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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진 신부님_<먼저 믿으면, 언젠가는 깨닫게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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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말하였다. ‘이 말씀은 듣기가 너무 거북하다. 누가 듣고 있을 수 있겠는가?’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당신의 말씀을 두고 투덜거리는 것을 속으로 아시고 그들에게 이르셨다. ‘이 말이 너희 귀에 거슬리느냐? 사람의 아들이 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게 되면 어떻게 하겠느냐? 영은 생명을 준다. 그러나 육은 아무 쓸모가 없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이며 생명이다. 그러나 너희 가운데에는 믿지 않는 자들이 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믿지 않는 자들이 누구이며 또 당신을 팔아넘길 자가 누구인지 처음부터 알고 계셨던 것이다. 이어서 또 말씀하셨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고 너희에게 말한 것이다.’ 이 일이 일어난 뒤로, 제자들 가운데에서 많은 사람이 되돌아가고 더 이상 예수님과 함께 다니지 않았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에게,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 하고 물으셨다.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스승님께서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저희는 믿어 왔고 또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요한 6,60-69)”
1) 66절의 “제자들 가운데에서 많은 사람이 되돌아가고 더 이상 예수님과 함께 다니지 않았다.” 라는 말을, ‘제자들만’ 떠나고 일반 군중은 떠나지 않았다는 말로 오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예수님을 안 믿은 사람들은, 또는 일반 군중은 제자들보다 먼저 떠났다고 생각하는 것이 옳습니다. <믿는 사람들이 대부분 떠났는데, 안 믿는 사람들이 떠나지 않고 남아 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여기서 ‘제자들’은 넓은 뜻의 제자들, 즉 예수님을 믿는 신자들을 뜻하는 말입니다. 또 열두 사도만 남고 다른 신자들은 모두 떠나버린 것으로 생각하기가 쉽지만, 그것은 아니고, “여러 여자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그분의 형제들”은 남았습니다(사도 1,14). 마티아를 사도로 뽑을 때 백스무 명가량 되는 무리가 그 자리에 모여 있었는데(사도 1,15), 그 ‘백스무 명’과 ‘충실한 여자 신자들’은 모두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 <배반자 유다는 안 떠나고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몸만 남아 있었고, 마음은 이미 떠났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64절에 ‘당신을 팔아넘길 자’ 라는 말과 뒤의 71절의 “너희 가운데 하나는 악마다.” 라는 말씀은 유다가 그때부터 이미 마음이 떠나 있었음을 암시합니다.>
2) 60절의 “이 말씀은 듣기가 너무 거북하다.” 라는 말은, 이해할 수 없다는 뜻과 받아들일 수 없다는 뜻이 모두 들어 있는 말입니다. <사실 ‘살과 피’에 관한 말씀은, 오늘날에도 듣기에 거북한 말입니다.> 61절의 “이 말이 너희 귀에 거슬리느냐?”는, “살과 피에 관한 말 때문에 너희의 믿음이 흔들리느냐?”입니다. 62절의 “사람의 아들이 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게 되면 어떻게 하겠느냐?” 라는 말씀은, “나의 부활과 승천을 보게 되면 너희가 완전히 깨닫게 되고 이해하게 될 것이다.” 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믿으라고 촉구하시는 말씀입니다.> 63절의 “영은 생명을 준다. 그러나 육은 아무 쓸모가 없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이며 생명이다.” 라는 말씀은, “나의 말은 너희에게 생명을 주기 위한 말이다. 그러니 내가 한 말을 인간적으로만 판단하려고 하지 말고 신앙으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하여라.” 라고 촉구하시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에 대해서 베드로 사도는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라고 응답했습니다(68절).
3) 64절의 “너희 가운데에는 믿지 않는 자들이 있다.” 라는 말씀은, “너희가 내 말을 듣기가 거북하다고 하는 것은 믿으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먼저 믿으면 나의 말이 너희에게 생명을 주는 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라는 뜻으로 하신 말씀입니다. 65절의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고 너희에게 말한 것이다.” 라는 말씀은, ‘믿음은 은총’이라는 뜻으로 하신 말씀이고, 하느님의 은총에 제대로 응답하라고 촉구하시는 말씀입니다. 이야기 속에 나오는 제자들은 은총에 응답하고 예수님을 믿고 있었던 사람들인데 ‘살과 피’에 관한 말씀 때문에 그 은총을 스스로 버리고 예수님에게서 떠났습니다.
4) 68절-69절의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스승님께서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저희는 믿어 왔고 또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라는 말은, “저희는 주님을 메시아로 믿고 있기 때문에, 주님의 말씀이 ‘영원한 생명을 주는 말씀’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니 저희는 주님만을 따르겠습니다.” 라는 신앙고백입니다. 여기서 ‘믿어 왔고, 알고 있다.’ 라는 이중적인 표현은, ‘믿음보다 더 강한 확신’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사도들이 ‘살과 피’에 관한 말씀을 얼마나 잘 알아들었는지, 그것은 알 수 없습니다. <사도들 가운데에는 금방 알아들은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나중에 깨달은 사람도 있었을 텐데, 그것은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이해보다 믿음이 먼저’ 라는 사도들의 ‘확신에 가득 찬’ 모습입니다. 먼저 믿으면, 언젠가는 깨달음과 이해를 얻게 됩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 [출처] 부활 제3주간 토요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