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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4주간 수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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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4주간 수요일] 요한 5,17-30 “내가 내 뜻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오늘 복음은 어제 복음과 내용적으로 이어지는 부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임에도 불구하고 38년이나 누워지내던 병자를 치유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로 하여금 자기가 누워지내던 들것을 들고 걸어가라고 명령하셨지요. 그런데 치유 받은 그 병자는 예수님께서 자기가 원하는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도움을 주시지 않고 병이 낫게 하셔서는, 자신이 늘그막에 갑자기 제 힘으로 벌어먹고 사느라 고생하게 만드셨다는데에 큰 불만과 반감을 품습니다. 그래서 그분께서 안식일에 자신을 고쳐 주신 것으로도 모자라, 안식일 규정을 어기도록 종용하셨다는 소문을 널리 퍼뜨리고 다닙니다. 그리고 그런 그의 행동은 호시탐탐 예수님께 올무를 씌워 제거하려 들었던 반대자들에게 좋은 기회가 되지요.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그런 일을 했다는 사실을 문제 삼아 율법에 따라 그분을 단죄하려고 든 겁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내 아버지께서 여태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하는 것이다.”(요한 5,17)
창세기에는 천지 창조를 마치신 하느님께서 “하시던 일을 모두 마치시고 이렛날에 쉬셨다.”(창세 2,2)고 기록되어 있지만,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 사이에는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후에도 쉬시지 않고 세상과 인간들을 돌보시는 일을 계속하신다는 신학사상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그런 사상은 하느님께서 단 한 순간이라도 당신의 그 일을 멈추시면, 그분의 은총과 자비에 힘 입어 살아가는 우리 인간은 절대 살아남을 수 없다는 믿음에서 유래한 것이었지요. 심장이 단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온 몸에 피를 보내는 일을 함으로써 우리가 살 수 있듯이, 하느님께서도 단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우리에게 은총과 사랑을 주시는 일을 하시기에 우리가 살 수 있다는 겁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런 유대교 사상을 근거로 해서 당신도 당신의 일을 한 순간도 멈출 수 없다고, 그날이 안식일이라고 해도 그 일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천명하십니다. 안식일은 그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날이 아니라, 일주일에 단 하루라도 욕망이나 세상의 논리에 휘둘리지 않고 하느님 보시기에 합당한 일을 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느님 보시기에 합당한 일이란 안식일이라는 이유로 질병의 고통에 신음하는 이웃을 나몰라라 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그 고통에서 벗어나 건강을 회복하도록 그리하여 삶의 참된 행복을 누리도록 돕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요한 복음사가는 그런 예수님 말씀을 전하면서, 그분께서 ‘당신 자신을 하느님과 대등하게 만드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버르장머리 없는 자녀가 부모에게 그러듯이, 예수님께서 하느님 아버지를 함부로 대하시며 그분과 맞먹으려 하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 아버지와 사랑이라는 같은 본성을 지니셨음을, 그 같은 본성을 통해 하느님 아버지와 완전한 일치를 이루고 계심을 분명하게 선포하시는 것이지요. 그렇게 당당하게 말씀하실 수 있는 이유는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과 행동이 자신의 욕망에 따라, 자기 뜻을 이루기 위해 하신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부전자전’(父傳子傳)의 모습으로 하느님 아버지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따르셨기에, 당신 자신의 뜻이 아니라 당신을 이 세상에 보내신 아버지의 뜻에 철저히 순명하며 사셨기에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으실 수 있었던 겁니다. 그런 예수님의 모습이 바로 우리가 따라야 할 모범입니다. 하느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그분을 ‘아버지’라고 부르면서도 내 뜻만 추구하며 내 욕심만 채우려 든다면 그건 참된 자녀가 아니지요.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든 하느님의 뜻을 찾으며 그 뜻을 따라야만 아버지이신 하느님과 부전자전으로 닮은 거룩하고 완전한 존재가 됩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