완덕을 보일리는 만무하니(사람들도 대체로는 압니다, 사람이 얼마나 달라지기 어려운 존재인지) 그런 사람은 이미 그 인간성이 좋고 바람직한 원형과 정체에서 상당히 동떨어져 있고, 그렇게 양화에 대해 죽고 그런 악화에 살아있다고(숨만 붙어 있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면 선악과의 속성,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선악과로 인해 사람이 경험하고 맛보고 알고 느낄 수 있는 그 선악과의 마법과 마력에 의해 사람다움이 죽고 사람의 발전가능성과 지속가능성과 완성(겨자씨 한 알이 큰 나무가 되는 둣한)에 대한 지향을 없앨 수도 있다는 견해가 보일 수가 있는 겁니다
그러면 겨자씨 한 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큰 나무가 되고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가능성의 역설이 들리게 될 지도 모릅니다(사람들은 이런 역설같은 가르침을 잘 못 알아듣는 경향이 다분하고 심각합니다, 본인들의 삶 속에서나, 경험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고 여기거나, 그럴 의미와 가치에 대해 경우에 따라서나 기회가 되더라도 몰랐거나 모르거나, 아니면 쉽게 선택하지 못할 수도 있는 숱한 이유와 사유가 다들 있기 마련이기에)
선악과를 감히 마약에 견줄 수가 없는 게 여러 이유로 들어질 수 있습니다
단지 마약도, 마약성 진통제라고 마약 성분이 아니면 진통의 효과를 내는 물질을 이 지구상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그 효율과 효과에 있어서도 선악과는 인간성 전체에 대한 영향력이 있는 것 같은데 마약은 고통과 진통제, 쾌락에만 한정되어 있으니 말입니다
마약이란 쓸 데라고는 그런 데와 그런 의도 밖에는 없으니 말입니다
그렇지만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 하나만큼은 둘이 완전히 같습니다
선악과는 하느님의 피조물입니다
이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에덴 동산 한 가운데에 떡 하니 자리잡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마약도 양귀비와 같은 식물에서 그 핵심성분들이 추출된다고 하니 필로폰이나 코카인(담배의 연초처럼 코카잎에서 주성분이 추출되는), 헤로인과 마약도 또한 자연으로부터 가공된 산물입니다
그리고 자연은 하느님의 피조세계입니다
그러면 우리 사람들은 진리를 통해 깊이 깨달아야 할 것이 있고 그러한 통찰과 이해로, 직관에 가깝게 하느님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사람들은 대체로 세탁세제나 유독성이 강한 생필품은 어린이들 가까이 두지 말라는 주의와 경고문을 그 제품들에 붙여 둡니다
하느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피조물과 피조세계에 대한 진실과 사실을 충분하게 알려 주었습니다
그러나 피조물과 피조세계에 대해 사람들은 자신들의 인간지성을 가지고 임의의 의식과 감정을 가지며 그것을 바탕으로 자신들 임의의 판단을 할 수 있고 그 판단대로 자신들 임의의 행위를 하며 자신들 마음과 임의대로 손보고 만지며 자신들 임의대로 다루고 지배하며 가지려는 속성과 경향이 있다는 것을 첫인간들은 보여 주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만이 언제나 창조주이십니다
사람들도 크리에이터가 될 수 있지만 어디까지나 자연에 한해서, 인본주의 안에서입니다
하느님은 신적본질인 전능으로 무엇이나 할 수 있고  무엇이든 가능하게이지만, 사람들은 주어진 본성인 재능을 가지고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으로만입니다
사람들은 지금 세계의 상황을 어떤 변화로 이해하는 듯합니다
그리고 그 이해의 범주 속에서 판단하려고 듭니다
그러나 창조의 관점에서 엄밀히 보자면 변화란 없습니다
가능성이란 말이 꼭 어떤 변화의 양태나 상태, 그 결과와 결과상의 현상만을 말하지는 않으니 말입니다
최종적으로 무엇이 된다 라고 하는 것을 사람들은 좋아하지만 언제나 모든 것은 하느님이 뜻하신 무엇과 그것이 바로 실체임을 신앙인들은 압니다
성경에서 가르칩니다
젊은 나이에 완덕을 이룬 사람이 다 늙어서도 제 자리인 인간들보다 훨씬 나은 사람이라고 말입니다
그런 사람이 이 세상을 일찍 떠나는 것은, 그런 사람의 이른 죽음은 다 하느님의 뜻이 있어서라고 말입니다
사람은 성장 과정이 있고 그 과정 속에서 정신도, 육체도 자라납니다
그 모든 순간에 하느님께서 함께 하시며 사람은 사람이 되어 갑니다
다 늙어 죽거나, 어린 나이에 일찍 죽거나, 아이 때에 너무 일찍 죽거나, 온갖 죽음이 도사리는 세상에서 누군가가 어떤 사유로 어떻게 죽었을 지 몰라도, 그 모든 이들이 어떤 결과를 맞을지는 아무도 모르고 그 어떤 결과를 그렇게 맞았다고 할 수 있는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 모든 사람들이 보는 같은 사람들의 죽음의 모습이 우리 모든 삶의 결과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세상 사람들은 말합니다
기후변화 그리고 환경재앙을 덧붙여 댭니다
이런 식의 사고만이 가능한 세상 사람들의 한계는 역력합니다
기후는 변화하고 있는 게 아닙니다
누가 무엇을 기준으로 그런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과거의 데이터입니까
아니면 이전까지의 패턴입니까
현상이란 특히나 과학적 현상이란 물은 100°C에서 끓고 0°C에서 언다는 사실입니다
그 진실이 기후라고 해서 다르게 보이지는 않습니다
우리 사람들은 매우 의식적이고 감정적입니다
우리 사람들이 보는 현실과 현상도 그런 카테고리 속에서 보여지는 겁니다
과학자들은 말합니다
이산화탄소로 인해 지구의 기온이 상승하고 오존층의 파괴로 인해 유해한?(적당하면 기능적이지만 과하거나 덜하면 부작용이 생기는 범위에서) 빛이 여과없이 쏟아지고 있다고 말입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쉴새없이 나발을 불어댑니다
온통 경고성, 대책성 문구들이 난무하고 난발합니다
그러나 결론은 언제나 같습니다
과학적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적당하게(가장 모든 것을 좋게, 잘 있게 만들고 그 효율과 효과가 지속가능하게 하며 그 기능성이 떨어지지 않게 작용하고 작동하는 양태와 상태)있는 가운데 적당하게 작용하고 적당하게 작동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사람들 자신에게서부터 시작되는 지점을 파악해야 하고 그 지점에서부터 언제나 변할 수 없는(창조주가 한 처음부터 창조해 놓은 가장 최선의, 최적의 양태와 상태) 적당한 선상을 바라보고 이에 모든 것을 잘 맞추어 놓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원유가 어떻게 땅 속에 매장되어 있는지를 이해합니다
우리 사람들이 모든 것을 그렇게 만들어 놓을 수는 없습니다
그렇기에 원유의 매장처럼 무엇인가의 변화란 자연 속에서는 없는 것이며 모든 자연 현상은 과학적 현상이기에 당연한 시작과 과정과 결과만이 눈 앞에 있을 수 있고 그 모든 현실에 놓여집니다
사람들이 지금 그 어떤 과정에 놓여 있는지는 몰라도 사람들은 그 변화라는 것의 끝에 안달이 나 있습니다
참으로 인간지성의 어두움이 아담과 하와 때와 달라진 것이 없고 하나도 다르지가 않습니다
선악과는 언제나 세상의, 세상 모든 일의 모티브로서 사라지지 않는 진실같이 세상 한 가운데에 서 있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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