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월 28일 (금)
(백) 성 토마스 아퀴나스 사제 학자 기념일 씨를 뿌리고 자는 사이에 씨는 자라는데, 그 사람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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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지혜 -태풍颱風을 미풍微風으로-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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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준 [damiano53] 쪽지 캡슐

2021-11-25 ㅣ No.151207



2021.11.25.연중 제34주간 목요일                                           다니6,12-28 루카21,20-28 

 

삶의 지혜

-태풍颱風을 미풍微風으로- 

 

지혜로 전환된 지식이 아니라면 그 지식의 축적도 쓰레기 더미에 불과할 뿐입니다. 아무리 지식을 싸놓아도 지혜가 되지 않습니다. 참으로 깨달아 알아감이 지혜입니다. 그러니 지혜는 참 좋은 선물입니다. 옛 어머니들은 지식은 짧았지만 때로 지혜는 깊었습니다. 농업에 종사하는 농부들 세상 지식을 짧을지 몰라도 농사일을 통해 체험한 지혜는 깊었습니다. 

 

옛 구도자들 역시 삶의 지식이 아닌 삶의 지혜를 찾아 사막의 수도승을 방문했습니다. 사막 수도승들의 이야기 모음이나 불가의 선사들의 선문답의 일화를 보면 짧지만 깊은 깨달음을 주는 지혜로 가득합니다. 계속 두고 봐도 늘 새롭고 좋은 지혜의 결정체같은 일화들입니다.

 

어제 오후 잠시 초겨울 불암산에 올랐습니다. 산에 갈 것이 아니라 산이 되어야 겠다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산에 가지 않고 산이 될 수 있을런지 생각이 들었습니다만 정주의 ‘큰산’이 되고 싶은 열망은 여전했습니다. 깊은 지혜를 함축하는 상징적 침묵의 거산巨山 불암산입니다. 산을 찾는 이들을 고요하게 하고 치유하는 산입니다. 언젠가의 짧은 시도 잊지 못합니다.

 

“참 크다, 깊다, 고요하다. 저녁 불암산!”

 

더불어 생각난 공자의 '인자요산 지자요수(仁者樂山 知者樂水)’, ‘어진 이는 산을 좋아하고 지혜로운 이는 물을 좋아한다’는 말마디였습니다. 외출하는 순간 벼락치듯 깨달음도 또한 잊지 못합니다. “아, 나는 공인公人이구나!” 제 집무실도 사적 공간인 듯 하나 공적 공간이요, 혼자 있을 때도 주님과 함께 있는 것이기에 온전히 나 하나는 불가능함을 깨닫습니다.

 

공인중의 공인이 프란치스코 교황일 것입니다. 완전히 드러나 사생활이 없는 교황님입니다. 강론 역시 개인적이고 사적이기 보다는, 보편적이고 본질적이며 명쾌하고 단순하며 짧고 깊습니다. 사실 위로 올라가면서 책임이 막중한 공인일수록 삶은 투명하고 일관성이 있고 예측 가능해야 합니다. 일국의 대통령은 더욱 그러해야 할 것이며 이래서 철저한 검증을 요하는 것입니다.

 

정말 믿을만한 삶은, 비밀이 없는 투명한 삶이요 예측 가능하고 일관성이 있는 삶이겠습니다. 사실 수도원에서 오래 정주생활하다 보면 비밀이 없어져 투명해지기에 서로간 신뢰가 있고 평화롭습니다. 누가 지금 어디 있으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예측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깊이 들여다 보면 누구나 공인입니다. 하느님 앞에는 비밀이 없기 때문입니다. 성무일도 제4주간 저녁기도 시편 139장 다음 대목을 기억할 것입니다.

 

“당신의 얼을 떠나 어디로 가오리까, 

당신 얼굴 피해 갈 곳 어디오리까.

하늘로 올라가도, 거기 주님은 계시옵고, 

지옥으로 내려가도 거기 또한 계시나이다.”(시편139,7-8)

 

바로 이런 하느님 현존 의식의 자각이 늘 ‘신독(愼獨;혼자 있을 때도 도리에 어긋나지 않도록 언행을 삼감)’, 삼가고 조심함으로 공인처럼 살게 합니다. 참으로 이런 이들에게 하사下賜되는 은총의 선물이 지혜입니다. 바로 오늘 다니엘서의 주인공 다니엘입니다. 참으로 매력적인 하느님의 사람, 현자賢者인 다니엘입니다.

 

무려 네부카드네자르 임금에 이어 벨사차르 임금, 이어 오늘 다리우스 임금을 세분을 모신, 중심 자리에 있으면서 참 조용하고 평화롭게 임금들을 잘 이끌었던 겸손하고 지혜로운 다니엘입니다. 하느님과 일치되어 살기에 늘 한결같이 고요하고 지혜롭고 겸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정말 산을 좋아하는 어진이와 같고 물을 좋아하는 지혜로운 이와 같은 인자요수, 지자요수의 사람, 다니엘입니다.

 

정말 중심이 가볍고 시끄러우면 주변이 시끄럽고 혼란합니다. 바로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공동체의 중심에 자리하면 공동체가 고요하고 평화롭기 힘들 것입니다. 늘 시끄럽고 어지러울 것입니다. 미풍도 태풍으로 만들 것입니다. 참으로 어리석게도 미풍으로 끝날 일을 유혹에 빠져 미풍을 태풍으로 만드는 일은 얼마나 비일비재한지요! 건드리지 않는 것, 그냥 내버려 두는 것, 바로 미풍을 태풍으로 만들지 않는 삶의 지혜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어리석은 이들은 유혹에 빠져 미풍을 태풍으로 만들지만, 정작 지혜로운 이들은 반대로 태풍도 미풍으로 만듭니다. 다니엘이 간신奸臣들의 모함으로 태풍에 휘말리는 듯 하나 결국은 사필귀정事必歸正, 다니엘은 사자굴에서 생환生還하고 다리우스 임금은 이들 간신들을 사자굴에 넣어 처단하니 태풍은 미풍으로 변하고 맙니다. 한결같은 기도의 사람, 다니엘의 승리는 바로 하느님의 승리를 뜻합니다. 

 

실감과 감동을 선사하는 다리우스 임금과 충신忠臣 다니엘 재상과의 대화입니다. 유배중인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다니엘은 희망의 아이콘, 희망의 별, 희망의 영웅입니다.

 

-“살아 계신 하느님의 종, 다니엘아, 네가 성실히 섬기는 너의 하느님께서 너를 사자들에게서 구해 내실 수 있었느냐?”

 

“임금님. 만수무강하시기를 빕니다. 저의 하느님께서 천사를 보내시어 사자의 입을 막으셨으므로, 사자들이 저를 해치지 못하였습니다. 제가 그분 앞에서 무죄하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다리우스 임금의 신망과 신뢰와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는 다니엘인지요. 나라의 중심에 이런 다니엘 같은 국무총리가 있다면 나라 전체가 평안할 것입니다. 마침내 다리우스 왕의 칙령이 다니엘의 승리, 하느님의 승리에 대한 결정적인 증거가 됩니다. 마침내 다리우스 임금의 하느님 고백까지 이끌어 내는 위대한 다니엘입니다.

 

“내 나라의 통치가 미치는 모든 곳에서는 누구나 다니엘의 하느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해야 한다. 그분은 살아 계신 하느님, 영원히 존재하시는 분이시다. 그분의 나라는 불멸의 나라, 그분의 통치는 끝까지 이어진다. 그분은 구해 내시고 구원하시는 분, 하늘과 땅의 기적을 일으키시는 분, 다니엘을 사자들의 손에서 구해 내셨다.”

 

오늘 복음의 종말 상황도 무시무시한 폭풍 속의 재난 상황입니다. 사람들은 세상에 닥쳐오는 것들에 대한 두려움 예감으로 까무러칠 것이니 하늘의 세력들이 흔들리기 때문입니다. 마치 태풍처럼 요즘 세계를 휩쓸고 있는 코로나 사태와 기후위기 또한 이와 흡사합니다.

 

이런 상황일수록 경거망동, 부화뇌동은 금물입니다. 오직 삶의 중심에서 주님과 함께 고요히 깨어 머뭄이 태풍을 미풍으로 만드는 최고, 최선, 최상의 지혜로운 영적 대책일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마지막 구절이 결정적 답을 줍니다. 이 거룩한 미사중 주님은 우리 모두를 향해 말씀하십니다. 

 

“이런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거든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너희의 구원이 가까웠기 때문이다.”

 

언제 어디서나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 구원의 임재하심을 깨달을 때 비로소 태풍은 미풍으로 변할 것이며, 바로 이 거룩한 미사은총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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