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6주간 수요일
“그분 곧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그분께서는 스스로 이야기하지 않으시고 들으시는 것만 이야기하시며,
또 앞으로 올 일들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다.” (요한 16,13)
성령은 복음을 ‘외우게 하는’ 분이 아니라,
성령은 복음을 시대와 사람에 맞게 살아 있게 하는 분입니다.
그래서 나는 성령께 여쭙니다.
지금 이 시대에 오늘 복음은 어떻게 살아 움직입니까?
진리의 영께서는 비움으로 충만해지는 길을 보여주십니다.
지금 우리는
자신의 의견을 강하게 말해야 인정받는 세상,
학벌과 지식, 부와 명예,
유명 브랜드의 옷과 가방, 자동차가
존재 가치를 대신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그분은 스스로 이야기하지 않으신다.” 는 말씀이 제 마음에 담겼습니다.
성령은 주장하거나 드러내지 않으십니다.
들으시고, 들은 것만 말씀하시고, 기다리시고, 존재를 알아보는 분.
성령께서 그렇게 우리 안에 오시고,
우리를 참된 존재의 자리로 이끌어 주십니다.
바오로 사도는 아테네에서
그리스의 철학과 종교적 감수성을 존중하며 복음을 전합니다.
그는 정답을 강요하는 교사가 아니라,
자신이 만난 예수님을 ‘어떻게든 전하고 싶은 사람’이었습니다.
“이들이 어떻게 하느님을 알아볼 수 있을까?”
그 고민 하나로 어테네 사람들 안에 이미 깃든 신앙의 씨앗을 찾아냈습니다.
그 모습에서 성령의 이끄심을 봅니다.
성령은 우리를 정답으로 몰아가지 않습니다.
대신, 지금 우리가 있는 자리에서
사랑 안에 존재하도록 도와주십니다.
저도 한때, 사울처럼
확신에 차 있었고,
규칙과 지침을 따르며
상황을 통제하고 불안을 잠재우려 애썼습니다.
아니, 지금도 여전히 그렇습니다.
하지만 때때로
성령께서 제 안에 사랑의 불을 놓으시면
저는 힘을 빼고,
사랑으로 머물게 됩니다.
그러면 주변이 보입니다.
타인이 어떤 스타일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그를 돕기 위해 나는 어떻게 곁에 있어야 하는지…
조금씩 알아차리게 됩니다.
내가 지금
스스로 이야기하고 있는지,
아니면 들은 것만 이야기하고 있는지 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지내는 매일.
잠시 멈춰 이런 질문으로 던져보아야겠습니다.
“나는 정답을 제시하고 있는가,
아니면 사랑으로 곁에 머무르고 있는가?”
이 물음 안에서
성령은 오늘도 조용히 우리를 진리 안으로 이끌고 계십니다.

『비움으로 충만해지는 길』
‘비움’을 단순한 상실이 아닌, 성령의 불이 지나간 자리에 ‘타인을 담을 수 있는 공간’으로 여깁니다.
말과 계획을 내려놓고 침묵과 기다림으로 존재할 때, 우리는 충만해질 수 있습니다.
그 신비롭고 조용한 변화를 시로 담담히 표현해 보았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