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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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요시야의 죽음 / 남 유다의 멸망[2] / 2열왕기[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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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식 [big-llight] 쪽지 캡슐

2021-11-29 ㅣ No.151280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11. 요시야의 죽음(2열왕 23,21-30)

 

이렇게 아시리아가 무력해진 틈을 타서 요시야는 개혁을 북쪽까지 확장하여 시행하였다. 그리고는 임금이 온 백성에게 명령을 내렸다. “이 계약 책에 쓰여 있는 대로 주 여러분의 하느님을 위하여 파스카 축제를 지내십시오.”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판관들의 시대부터 시작하여 이스라엘 임금들과 유다 임금들의 시대 내내, 파스카 축제를 그렇게 지낸 적이 없었다. 요시야 임금 제십팔년에 이르러서야, 예루살렘에서 그렇게 주님을 위한 파스카 축제를 지내게 되었다.

 

아무튼 요시야는 율법서가 발견된 그 해에, 전처럼 파스카 축제를 각 성읍과 가정에서가 아니라, 예루살렘 성전에서 거행하도록 하였다. 그리하여 모든 유다인이 예루살렘으로 유일한 성소로 여겨 순례로 가는 관습을 만들었다. 요시야는 또 유다 땅과 예루살렘에서 눈에 뜨이는 대로, 점쟁이와 영매와 수호신들과 우상들과 온갖 혐오스러운 것들을 치워 버렸다. 그때까지만 해도 가정을 보호하는 수호신은 그대로 있었다. 요시야는 이러한 것들 마저 단호하게 없앴다.

 

이렇게 하여 요시야는 힐키야 사제가 주님의 집에서 발견한 책에 쓰여 있는 율법의 말씀을 거의 대부분 실현시켰다. 요시야처럼 모세의 모든 율법에 따라,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님께 돌아온 임금은, 그 앞에도 없었고 그 뒤에도 다시 나오지 않았다. 마치 다윗이 하느님 뜻에 따라 수행한 치적에 버금가는 업적이었다. 증조부의 히즈키야와도 흡사했다.

 

그러나 요시야의 할아버지 므나쎄가 주님의 분노를 몹시도 돋우었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유다를 거슬러 타오르는 커다란 분노의 열기를 결코 거두지 않으셨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이렇게 선언하셨다. "나는 이스라엘을 물리친 것처럼 유다도 내 앞에서 분명하게 물리치겠다. 내가 선택한 이 도성 예루살렘은 물론, 나의 이름이 여기에 있으리라고 말한 이 집마저 내버리겠다.“

 

이렇게 요시야는 자기 이전에 살았던 이들보다 더 열정으로 유다를 다스렸다. 그가 재위하는 동안 임금밖에 할 수 없는 일을 함으로써 임금으로서의 역할을 성실히 수행하며 하느님만을 섬겼다. 자기 조상들에 세운 모든 우상 숭배 사상을 제거하였다. 그렇지만 그의 선조가 저지른 여러 악행들에 관해서는 하느님의 분노를 끝내 용서받지를 못했다. 그는 자기 후손이 유배지로 끌려가면서 멸망당하는 것을 볼 수는 없었지만, 역사는 그의 치적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뜻대로 외세의 침략에 그저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유다에 대한 하느님 분노가 대단했다.

 

요시야의 나머지 행적과 그가 한 모든 일은 유다 임금들의 실록에 쓰여 있다. 그렇지만 공교롭게도 파스카 축제가 끝난 다음에 이집트 임금 파라오 느코가 아시리아 임금을 도우려고 유프라테스 강을 향하여 올라왔다. 느코는 기원전 609-594년에 이집트를 다스렸다. 이집트 임금인 그는 아시리아의 마지막 임금을 도우려고 왔다. 그때에 아시리아 임금은 주요 성읍 니네베와 아스르를 기원전 614년과 612년에 바빌론과 메디아 사람들에게 이미 빼앗긴 처지였다. 요시야는 이집트와 아시리아 군대가 합쳐지는 것을 막으려고, 북진하는 이집트의 군대와 맞섰다.

 

요시야 임금이 그와 맞서 싸우러 나가자, 파라오 느코는 므기또에서 요시야를 보고 그를 죽여 버렸다. 백성은 그 패배로 큰 충격을 받았다. 따라서 ,므기또라는 이름은 그들의 마음속에 참사를 의미하는 단어로 남게 되었다.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유다의 또 다른 임금 아하즈야도 므기또에서 죽었다(9,27-28). 신하들은 죽은 요시야를 병거에 실어 므기또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겨 와서, 그의 무덤에 묻었다. 그 뒤에 나라 백성이 요시야의 아들 여호아하즈를 데려다 기름을 붓고, 그의 아버지 뒤를 이어 임금으로 세웠다. 그는 살룸이라고도 불린다(1역대 3,15).

 

요시야의 넷째 아들 여호아하즈는 스물세 살에 임금이 되어, 예루살렘에서 석 달 동안 다스렸다. 때는 기원전 609년이다.[계속]

 

[참조] : 이어서 ‘12. 여호아하즈와 여호야킴이 소개될 예정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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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야,힐키야,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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