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5월 3일 (토)
(홍) 성 필립보와 성 야고보 사도 축일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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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아타나시우스 주교 순교자 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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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2025-05-01 ㅣ No.181881

후배 신부님의 신앙 간증을 들었습니다. 신부님은 교우들과 함께 성지순례를 갔습니다. 야고보 사도의 유해가 있는 성당까지 걸어가는 산티아고 콤포스텔라입니다. 10일 정도, 120킬로를 걷는 순례였습니다. 신부님은 5일째 되는 날 발톱이 빠지는 아픔이 있었습니다. 교우들과 함께 걷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도저히 걷기 어려워서 포기하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 걸을 수 있기를 청하며 기도하는데, ‘너는 걸을 수 있다.’라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신기하기도 하고, 소름이 끼치기도 했지만 설마라는 생각으로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에 눈을 뜨니 신기하게도 아프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교우들과 함께 마지막까지 걸어서 순례했다고 합니다. 순례의 마지막 날에 신부님은 자신에게 있었던 놀라운 체험을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신부님이 이야기를 마치자, 교우들은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본인들에게도 이번 성지순례가 마치 은총 같았다고 합니다. 묵주기도 하면서 자기의 잘못을 뉘우치기도 했고, 무엇보다 지금까지 이끌어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렸다고 합니다. 루르드 성지에 가면 환자들이 놓고 간 목발이 있는데 신부님은 실감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설마 하는 의심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번에 발톱이 빠졌음에도 무사히 걸어서 순례를 하면서 토마 사도처럼 믿음이 부족했던 신부님에게 하느님께서 은총을 주셨다며 감사했다고 합니다.

 

신부님의 간증을 들으면서 저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저는 후배 신부님처럼 신기한 목소리를 듣지 못하였습니다. 돌아보면 부끄러운 일들이 많았습니다. 지난번 성당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한 청년이 아버지를 위해서 병자성사를 청하였습니다. 병자성사를 청하면 보통은 총구역장, 해당 구역장, 반장과 함께 갑니다. 총구역장에게 연락하고, 시간을 정했습니다. 병자성사를 청한 청년이 전화했습니다. 시간을 바꾸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다시 연락했습니다. 병자성사 시간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바뀌었기 때문에 내일 해야 할 일들도 바꾸었습니다. 그런데 밤에 또 전화하였습니다. 복잡한 일이 생겨서 병자성사는 다음에 받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저도 화가 났습니다. 또다시 총구역장님께 전화해야 하고, 일정을 조정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겨우 두 번 전화했는데, 저는 참지 못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두 번이 아니라 수십 번 저를 참아 주셨습니다. 저는 하루에도 몇 번씩 하느님의 마음을 아프게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하느님께서는 제게 화를 내시지 않으셨고, 저를 기다려주셨습니다. 고작 두 번 바뀐 것을 가지고, 저는 화를 내고야 말았습니다. 말 못 할 사정이 있는 것을 이해하고, 다음에 할 수 있도록 하자고 말은 했지만, 속으로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천 명을 먹이신 큰 기적을 행하신 후에도 아무 미련 없이 그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가셨습니다. 오천 명을 먹이신 곳에 성당을 세우고, 밤샘 기도를 하면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몰려올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소유하려 하지 않으시고, 또 다른 곳으로 향해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눈에 보이는 기적과 치유의 은사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참된 하느님의 나라는 기적과 치유를 통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십자가의 희생 위에서 세워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화려한 권력과 명예는 오래 갈 것 같지만, 연기처럼 사라지는 것을 우리는 보았습니다. 재물로 눈에 보이는 성전을 세울 수는 있지만 재물이 많아야 하느님께로 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느님께로 갈 수 있습니다. ‘염불보다 제삿밥에관심이 많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하느님을 소유하여 욕심을 채워도 안 될 것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가말리엘은 자신의 권위와 능력을, 자신을 위해서 행사하지 않았습니다. 기득권을 유지하고 자신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서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하느님의 뜻이 먼저 이루어지도록 하였습니다. 가말리엘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저 사람들 일에 관여하지 말고 그냥 내버려두십시오. 저들의 그 계획이나 활동이 사람에게서 나왔으면 없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에게서 나왔으면 여러분이 저들을 없애지 못할 것입니다. 자칫하면 여러분이 하느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커다란 능력이 있었음에도 미련 없이 세상의 명예와 권력을 뿌리치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떠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와서 당신을 억지로 모셔다가 임금으로 삼으려 한다는 것을 아시고, 혼자서 다시 산으로 물러가셨다.” 권위는 있었지만 권위적이지 않았던 예수님을 생각합니다. 힘은 있었지만, 그 힘을 언제나 약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서 사용하셨던 예수님을 생각합니다.

 

주님, 아드님의 십자가로 저희를 구원하셨으니, 주님 사랑으로 저희를 지켜주시어,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영광에 이르게 하소서.”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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