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 (금)
(백) 부활 제3주간 금요일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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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주 하느님도 창조된 인간도 함께 罪人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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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희 [edohyy] 쪽지 캡슐

2022-05-18 ㅣ No.225120

  

+찬미예수,


<창조주 하느님도 창조된 인간도 함께 罪人입니다>

<罪人 正義를 감히 비약 해석해봄>


인간만이 죄인(罪人)이 아니라, 

오히려 이렇게 인종색깔에 얽혀,  

아프리카 식민지화에 이어진 흑인人種 의 人間매매에 따른 노예제도와, 

西區유럽인들인 美國개척사에서 인디안들을 말살시킨 

인종차벌의 불공평/불평등/약육강식(弱肉强食)의 모순된 不良品의 인간(영혼과 육체)을 

창조하신 하느님이 더 罪人 입니다. 


이럴줄 모르고 이러한 불량품(不良品)의 인간을 창조했었단 말인가요. 

모순투성이의 뭉침의 덩어리가 영원히 영혼을 통제관리하며 

공존하고 있는 이세상 삶인 셈입니다. 

아무래도 원죄를 벗어날수 없는 構造/構成의 영원한 모순의 삶입니다. 


이세상 삶은 사랑복음 무기화로 복종밖에 없도록 하느님이 

인간과 함께 창조해 놓은 것입니다. 

인간은  하느님으로 부터 창조된 영원히 모순된 창조물(영혼과 육체)입니다.


빌게이츠는-”Life is not fair, get used to it.“

(인생은 공평하지 않으니, 그것에 익숙해져야 한다.)고했습니다. 


20세기 아프리가의 聖人 알버트 슈바이츠박사의 말씀도 想起해봅시다;

"현실에 대한 내認識은 虛無/厭世主義者이나,

意志와 希望은 樂天主義者이다."


또 한가지 "사랑과 평화"의 상징물에 의문점,

사랑과 평화의 상징이신  예수님이, 

왜 잔인한 죽음의 모습의 십자가가 되어야 합니까. 

오히려 아기 예수님을 앉고계신 성모마리아님 상(像)이, 

더 예수님의 사랑과 평화가 느껴지지 않으세요. 

언젠가 예수님의 죽음의 십자가 상징물을 바꾸어야 하지 않을까요.



~舊約聖書 허무주의자 다윗의 아들 코헬렛의 고백을 회상해 보면서;


"정녕 智慧로운 이가 어리석은 보다 더 나은 것이 무엇이랴

太陽아래에서 벌어지는 일이 좋지않기 때문이며

이 모든 것이 허무(虛無)요 바람잡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삶을 싫어하게 되었다太陽아래 있던 것은 다시 있을것이고

이루어진 것은 다시 이루어질 것이니새로운 것이란 없다. 

강물이 모두 바다로 흘러드는데바다는 가득 차지 않는다

지혜(智慧) 많으면 걱정도 많고 知識이 많으면 근심도 많다

太陽아래 인간이 할수 있는 것도 없다

결국 모든 것은 하느님이 결정하시고 만다."


글옮긴이 本人도 人生삶에 虛無主義者(Nihilist)에 속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글쓴이~허무주의자.

李도희(아오스딩) 拜.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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