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25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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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딸 생일에 (2013.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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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선 [johnmaria91] 쪽지 캡슐

2016-05-17 ㅣ No.87662

둘째 지영이 생일 2013. 05


둘째 딸 지영이의 생일은 5월 15일이다.
한 해 중 가장 아름다운 계절 5월,
그것도 오월의 노른자위를 골라
세상에 나왔다.
지영이가 세상에 나왔을 때도
라일락 향기가 세상에 그둑했을 것이다.

지영이는 둘째라서 그런지
어릴 때부터 언니에 대해 샘이 많았다.
식구들끼리 하는 생일잔치 외에도,
고등학교 때에는 뉴욕 필의 연주회에
자기와 엄마, 아빠만 함께 가는 걸로
생일 선물을 대신하곤 했다.
그날 저녁만은
엄마, 아빠를 독정하겠다는 욕심이라면
욕심같은 걸
지영이는 가지고 있었다.

지난 일요일, 어머니 날에
군대에 있는 막내와,
유럽 여행 중인 큰 아들 빼고는
식구들이 다 모였기에
간단하게 케익을 자르고 생일 잔치를 했다.
나처럼 '어린왕자'를 좋아하는
지영이를 위해
아내가 멀리 프랑스에다 주문한
어린왕자 목걸이까지 선물로 받은 터라
지영이 생일은 물 건너간 줄 알았다.

그런데 월요일에 지영이에게 이메일이 왔다.
생일 초대장이었다.
식당의 위치며, 시간을 일방적으로 정해서
우리에게 참석하라는 것이었다.
말이 초대지
저녁을 사라는 일방적인 통보였다.
식당의 위치는 지영이 피앙세인 Brian의 직장 근처였다.

'Tre Stelle'

이탈리어를 모르긴 하지만
토스카의 '별은 빛나건만'이라는 아리아에
'stelle'라는 단어가 나오는 걸로 미루어
'Three Stars'
한국식으로 하자면 '삼성식당'인 셈이다.
처음엔 지영이 이름이 'Stella'여서
부러 이 식당을 고른 줄 알고
'날 닮아서 제법이네.' 라고 생각했는데
순전히 자기 약혼자의 편의 때문이란 걸 알고는

급실망, 그리고 미소한 분노.

"이것 봐라, 이젠 누구보다도
제 약혼자를 먼저 챙기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아무 말 못하고 지영이가 지시한
식당을 찾았다.
모든 부모는 자식에게
무슨 약점 같은 걸 잡힌 존재인가 보다.
(우리만 그런가?)

식사 후엔 바로 5th Avenue에 있는
'Eataly'라는 곳에서 아이스 크림을 사 먹었다.
eat과 Italy의 합성어.
Italian의 음식과 관계되는 모든 것이 거기 있었다.
밤 열 시 가까운 시간이었는데도
그 커다란 공간이 사람들로 꽉 채워져 있었다.
뉴욕시의 랜드마크라고 하는
아주 유명한 빌딩의 한 층을 전부 세내어
아주 큰 규모로 비지니스를
하고 있었다.

"저 많은 돈 벌어서 어디에 쓰나?"고
혼자말로 중얼거렸는데
아내에게사 즉각 반응이 왔다.
'걱정도 팔자'라는 것이다.

내가 걱정할 일이 아니었다.

내년 5월 31일이면
지영이는 결혼을 하고
공식적으로 우리 부부의 곁을 떠나게 된다.
아내는 아이들이 결혼 하기 전
마지막 생일에는
아이들 모두와 아이들의 남자 여자 친구들을 모아서
성대한(?) 파티를 열어준다.
아내는 음식을 만들고
나는 앞치마를 두르고
아이들에게 서브를 한다.
아빠 엄마가 해주는 마지막 생일 잔치가 된다.

결혼 후에는 자신의 생일에
엄마 아빠를 초대해서 대접을 하라고 근엄하게 이른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불쑥 들었다.
언젠가 마지막으로
우리 아이들 중 하나의 생일 잔치를 해 줄 날이 올 것이다.

지금까지 다섯 아이들 생일 잔치를
한 것들 합치면
대충 계산을 해도
백 번은 훌쩍 넘은 것 같다.

그런데 마지막 아이의 생일 잔치를 할 때도
똑같이 즐거울 수 있을까------

더 이상 생일 잔치를 해주어야 할
아이가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에
못내 가슴이 져며올 지도 모를 일이다.

음식을 나르며
음식 위에 이 아빠의 눈물 한 방울을 보탤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재빨리 눈의 눈물을 닦아야 겠지.
티를 내면 안 되니까.
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콧노래를 곁들인
명랑한 얼굴로
아이들 앞에 음식을 내려 놓을 것이다.

아이들은 알아차릴까?
아빠가 흘린

한 방울 눈물의 맛을.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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