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8일 (월)
(녹) 연중 제14주간 월요일 제 딸이 방금 죽었습니다. 그러나 가셔서 손을 얹으시면 살아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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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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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중규 [mugeoul] 쪽지 캡슐

2000-12-28 ㅣ No.1271

명동성당이

민주화의 성지냐 아니면 단순히

가톨릭 성지냐를 두고 의견이 분분한 것 같습니다.

여기서 성지에 대한

제 나름의 견해를 제시해 보겠습니다.

 

다른 종교도 대개 그러하지만

특히 우리 그리스도교의 성지들은

분명히 말하지만 거의 대부분 순교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 점 우리의 명동성당은 조금 예외지만

그리스도교 역사를 보면

이스라엘에 산재해 있는 성지들 중

특히 말그대로 ’성지’인

예루살렘의 곳곳의 성지들 역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수난과 십자가상의 죽음을 당하신 장소들입니다.  

그 모든 곳에는 주님의 핏자국이 선연하기만 합니다.

그리고 로마의 콜롯세움이나

사도 바울께서 교회를 세우신 터어키의 성지들

어린 예수께서 피난가셨던 이집트 등등도

거기엔 순교의 거룩한 피냄새로 흥건합니다.

 

그것은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닙니다.

전국에 산재한 성지들은 대개 순교지입니다.

우리 부산의 장대골은 물론이고 언양 살티

해미, 절두산, 삼성산, 한티, 관덕정 등등

그들 모두가 우리의 자랑스런 순교선열들이

귀하신 목숨을 바치며 피를 흘리신 곳들입니다.

심지어 명동성당마저도

우리나라 최초의 순교자 김범우의 집이었던 명례방으로

거기서 모임을 갔던 초대교회 신자들이

결국엔 적발되어 모두 잡혀가고

끝내는 그 주인 김범우를 고문의 후유증으로 사망케 한

순교의 집터였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 줍니까.

성지란 단순히 종교적 예식만 거행한 기념비적 장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거기엔 하느님나라, 그 나라가 이 땅에 임하기를 간절히 바라며  

하나뿐인 자기 목숨을 바치시기까지 하며

’모두가 하나되기를’ 원하신 그분의 뜻을 충직하게 따르신

순교 성인들의 뜨거운 피가 생생히 살아 있는 곳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명동성당으로 올라가는 길을 덮고 있는 보도블록 하나 하나에

고색창연한 성전의 붉은 벽돌 하나하나에 배어 있는

순교 성인들의 영원히 살아 숨쉬는 그 정신을

깊이 들이마실 줄 알아야 할 것입니다.  

 

2백년 전 이 땅의 우리 순교 성인들이

자신의 목숨을 바치면서까지 지켜내려고 했던 것은

과연 무엇이었겠습니까.  

썩어가는 조선왕조의 악정과 구조적 모순 속에

도탄에 빠진 백성들의 처참한 삶

캄캄하기만 한 현실 속에서 그들은

참 사람의 길을 가르친 그리스도교에서

구원의 희망을 본 것이고

그를 발견한 그들은

거기에 죽음마저도 불사한 채 온전히 투신을 한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 명동성당이

이제껏 ’민주화의 성지’로 우뚝 서게 된 것도

바로 그런 역사적 의미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지금도 그곳에서는

’나는 참 사람의 길, 구원의 길을 찾았다’고 외치며

망나니들의 칼 아래 기꺼이 쓰러지신

순교 성인들의 힘찬 고백이 메아리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성지는 결코

기념비적인 예식 장소만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스라엘 성지를 순례하는 것은

단순히 그곳에서 기념미사를 드리러 가는 것이 아니라

그 땅에 절절히 스며 있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삶의 자취를 통해

오늘의 나 자신을 새롭게 하고 그분의 길을 따르기 위함일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역시 우리의 성지들을

2백년 전 그 때처럼 ’지금 바로 여기’서도 ’어두움에 빛’으로

우리 사회를 향해 ’참 사람의 길, 구원의 길’을 밝혀 드러내는

생생히 살아 있는 곳으로 만들어 가도록 애써 가꾸어 가야 할 것입니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오직  

순교 성인들의 거룩한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는 길이라 여겨집니다.   

그러할진대 명동성당이

민주화의 성지냐 가톨릭의 성지냐

하는 식의 이분법적 논란은 더 이상 무의미하다고 여겨집니다.

지난 89년 서울에서 개최되었던 세계성체대회 때

’전례만 거행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실제로 성찬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우리 모두는 분명히 다짐을 했습니다.   

성지를 지키는 우리의 마음이 그러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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