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우리들의 묵상 ㅣ 신앙체험 ㅣ 묵주기도 통합게시판 입니다.
[사순 제1주일 다해] |
---|
[사순 제1주일 다해] 루카 4,1-13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우리의 신앙생활을 어렵게 만드는 가장 큰 방해요소는 ‘유혹’입니다. 물론 유혹이 그 자체로는 나쁜 게 아니며 때로는 우리 삶에 꼭 필요하다는 것을, 우리가 그것에 걸려 넘어지면 ‘죄’가 되지만 그것을 잘 극복하면 우리를 영적으로 한 단계 성장시켜주는 ‘디딤돌’이자 ‘사다리’가 된다는 것을 머리로는 잘 알고 있지요. 그러나 실제로 그러기란 참으로 어렵다는 것 또한 오랜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자주 걸려 넘어지는 첫번째 유혹은 ‘그냥 다음에 해’입니다. 주님의 뜻을 따를 때에는 지금이 아니면 안된다는 ‘배수의 진’을 치고 즉시 해야 하는데 안일함과 나태함에 빠져 다음으로 미루다보니 나중에 후회할 일들이 자꾸만 늘어나는 겁니다. 우리가 자주 걸려 넘어지는 두번째 유혹은 ‘남들도 다 그러는데 뭐 어때’입니다. 내 실수와 잘못은 전적으로 내 불찰로 일어난 나의 책임인데, 그 점을 뼈저리게 뉘우치고 반성해야 다음에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을텐데, 남들도 다 그런다며 그 책임을 다른 이에게 떠넘기는 모습입니다. 그 사람이 죽으면 나도 따라 죽을 것도 아니면서 말이지요. 우리가 자주 걸려 넘어지는 세번째 유혹은 ‘어차피 난 안돼’입니다. 우리는 각자 저지른 잘못이 너무 크고 심각해서 구원받지 못하는 게 아닙니다. ‘나는 안돼’라는 나약한 마음으로 먼저 포기해버리기에, 하느님의 자비와 은총이 내 안에 스며들게 만들려고 노력하지 않기에 구원받을 기회를 놓치는 것이지요. 하느님은 우리가 당신께 돌아가기만 하면 언제든 우리 잘못을 용서하시고 당신께 사랑받는 자녀의 지위를 회복시켜 주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도 우리처럼 악마에게 유혹을 받으십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세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께서 유혹을 받으시는 장소는 ‘광야’라는 사실입니다. 광야는 예수님께서 아버지께 기도하시기 위해 종종 찾으시는 ‘외딴 곳’, 즉 그분의 마음과 영혼이 하느님과 가장 가까워지는 장소이지요. 그런 곳에서 악마의 유혹이 더 강해지고 집요해진다는 점에서 우리 신앙생활의 특징이 잘 드러납니다. 즉 우리가 악마의 유혹 때문에 마음이 어지럽고 분심이 든다면 그건 우리가 그만큼 하느님 가까이 나아갔다는 증거라는 것이지요. 둘째, 예수님을 광야로 이끌어 악마에게 유혹을 당하도록 만드신 분이 ‘성령’이라는 사실입니다. 바로 이 점이 우리를 너무나 혼란스럽게 만듭니다. 하느님은 성령의 인도를 통해 우리를 당신 뜻에 맞는 올바른 방향으로 이끄신다고 배웠는데, 그 성령이 오히려 우리를 죄 짓게 만드시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우리를 유혹으로 이끄시는 이유는 우리가 그것을 잘 극복하고 성장함으로써 구원받기에 합당한 존재로 변화시키기 위함이지요. 해풍이 강하게 부는 곳에서 자란 나무가 땅 속으로 넓고 깊게 뿌리를 뻗어 더 크고 튼튼한 나무로 자라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셋째, 예수님께서 ‘사십 일’이라는 긴 시간 동안 악마에게 유혹을 받으셨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에서 ‘사십’이라는 숫자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노아가 방주에 들어간 뒤 온 세상이 물에 잠긴 시간이 사십 일이었고, 모세가 하느님과 계약을 맺으려고 산에서 머무른 시간도 사십 일이었지요. 이렇듯 ‘사십’이라는 숫자는 정화, 기다림과 준비를 상징합니다. ‘사십 일’ 동안 하느님의 뜻을 충실히 따른 이들은 구원을 보고 기뻐할 것이고, 그러지 못한 이들은 심판과 징벌을 두려워하게 될 겁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겪으신 세 가지 유혹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봅니다. 첫째 유혹은 먹고 사는 문제에 관련됩니다. 우리가 직장생활을 하면서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라는 것이지요. 그만큼 우리가 살기 위해서는 먹고 마시는 문제가 중요합니다. 그러나 먹고 마시는 그 행위 자체에 집착하여 내가 사는 이유와 의미에 대해 그리고 목적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면 하루 하루를 그저 ‘생존’할 뿐인 짐승이나 벌레들과 다를 게 없지요. 그래서 예수님은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는다”고, 나를 창조하시어 세상에 보내신 하느님의 뜻과 말씀을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고 하십니다. 둘째 유혹은 세속적인 부와 권력에 관련됩니다. ‘부귀영화’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간절히 바라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것을 얻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면, 우리를 잘못된 길로 인도하는 사탄의 사탕발림에 홀랑 넘어간다면, 하느님으로부터 점점 멀어지다가 결국 그분과의 관계가 단절되고 맙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세상이 주는 작은 이익을 탐하다가 전부를 잃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나의 주님이신 하느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기라’고 하십니다. 셋째 유혹은 나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을 눈에 보이는 증거로 확인하고 싶은 유혹입니다. 신앙생활을 나름 열심히 하는데도 고통과 시련이 닥치면 그분이 정말 나를 사랑하시는 게 맞는지 의구심이 들고, 그분의 사랑을 시험해보고 싶어지지요. 그러나 참된 사랑은 객관적 증거로 확인할 수 있는 게 아닐 뿐더러, 확인이 된다고 해도 마음 속 의구심은 사라지지 않고 계속해서 더 분명하고 확실한 증거를 요구하게 됩니다. 그러니 예수님은 하느님의 사랑을 시험할 생각말고 먼저 믿고 느끼라고 말씀하십니다.
악마는 우리로 하여금 하느님 뜻을 거스르게 만들려는 유혹을 대충 몇 번 해보고 안되면 쉽게 포기하지 않습니다. 이번에 안되면 다음 기회, 그래도 안되면 또 다음 기회를 노리며 호시탐탐 우리 믿음이 약해지기만을 기다리지요. 그러다 틈이 보이면 우리 마음의 약한 부분을 파고듭니다. 예수님을 유혹할 때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이라는 조건을 앞세워 교묘하게 그분 마음을 흔들려고 했던 것처럼, 오늘 우리에게도 “니가 정말 하느님께 사랑받는 자녀라면” 이런 조건을 들먹이며 우리 마음 속에 하느님과 그분 사랑에 대한 의심과 불신을 심으려고 드는 겁니다. 고통과 시련에 지쳐 우리 마음과 정신이 약해져 있을수록 그 유혹은 우리 마음을 더 세차게 쥐고 흔들지요. 내가 열심히 신앙생활 하는데 이런 고통과 시련을 겪는게 억울하고, 내가 남들보다 더 많이 희생하고 봉사하는데 이런 오해와 미움을 받는게 분합니다. 그런 생각을 계속하다보면 미움과 원망의 화살이 나를 이런 상태로 내버려두시는 하느님을 향하게 되고 내 마음과 영혼의 병세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지요. 대체 어떻게 해야 그런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그 답은 성경에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악마가 당신을 유혹할 때 그것을 물리칠 힘과 지혜를 성경 안에 담긴 하느님 말씀에서 찾으신 겁니다. 그러니 세상의 유혹에 휘둘리지 않고 내적인 평화를 누리고 싶다면 성경을 열심히 읽고 묵상해야 합니다. 날마다 하느님 말씀에 비추어 내 삶을 돌아보며, 잘못된 점은 바로잡고 부족한 부분은 채우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그 말씀을 통해 나에게 전하고자 하시는 뜻이 무엇인지를 적극적으로 헤아려야 합니다. 그러면 내 마음과 영혼이 믿음이라는 단단한 반석 위에 굳건하게 세워집니다. 그런 상태에서는 유혹의 바람이 아무리 세차게 불어닥쳐도 신앙의 집이 절대 흔들리거나 무너지지 않습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