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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진 신부님_<“지금이 바로 그때다.” 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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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내 아버지께서 여태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하는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이 때문에 유다인들은 더욱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였다. 그분께서 안식일을 어기실 뿐만 아니라, 하느님을 당신 아버지라고 하시면서 당신 자신을 하느님과 대등하게 만드셨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을 보지 않고서 아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분께서 하시는 것을 아들도 그대로 할 따름이다. 아버지께서는 아들을 사랑하시어 당신께서 하시는 모든 것을 아들에게 보여 주신다. 그리고 앞으로 그보다 더 큰 일들을 아들에게 보여 주시어, 너희를 놀라게 하실 것이다. 아버지께서 죽은 이들을 일으켜 다시 살리시는 것처럼,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이들을 다시 살린다. 아버지께서는 아무도 심판하지 않으시고, 심판하는 일을 모두 아들에게 넘기셨다. 모든 사람이 아버지를 공경하듯이 아들도 공경하게 하시려는 것이다. 아들을 공경하지 않는 자는 아들을 보내신 아버지도 공경하지 않는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이는 영생을 얻고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는 이미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갔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죽은 이들이 하느님 아들의 목소리를 듣고 또 그렇게 들은 이들이 살아날 때가 온다. 지금이 바로 그때다.’(요한 5,17-25)”
1) “내 아버지께서 여태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하는 것이다.” 라는 말씀은, 하느님께서 단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일하시기 때문에 예수님도 쉬실 수가 없다는 뜻입니다. 즉 ‘안식일에도’ 쉬실 수 없고,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베풀어주는 일을 계속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단 한 순간도 쉬시지 않고 일하신다는 것과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는 단 한 순간도 중단되지 않는다는 것은 원래 유대교의 기본 사상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도 예수님의 이 말씀에 대해서는 반박하지 않았지만, ‘내 아버지’ 라는 표현과 ‘나도’ 라는 표현을 문제 삼았습니다. 특히 ‘나도’ 라는 표현은 당신 자신과 하느님이 대등하다는 선언인데, 예수님을 하느님으로 믿는 그리스도교 신앙인들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선언이지만, 예수님을 믿지 않는 유대인들 입장에서는 하느님을 모독하는 말이었습니다. 하느님을 모독하는 죄는 사형죄입니다.
2) 창세기를 보면, “그분께서는 하시던 일을 모두 마치시고 이렛날에 쉬셨다(창세 2,2).”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하느님께서는 십계명을 내려 주실 때, 안식일에는 어떤 일도 해서는 안 된다고 명령하셨습니다(탈출 20,10). 그래서 하느님께서 단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일하신다는 믿음과 안식일 율법은 모순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하느님께서 하시던 일을 모두 마치시고 이렛날에 쉬셨다는 말은, ‘창조 사업’을 마치시고 쉬셨다는 뜻으로 해석하고, 또 안식일에는 어떤 일도 해서는 안 된다는 명령은 사람들에게 하신 명령일 뿐이지 하느님의 구원과 사랑에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해석합니다. 따라서 모순되지 않는다는 것이 구약시대 때부터의 사상이었습니다. 지금 유대인들이 문제 삼고 있는 것은 ‘사람일 뿐인 자’가 자기 마음대로 안식일을 안 지키고 있다는 점과 하느님과 자신을 대등하게 만들었다는 점입니다. 공관복음에 있는,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 라는 말씀은(마르 2,28), 유대인들의 그런 생각을 정면으로 반박하신 말씀입니다.
3) 19절의 “그분께서 하시는 것을 아들도 그대로 할 따름이다.” 라는 말씀은, 당신의 일은 곧 하느님의 일이라는 선언입니다. 20절의 ‘그보다 더 큰 일들’은, 병자들을 고쳐 주는 일보다 더 큰 일들인데, 그 일들은 사람들을 심판하는 일과 죽은 사람들을 다시 살리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최후의 만찬 때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라고 말씀하셨고(요한 14,6), 승천하시기 전에는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태 28,18). 예수님은 모든 사람에 대한 ‘생살여탈권’을 가지고 계신 분, 즉 사람을 구원하거나(살리거나) 구원하지 않을(살리지 않을) 권한을 가지고 계신 분입니다. 그러니 구원과 생명을 얻기를 바란다면 예수님을 믿어야 하고, 예수님의 가르침들을 실천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4) 25절의 “지금이 바로 그때다.” 라는 말씀은,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가르침들을 실천하는 일은 바로 지금 해야 하는 일이라는 뜻이기도 하고, 종말의 심판이 이미 시작되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신앙생활은(믿음과 회개는) 나중에 해도 되는 일이 아닙니다. ‘나중’이란 없습니다. 언제나 항상 지금 해야 하는 일입니다. 지금 하지 않고 미루기만 하면, 심판 때에 후회만 하게 될 것입니다. 24절의 “그는 이미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갔다.” 라는 말씀은, “신앙생활은 영원한 생명을 향해 나아가는 생활이면서, 동시에 이미 시작된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생활”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말씀입니다. 하느님 나라의 ‘영원’이라는 시간은, 지금과 상관없는 먼 훗날의 ‘다른 시간’이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서 시작되는 시간이고, 지금과 연결되어 있는 시간입니다. 신앙인은 이미 시작된 ‘영원’ 안에서 살고 있는 사람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 [출처] 사순 제4주간 수요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