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다해 부활 제6주간 수요일 <누가 참 말씀의 전달자가 되는가?> 복음: 요한 16,12-15 
십자가를 지고 가는 예수
엘 그레코 작, (1600-1605),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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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할 말이 아직도 많지만 너희가 지금은 그것을 감당하지 못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감당할 능력을 만들어주시는 분이 성령이십니다. 그래서 “그러나 그분 곧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성령께서 예수님의 말씀을 감당할 능력을 주시는 이유는 “그분께서는 스스로 이야기하지 않으시고 들으시는 것만 이야기”하시기 때문입니다. 들으시는 것만 그대로 이야기하시는데 어떻게 말씀하시는 분을 감당하게 할까요? 물 위를 걷는 베드로의 모습을 보면 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을 그대로 따라서 합니다. 배 위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유령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을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물 위를 걸을 때 제자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요? ‘그러면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예수님은 당신이 하시는 일을 우리도 하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을 이해하게 만드는 베드로와 같은 존재가 성령님이신 것입니다. 만약 베드로가 예수님이 하신 행동을 그대로 따라 하지 않았다면 다른 제자들은 물 위를 걷는 예수님의 행동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베드로가 예수님을 따라서 하는 행동과 말은 예수님을 영광스럽게 하는 일입니다. 내가 더 옳다고 여기면 그대로 따라서 하기 어렵습니다. 예수님은 성령께서 당신을 영광스럽게 하시기 위해 당신에게 받아 그대로 알려주실 것이라고 하십니다. 아버지께서 받은 것을 예수님께서 그대로 전해주시듯, 성령님은 예수님께서 받은 것을 우리에게 그대로 전해주십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이해시켜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성령님의 역할을 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그분의 말과 행동을 그대로 받아서 전해야 합니다. 만약 내가 완전히 죽지 않는다면 그대로 전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완전한 겸손이 필요합니다. 성경에서 욥의 친구들은 욥이 고난을 당하는 것이 하느님께 분명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성경엔 분명 그런 말씀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건 분명 잘못된 해석과 전달입니다. 욥은 죄가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냥 세상에 욥의 의로움을 드러내시기 위해 그런 고난을 주신 것입니다. 욥의 친구들은 성경을 옳게 해석해서 전해준다고 믿었지만, 실제로는 틀렸던 것입니다.
욥 친구들의 문제점은 무엇이었을까요? 하느님의 수준처럼 되지 못했으면서 하느님의 말씀을 이해한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가나안 땅을 보고 돌아온 정탐꾼들의 보고(민수기 13-14장)에 관한 내용을 살펴봅시다. 12명의 정탐꾼 중 10명은 가나안 땅의 거주민들에 대한 두려움과 부정적인 면을 부각하여 보고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기보다 눈앞의 어려움에 압도되어 백성들을 낙담시켰고, 이는 결국 40년간의 광야 생활로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만은 하느님을 믿고 쳐들어가자고 했습니다. 그 둘만이 하느님의 뜻을 제대로 전할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겐 성령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에 하느님의 말씀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개신교는 인간이 하느님의 능력을 가질 수 없다고 여깁니다. 특별히 성체성사의 능력이나 죄를 용서하는 능력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고해성사도 포기했습니다. 이런 면에서 인간의 능력을 제한함으로써 성경해석도 제한되고 말았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성경을 해석해봐야 그 틀이 완전한 성령으로 인한 것이 아니기에 하나의 정답이 아닌 다양한 해석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스페인의 한 성당에 있던 예수 그리스도의 프레스코화 ‘에체 호모’를 아마추어 복원가가 복원하는 과정에서 원작의 모습을 심하게 훼손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원작자의 의도와 작품을 '그대로' 보존하고 전달하려는 겸손함 없이 임의로 해석하고 개입하여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또한 그러한 능력이 없는데도 있다고 착각하였습니다. 우리는 정말 물 위를 걸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믿어야 합니다. 하느님께는 불가능이 없다고 믿었던 성모 마리아처럼 되어야 말씀을 있는 그대로 전해줄 수 있는 존재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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