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다해 사순 제4주간 화요일 <순종을 위해 가슴을 찢은 만큼 은총이 스며든다> 복음: 요한 5,1-16 
십자가를 지고 가는 예수
엘 그레코 작, (1600-1605),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
저는 항상 교회에 반항하며 살았습니다. 처음에 사제가 되고자 하는 부르심을 어렸을 때부터 받기는 하였습니다. 25살까지 저항하였습니다. 계속 저항했다면 사제가 되는 축복은 받을 수 없었습니다. 신학생 때는 유학 가라는 명을 받았습니다. 저는 거부의 의사를 밝혔습니다. 어쩔 수 없이 승낙하기는 하였으나 교수와의 갈등으로 논문도 힘겹게 마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순종이 없었다면 성서 석사학위를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사제가 되어서 다시 유학 가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싫다고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주교님이 한 달 기도해보라고 하셔서,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역시 교수님들에게 순종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가장 힘든 일입니다. 순종이란 것이. 덕분에 교의 신학 석,박사를 받게 되었습니다. 은총의 크기가 커질수록 순종의 무게도 커졌습니다.
본당 생활을 조금 하다가 보니 교구청으로 불러들이셨습니다. 저는 못 참고 2년 반 만에 주교님께 내보내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중도에 교구 영성관으로 가서 6년 동안 있게 되었습니다. 저의 역사만 이렇겠습니까? 신앙은 단 한 가지, 순종을 배우는 과정일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38년이나 병이 고쳐지기를 바라며 매일같이 벳자타 연못에 나와 있는 한 병자를 고쳐주십니다. 예수님께서 그 병자에게 다가가 먼저 “건강해지고 싶으냐?” 하고 물으십니다. 그는 당연한 것을 물어보는 예수님이 이해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 물이 출렁거릴 때에 저를 못 속에 넣어 줄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가는 동안에 다른 이가 저보다 먼저 내려갑니다.”라고 말하며 자신을 도와줄 사람이 없음을 한탄합니다. 예수님은 아랑곳하지 않고 당신이 하려고 하시는 일을 하십니다. “일어나 네 들것을 들고 걸어가거라.”
예수님은 많은 병자가 있는데, 이 병자의 무엇을 보고 고쳐주셨을까요? 우선은 이 병자가 은총을 바라고 있음을 아셨습니다. 매일 38년을 같은 병원에 다니며 병을 고치려고 한다고 가정해봅시다. 그 사람은 그 병을 반드시 그 병원에서 고침을 받을 수 있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희망의 크기는 믿음의 크기와 같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뭔가 부족해 보입니다. 다른 많은 병자들도 그런 희망과 믿음을 가지고 벳자타 연못에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 병자가 38년 동안이나 희망하도록 내버려 두신 이유가 있습니다. 무엇을 배우게 하려고? 바로 ‘순종’입니다.
영화 『가라테 키드』에서 스승 미야기는 제자인 다니엘에게 이해되지 않는 반복적인 작업(자동차 닦기, 바닥 닦기, 페인트칠 등)을 지시합니다. 다니엘은 순종이 아니라 고통스러운 노동이라고 생각하며 항의합니다. 하지만 나중에 진짜 대련 상황에서, 그 모든 반복적인 동작들이 몸에 익어 방어 기술로 쓰이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다니엘은 비로소 스승에게 순종한 시간이 헛되지 않았음을 깨닫고, 결과적으로 큰 은혜와 승리를 얻게 됩니다.
이런 일이 신앙에서도 일어납니다. 성녀 파우스티나는 예수님으로부터 환시와 계시를 받았지만, 고해신부가 그것이 진정한 계시인지 시험하기 위해 그녀에게 모든 환시를 기록하지 말라고 명령했습니다. 내적 고통으로 가슴이 찢어질 듯 힘들었지만, 파우스티나는 고해신부를 통한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며 모든 환시를 멈추고 기다렸습니다. 결국 고해신부는 그녀의 순종을 보고 그녀가 받은 계시를 기록하도록 허락했고, 그 기록들은 훗날 세상에 『하느님의 자비의 일기』로 전파되어 전 세계 수많은 이들이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와 은총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오상의 성 비오 신부(Padre Pio da Pietrelcina)는 교회로부터 1931년부터 1933년까지 약 2년여 동안 공식적으로 신자들 앞에서 미사를 집전하거나 고해성사를 주는 것이 금지되었습니다. 이 기간 동안 교회 당국은 비오 신부의 성흔(오상)의 진위에 대한 의혹과 그의 인기에 따른 혼란을 염려하여 이러한 금지령을 내렸습니다. 비오 신부는 이 금지령 앞에서 매우 힘든 시간을 겪었지만, 교회의 결정에 대해 철저히 순종하며 겸손하게 인내했습니다. 마침내 1933년 교회는 금지령을 철회했고, 성 비오 신부는 다시 공식적으로 신자들 앞에서 미사를 집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후 그의 성덕과 겸손한 순종의 모범은 더욱 널리 알려졌고, 많은 신자들에게 큰 은총을 끼쳤습니다.
은총은 선물입니다. 선물을 주는 사람은 그 받는 사람에게 무언가 기대하게 되어 있습니다. 엄마가 아기에게 거저 주는 젖 안에도 실제로는 아이가 건강하게 잘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이 숨어있습니다. 이 기대를 저버릴수록 젖을 주고 싶은 마음도 감소하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오늘 병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일어나 네 들것을 들고 걸어가거라.” 오늘이 안식일임에도 불구하고 그 병자가 아무 생각 없이 일어나서 자기 들것을 들고 걸어갈 수 있도록 자기를 낮출 수 있도록 38년을 기다리신 것입니다. 38년은 그 병자가 순종을 배우는 시간이었습니다. 이것에 유다인들은 “오늘은 안식일이오. 들것을 들고 다니는 것은 합당하지 않소.”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그는 은총을 주는 이에게는 반드시 순종의 그릇으로 다가가야 함을 “나를 건강하게 해 주신 그분께서 나에게, ‘네 들것을 들고 걸어가라.’ 하셨습니다.”라고 말하며 증거합니다.
우리는 가정에도 속해있을 수 있고, 회사에도 속해있을 수 있고, 나라나 교회 안에 속해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각자의 공동체가 자신에게 줄 수 있는 은총이 다릅니다. 가끔은 능력 있는 사람에게 은총이 주어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순종이 없고 능력만 있는 사람은 그 조직에 위해가 될 수 있기에 은총을 주는 이는 공동체의 유지를 위해 언제나 순종의 능력을 첫째로 꼽을 수밖에 없습니다. 순종하지 않는 아이에게 그 아이가 달라는 것을 다 사준다면 부모의 권위가 실추되고 가정은 콩가루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심부름이라도 시키고 용돈을 주는 것입니다.
은총을 받기 위해 먼저 그릇을 준비합시다. 그 그릇은 순종입니다. 성모님께서 은총을 받으시기 위해 어떤 순종의 그릇을 준비하셨습니까? 주님의 모든 뜻에 순종하겠다는 존재가 되셨습니다. 우리는 이 은총의 그릇을 준비하는 기도를 매 삼종기도 때 되풀이합니다. 그냥 바치지 말고 은총의 그릇이 된다고 여기며 삼종기도를 바치면 많은 은총을 이 세상에서부터 받는 은총의 신앙생활을 하게 될 것입니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