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5일 (월)
(녹) 연중 제34주간 월요일 예수님께서는 빈곤한 과부가 렙톤 두 닢을 넣는 것을 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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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묵상 : 대자를 위해 연미사를 드리는 대부를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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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만연 [fisherpeter] 쪽지 캡슐

2024-11-21 ㅣ No.177811

 

오늘 저녁미사는 제가 어쩌면 영세를 받을 뻔했던 본당엘 갔습니다. 그 성당 근처에 약속이 있어서 그랬습니다. 마침 그 성당에서 제가 영세를 받았더라면 아마 제 대부님이 되셨을 형제님이 오늘 미사에서 뵈었습니다. 미사 시작 때보니 그분이 대자를 위해 그것도 아마 두 분인지 세 분인지는 모르지만 아마 두 분은 확실한 것 같기도 했습니다. 지금까지 미사 지향을 성당을 다니면서 들어봐도 이와 같은 건 처음이었습니다. 물론 삶과 죽음이라는 게 온 순서대로 가는 게 아니라서 말입니다. 저는 미사를 마치고 잠시 인사만 건네고 약속 때문에 나왔습니다. 나중에 내일이나 한번 문자로 인사를 다시 한번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약속된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오늘 그분이 드린 미사를 생각해봤습니다. 영적으로 맺어진 자식입니다. 아들입니다. 뭔가 모르지만 애틋합니다. 육적인 혈연으로는 남이지만 영으로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관계는 비록 아들이 먼저 하느님 나라에 갔지만 그 아들의 영혼을 위해서 미사를 드리는 아비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경건해지는 것이었습니다. 숙연해지는 것입니다. 오늘 목요일 복음을 묵상하며 올린 글에서도 제가 언급한 내용과 일맥상통합니다. 우리와 예수님도 이미 하느님의 신성과 인간이라는 피조물과의 관계를 부자 관계 아니면 부녀관계로 설정이 된 것입니다. 이게 이론적으로는 가능하지 않은 것 아니겠습니까? 이게 가능하려면 아까도 언급했긴 했지만 한 가지 더 중요한 관점이 있습니다. 그걸 하나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우리가 여기서 영육을 말할 때 육의 개념이 잘 와 닿지 않을 수 있습니다. 어떤 영어 성경에서 저도 로마서 8장을 보면서 이 성경에서는 육의 개념을 다른 개념으로 표현을 한 걸 봤습니다. 바로 인간 본성이라는 말을 육으로 대체를 해서 이해를 하면 조금도 어색하지 않을 겁니다. 앞으로 만약 성경에서 육이라는 단어를 만나면 인간본성 이 말로 대체를 해서 이해를 하면 이해가 좀 더 쉽게 될 수도 있을 겁니다. 이 형제님이 대자의 영혼을 위해서 미사를 봉헌하는 것도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단지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있는 것도 인간의 본성을 넘어설 때 가능한 일이 될 것입니다. 그래야 그 아들이 비록 영으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성립된 것이라도 진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로 하나의 천륜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는 신앙 밖에서도 이런 걸 봤습니다. 배 아파 낳은 아들이 아닌데도 배 아파 낳은 아들보다도 더 아들 같은 아들이 있다는 걸 실제로 본 적이 있습니다. 그 아들은 그 엄마를 위해 자기 간을 이식해 주는 걸 봤습니다. 이런 걸 보면 우리는 육적인 혈연관계보다도 영적인 혈연관계가 더 위대하고 숭고한 면이 있다는 걸 다시 한 번 더 느끼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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