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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사제 서품 단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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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체조경기장을 향해서 바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내 의지와는 관계 없이 누가 날 부르는 소리를 듣고
그저 내 발과 팔을 움직이고 있을 뿐이었다.
올림픽공원 지하철역 계단을 오를 때 누군가 말했다.
"수녀님도 이제 가네?"
2시 10분이 지나고 있었다.
서품식 시작은 두시 정각이었다.
식은 벌써 예정대로 시작하고 있었다.
어릴 때 나는 내가 학교에 가지 않으면
다들 수업을 시작하지 않고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었다.
그러나
차츰 커가면서
세상은 내가 생각한 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는 것을 알았다.
나 하나쯤 있으나 없으나 그건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세상이었다.
서품식장에 들어섰다.
경기장(?) 안은 열기로 가득했다.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의자에 않은 신자들은 여기저기서 서품식 팜플렛을 들고
열심히 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검은 신부복을 입고 서 있는 신부님들의 자세는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그건 너무 대조적이서서 누구나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굳이 신부복을 입지 않았다 할지라도
누가 신부이고 누가 신자인지를.
식은 3시간가량 계속되었다.
일어설 때마다 철제의자가 딱딱 소리를 내며 마주치는 소리
주교님의 경건하고 또 경건한 목소리
성가대의 노랫소리
전자올갠 반주에 맞추어 은은히 그러나
마음 깊은 속까지 파고드는 트럼펫 소리.....
어느 것 하나 가슴 속에 와 닿지 않는 것이 없었다.
사람 자세 중에서 가장 낮은 자세로
하얀 천위에 엎드린
새롭게 태어날 신부님들의 생각을
헤어려보고 싶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눈물이 났다.
그토록 사제되기를 갈망했던
내 젊은 지난 날이 부끄러웠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택하여 내세웠느니라.'
그랬다.
나는 그때 하느님이 볼 수 없는 곳에 있었다.
그래서 내세울 수 없었다.
다 지나갔다.
식이 끝나고 식장 밖으로 나왔다.
들어올 때의 열기는 그대로 식지 않고 있었다.
태양은 유난히도 뜨겁게 빛나고 있었다.
밖에선 33명의 신부님들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각 교회에서 온 신자들은 여기저기 플래카드를 내걸고
모두들 웃음으로 새 신부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신부님의 친구들인 것 같은 청년들이
드럼이며 기타를 치며 축하하고 있었다.
발길을 옮기지 못했다.
신자들 속에 서 있는 어느 새 신부님의 눈가에
이슬이 맺혀있었다.
지나가는 신부님께 물었다.
"저기 저 신부님은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 같아요."
"너무 기쁜 나머지 기쁨의 눈물을 흘릴 수도 있지요."
그랬다.
이보다 더 기쁜 일이 어디 또 있겠는가?
하느님께서 택한 이 크나큰 기쁨보다도
더 큰 기쁨이 이 세상 천지 어디에 있을 것인가?
이글거리며 타오르는 태양 아래서
가느다란 실바람에 흔들리는 플래카드 하나를 보았다.
Sia un sacerdote santo!
거룩한 사제가 되소서!
1999.7.7.수.
뜨거운 태양이 마지막 열기를 더해가는 시각에
올림픽체조경기장 앞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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