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5일 (토)
(녹) 연중 제26주간 토요일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여라.

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우리들의 묵상 ㅣ 신앙체험 ㅣ 묵주기도 통합게시판 입니다.

철부지?_ ‘지각없이 내 뜻을 가리는 이자는 누구냐?’

스크랩 인쇄

최원석 [wsjesus] 쪽지 캡슐

06:25 ㅣ No.176555

요즘에 하늘로 올라가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몇칠전에는 아버지와 가까이 하신 어르신이 돌아가셔서 가보았습니다. 그런데 어제 또 다른 어른이 돌아가셨습니다. 성령 봉사하신 신부님의 어머님이 돌아가셨습니다. 신부님도 조금은 알고 있습니다. 고 박종인 라이문도 신부님의 대자이시지요. 그리고 그 신부님 동생 신부님을 잘 알고 있어요. 같은 성당에서 같이 레지오 활동 하였습니다. 형님이라고 부르면서 따랐고 형님의 형님 신부님 뵙기 위해서 명동 성당 가실때 종종 길거리에서 자주 뵐 수 있었습니다. 그 형님의 어머님(이재춘(헬레나))이 어제 임종하셨다고 합니다. 기도 중에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잘 아는 형님이십니다. 신부님 되신 이후로는 어디서 무엇하시는지 연락 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님의 임종으로 제가 잘 아는 형님 신부님이 지금 잘 계신 것 같아 다행이네요. 내일 한번 장례식장에 가보려 합니다. 사람의 삶에 변화라는 것은 우리 인간이 알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언제 어떻게 변하는지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그것이 신비 같아요. 욥이 그렇습니다. 욥이 악마와 하느님과의 대화 속에서 악마의 술수로 인해서 하루 아침에 그는 모든 것을 잃고 그리고 주변 사람들로 부터 버림을 받고 그 친구들에게 아주 많은 비난을 듣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며 하루 하루를 울면서 하루 하루를 보냅니다. 그러면서 하느님을 향해 왜 나를 이렇게 놓아 두십니까 하면서 몇날 몇칠을 하늘을 향해 울어 대는 욥입니다. 하느님 만나기를 간절히 요청합니다. 그런데 하느님이 그 간절한 욥의 요청에 답을 주시는데 그런데 욥이 이해를 못하는 뜻으로 말씀하십니다. 하늘의 별수가 ..하느님의 업적을 이야기 하시는데 도무지 인간이 이해가 안되는 말씀입니다. 초월성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인간이 하늘을 자신의 머리 안에서 이해 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단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희망을 하늘에 두고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죽을 때까지 주님의 뜻을 찾고 그곳을 향해 걸어가는 길입니다. 성모님의 삶도 인간의 언어로 인간의 행복 관점에서는 거리가 먼 삶이었습니다. 하느님 관점에서 바라보고 늘 묵묵히 걸어가신 분이 성모님이고 그분의 생의 마지막도 그와 같은 길을 걸어가는 과정 중에서 임종을 맞이하신 분이 성모님입니다. 욥은 자신의 불행 속에서 하느님과 대화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와 대화를 하시는데 도무지 이해? 내가 하느님의 그 깊이와 넓이를 알지 못하는데 ... 단지 우리는 하느님께 마음을 열고 그분의 자비심만을 청할 뿐입니다. 희망을 잃지 않고 끝까지 걸어가는 것입니다. 특히나 성화로 가는 여정은 우리가 이해 하지 못하는 것들이 나의 앞길을 가로 막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악마의 표적이 성화로 가는 사람들입니다. 얼마나 밉겠어요. 그러나 그 넘어에 사랑 자체이신 주님이 우리를 보고 계십니다. 측은지심의 눈으로 우리를 보고 계시다는 사실은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느님의 눈에는 우리 모두는 사랑 받을 자격이 있는 존재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자체가 예수님의 강생입니다. 사랑하시니 강생하시고 십자가 죽음과 부활 승천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이지요. 하느님이 인간에게 자신을 드러내 보이셨지만 그분이 드러내 보이시는 사람은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 라고 하셨고 그 하느님의 실체가 예수님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하느님을 아는 것이고 하느님의 구원 안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주님이 당신 스스로 내려 오셔서 직접 내가 하느님이라고 보여주시고 우리와 같이 살고 계십니다. 그러나 우리 눈으로 본 주님도 우리는 잘 알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육의 눈으로 바라보고 나 중심으로 주님이 나를 만족시켜 주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주님이 하느님의 일을 하시는데 당신도 십자가 죽음을 선택하시고 돌아가셨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느님을 만나 보고 그분과 같이 행복하려면 나를 버리고 나의 십자가를 질머지고 걸어가야 주님을 마주 볼 수 있습니다. 그 십자가가 세상 사람들에게는 철부지로 보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진리이고 구원입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8 0

추천 반대(0) 신고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