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8일 (월)
(녹) 연중 제14주간 월요일 제 딸이 방금 죽었습니다. 그러나 가셔서 손을 얹으시면 살아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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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중규 [mugeoul] 쪽지 캡슐

2000-12-27 ㅣ No.1270

인간세상의 모든 움직임은

고(苦)를 벗어나려는 데 있지만,

예수의 그리스도 정신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고(苦)를 포용하며

그 초극(超克) 속에서 성(聖)을 획득하려 한다.

십자가를 통한 부활의 영광인 파스카의 신비를 비롯하여,

예수께 있어 참된 행복자는 고(苦) 밖에 있는 자가 아니라

오히려 고(苦)와 함께 한 자이다.

곧 지금 가난한 자,

지금 슬퍼하는 자,

지금 주리고 목마른 자,

지금 박해를 받는 자,

지금 평화를 위해 자신을 바치는 자,

지금 마음이 깨끗한 자,

지금 굶주린 자,

지금 우는 자,

지금 미움을 사고 내어쫓기고 욕을 먹고 누명을 쓴 자 등등이다.

그렇게 볼 때 수도회를 비롯하여 교회 안의 영성단체들이

곧 창립정신을 잃고 타락되고 마는 이유는 분명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은 참된 예수 정신인 고(苦)를 껴안기 보단,

오히려 보다 커지고

보다 좋게 되고

보다 훌륭하게 되어

그야말로 속된 말로 하루 빨리 자리잡아

단체를 안정된 본궤도에 올려놓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다 보니

그 성공적인 성취 뒤에 남는 건

다름 아닌 고(苦)를 벗어난 즐거움뿐인 것이다.

사실 잘 살기 위한 그런 애씀은

대개 뜻대로 아니 그보다 더 성공하고 마는 데,

그것은 역설적이지만 종교적 영성단체가

인간적으로 지닌 성실성과 신앙의 힘 때문이다.

하지만 바로 여기에

근원적인 함정이 도사리고 있음을 조심해야 한다.

따라서 프란치스코처럼 끊임없이

참으로 죽을 때까지

스스로를 고(苦)에다 거듭해서 묶어 두지 않는 한

참된 정신은 쉬 사라지고 비계덩이만 남게 되는 것이다.

교회의 발언권이 세졌다고 좋아할 때,

자유롭게 선교할 수 있는 여건이 되었다고 기뻐할 때,

늘어난 성당과 교인수를 그냥 흡족해 즐길 때,

보다 능률적이고 현대화된 수도회를 높이만 살 때,

그 지긋지긋한 고(苦)에서 벗어나게 되었음을 자족할 때,

그 잘 살게 됨 속에서

오히려 보다 근본적으로 병들고

오도된 길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의 손발에 남아 있던 못자국을 기억해야 한다.

부활의 그 영광의 시간에서조차 십자가는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주님은 부활하신 후에도 십자가의 상처,

그 아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계시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는 결코 아픔을 내던지려 해선 안 될 것이다.

오히려 자신의 것은 물론이고 둘레의 것까지

기꺼이 껴안으려고 실천적으로 노력할 때,

참된 그리스도 예수의 교회의 될 것이다.

참으로 교회나 수도회가 몇 세대가 지나도,

아니 오히려 연륜이 쌓여 성숙될수록

더욱 고(苦) 속에 자신을 불사를 수 있다면,

주님은 그 안에 분명 살아 계실 것이다.

십자가의 고난을 통한 부활의 영광

곧 파스카의 신비란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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