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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악인의 수호성인 천상의 백합 / 성녀 체칠리아 동정 순교자 기념일[1122](마태 25,1-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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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음악인의 수호성인 천상의 백합 / 성녀 체칠리아 동정 순교자 기념일[1122](마태 25,1-13) 오늘은 성녀 체칠리아 동정 순교자 기념일이다. 성녀는 로마의 귀족 가문 출신으로 독실한 신앙인으로 자랐다. 그녀의 생존 연대는 정확하지 않으나 260년 무렵 순교한 것으로 전해지며, 박해 시대 내내 성녀에 대한 공경이 널리 전파되었다고 한다. ‘체칠리아’라는 말은 ‘천상의 백합’이라는 뜻으로, 배교의 강요를 물리치고 동정으로 순교한 성녀의 삶을 그대로 보여 준다. 흔히 비올라나 풍금을 연주하는 모습이 그려진 성녀는, 음악인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는다. 체칠리아 성녀는 어릴 때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해 평생 동정을 지킬 것을 서약했다. 그러나 아버지에 의해 이교도인 귀족 발레리아노와 강제 결혼했다. 그녀는 결혼식이 끝난 뒤 남편에게 자신은 동정 서약을 했으며 천사의 특별 보호를 받는다고 말했다. 남편은 그 천사를 보여주길 원했다. 그래서 성녀는 그를 우르바누스 1세 교황에게 보내 세례 받도록 했다. 그 후 그는 백합 관 쓴 두 천사가 아내와 이야기하는 것을 보았고, 결국 그녀의 동정서약에 동의했다. 그 후에 성녀는 막대한 재산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주었고 자기 집까지 교회에 봉헌했다. 훗날 체칠리아 성녀는 체포되어 배교를 강요당했지만, 그녀의 신앙을 꺾을 수 없었기에 사형에 처해졌다. 방법은 당시 사형수들에게 보편화된 욕실에 가두어 쪄 죽이는 가혹한 형벌이었다. 그러나 욕실에 가둔 지 하루가 지나도 죽지 않자, 집행관은 그녀의 목을 베기로 다시 방법을 바꾸었다. 그렇지만 성녀는 목이 베이고 나서도, 3일 동안이나 숨이 붙어 있다가 순교를 했다. 음악과 음악인들의 수호성인인 체칠리아 동정 순교자는 교회 미술에서 오르간을 연주하는 모습으로 종종 표현되곤 한다. 그 이유는 원치 않았던 결혼식 때 축가가 연주되는 동안 하느님을 향한 마음으로 노래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성녀는 1584년 로마에 음악원이 세워졌을 때 그곳 수호자로 지칭되어, 이 후 성녀를 교회 음악의 수호자로 공경하는 것이 보편화되었다. 예수님의 ‘열 처녀의 비유’는 종말 심판을 분명하게 일깨우고 있다. “하늘 나라는 저마다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에 비길 수 있다. 다섯은 어리석고 다섯은 슬기로웠다. 어리석은 처녀들은 등은 가졌지만 기름은 가지지 않았다.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은 등과 함께 기름도 별도로 가지고 있었다.” 사실 천상의 백합 체칠리아 성녀는 등은 물론 기름까지 가진 슬기로운 다섯 처녀마냥, 이미 어릴 때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해 평생 동정 지킬 것을 서약했다. 그리고 성녀는 하느님 그분만이 아는 그 날과 그 시간까지 깨어 있으면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드러냈다. 그러한 준비된 삶을 살면서 슬기로운 처녀들처럼 신랑과 함께 혼인잔치에 들어갔다. 이처럼 최후의 심판이 일어날 예수님 재림의 때는 오직 하느님 그분 말고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기에 우리는 천상의 백합 성녀 체칠리아 동정 순교자마냥 그때 그 시각을 위한 삶을 살아야만 한다. 그 삶은 겸손이요 남을 위한 배려이어야만 할 게다. 기도와 자선, 허풍과 드러냄이 아닌 조용히. 동정 순교자 체칠리아는 그러한 삶을 일찍부터 택한 것 같다. 그래서 성녀는 하느님을 열렬히 사랑해 어릴 적부터 동정을 서원하였고, 오로지 하느님을 증언하는 삶을 통하여 그의 신앙을 밖으로 퍼져나가게 했다. 이렇게 성녀는 입으로 신앙을 전파한 것이 아니라 그녀의 선한 행위와 신앙의 삶으로 주위를 감화시켰다. 진정한 선교는 말보다는 삶으로 증언하는 선포가 더 힘 있는 선교다. 우리도 삶으로 이웃을 향해 주님을 세상을 드러내야 할게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